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인생은 노답이다

트랙에서 벗어나기
글 입력 2022.11.1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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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다.


하얀 배경에서 검은색 마우스 커서만 가만히 사라졌다가 나타난다를 반복한다. 한 번도 백지가 두려운 적이 없었다. 친구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너는 어떻게 항상 글을 써?” 나는 당연하게 글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르다.


팔짱을 낀 채 노트북을 가만히 노려본다. 갑자기 영감이 찾아오기를 10분... 20분. 기다리지만 여전히 텅 비어있다. 아무 생각이 없다. 걱정도 기대도 없다.


"잠깐, 이게 행복인가?"


긍정과 부정, 가느다란 선 위에 나를 세운다면, 긍정에 가깝다.

 

기쁨과 슬픔의 선이면 기쁨에 가깝고 걱정과 설렘의 선이라면 설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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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여전히 내 인생은 답이 없는데. 언제 변한 거지?



분명 3개월 전에는 불안이 감당할 수 없어서 밤새는 날이 많았다. 새벽에 일기장 3장을 가득 채울 만큼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복잡하게 힘든 사람이었다. 게으른 나를 질색했고 나를 개조하고 싶었다.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는 흔하게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미래지향적 질문을 자주 한다. 현재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현재와 미래의 관계는 항상 원인과 결과처럼 인과적 결론을 맺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당연히 나의 고민은 미래를 향했다.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너희 이제 예비 고3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인서울 한다.”고 말했고,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나에게 “어떤 기업을 쓸 거야?”라고 묻는 친구가 많았다. 당연히 나도 그랬다. 이미 나에게 정해진 표준 트랙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 대학교 졸업 – 취업 – 결혼 – 육아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나는 트랙 위를 뛰고 있었다. 마치 내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했다. 지금 고생해야 나중에 편할 거야. 모두가 원하는 것이니까 나도 원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는 단순하게 속는 사람이 아니다. 남이 찾은 의미 앞에서 자꾸 넘어졌다.


나만의 답을 찾고 싶었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넓게’에 집착했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옆을 돌아봤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올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내가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이 궁금했다. 어떻게 삶의 굴곡마다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 수 있을까? 나이 불문, 성별 불문 모두에게 질문을 했다. 사람의 얼굴처럼 모두 답이 달랐다. 부모님은 먹고살기 위해 살았고, 할아버지는 사니까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산다고 했고 작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수개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내가 찾는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열심히 바다를 헤치고 산을 넘고 모래를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밖을 뒤졌으니,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내 안이다.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면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어떤 무엇도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에 흔들렸다. 잔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완전하고 완벽하고 단단한 절대불변의 답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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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노답이다. 그래서 빛난다.


 

말 그대로 답이 없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까 트랙은 환상이었다. 극소수만 통과할 수 있는 차별적 트랙이다. 그럼 낙오자들은 실패한 인생인가? 아니요. 우리에게 남의 인생을 멋대로 평가할 권리가 없다.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도 없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삶은 빛난다. 얇은 실선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고, 어두워야지만 빛나는 사람도 있고, 멀리서도 빛나는 사람도 있고, 안개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다. 빛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빛을 찾지 못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빛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이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를 살 뿐이다. 


 

나는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실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현재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어쩌면 나는 가장 뻔한 답을 찾기 위해 수개월 혹은 수년을 헤맸을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두려웠는데 이제는 설렌다. 자유는 나를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다. 믿음의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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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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