[에세이] 내 모든 곳에 걸쳐 있는,

신앙과 사람, 공간과 관계
글 입력 2022.11.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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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당에 다니는데, 그곳에서 학생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더욱 깊게 마음을 나눈 이들 중 한 명이 며칠 전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이 친구를 J라고 칭하겠다.

 

J는 영영 가지는 않고 1년 여 간 다녀올 예정인데, 한 달에 두 번 정도 얼굴을 꾸준히 봐오다가 한동안 만나지 못 한다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출국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나와의 약속은 확실하게 못 정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SNS에서 발견이라도 하면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저 이해하고 그 친구가 잘 다녀오도록 빌어주면 되는 건데. 내가 J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이제야 깨달았다고 생각하니 바보같기도 했다. 여하튼 이 글은 J가 출국하기 전 나를 만나 나눈 대화에서 탄생한 글자들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내 글이 어떻게 다가올지 걱정이 많이 된다. 모쪼록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 부디 잘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

 

나는 타인에 비해 스트레스, 걱정, 불안 등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누구나 당연히 걱정할 상황에 대해서도 혼자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는 걱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일은 항상 잘 풀렸기에 걱정의 필요성은 티끌만큼만 존재했다. 자신은 일어나지 않을 상황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기에 너무 힘들다는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부러워했고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질문해왔다. 나는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조언을 해주기에는 타고난 성격 탓이라 생각했기에 그저 너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안녕을 빌어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내 특성에는 한 가지 사실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다. 비 온 뒤 땅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말이 있다. 시련이 오면 당시에는 무척 힘들겠지만 그 경험을 디딤돌삼아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에게 스트레스는 폭우였고 나는 오랜 기간 비가 내리지 않은 땅이었다.

 

스트레스를 원체 잘 받지 않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구는 음악을 듣고 누구는 먹고 누구는 잠을 자서 그 상황을 풀어나간다는데 나는 한없이 가라앉았다. 다들 수면을 향해 헤엄쳐 가는데 나는 발목에 묶인 돌을 바라보며 절망만 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방법이 되어준 게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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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간다. 일주일 간 사회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일요일 저녁 성전에 앉으면 그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곳에서 나 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기도로 쏟아내며 안정을 찾곤 했다. 그런 경험을 일생에 걸쳐 하다 보니 나에게 종교는 곧 번잡함을 내려 놓고 나의 평온함을 찾는 과정이 된 것 같았다.


최근에는 매주 성당에 가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바라는 신앙을 만나지는 못 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신앙생활은 일요일 하루만이 아닌 평소에도 기도를 드리고 항상 그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다. 이를 잘 실천하고 살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평소에는 커녕 일요일 저녁에도 그 마음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속상하면서도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어떻게 이를 해결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J는 성경 필사를 제안했다.


나와 J를 비롯해 총 네 명이서 성경 필사를 하기로 했다. 거창하지는 않고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구절을, 원하는 시간에 쓰고 사진만 공유하면 되는 거였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일임에도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따라 그렇게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성경을 쓰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많이 되찾았다. 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삶의 가치,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바라만 보고 있었다던 나는 사실은 누구보다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잠시 길을 잃은 것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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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신앙이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왔다. 나는 내가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수단같은 것이라고 답했다.

 

어떠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그에 필요한 자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를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중에 만나는 좋은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것. 성경으로부터 삶에 있어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배우는 것.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을 나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사실 지금은 종교가 내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인 것 같기도 하다. 성당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내 삶이 아닐까 싶다. 목적에 더 잘 다가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 과정들이 목적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성경을 많이 써내려갔다. 그리고 필사를 할 때마다 J를 비롯한 두 명의 친구를 떠올리며 기도했다. 기도는 그들을 시작으로 내 주변 사람들, 이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나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져갔다. 나에게 온 스트레스는 사랑으로 바뀌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J가 그곳에서 건강하게 지내기를 그 이상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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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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