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도서]

책 만드는 도시에서 <책 만드는 일> 읽기
글 입력 2022.11.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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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책을 한두 권 들고 다닌다. 어딜 가든 책을 읽는다는 뜻은 아니다. 매일 쓰지 않는 카드도 매일 지갑에 들어있는 것처럼, 내 가방에는 안 읽을 수도 있는 책이 들어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고 다닐 책을 고를 때는 꽤 신중하다. 대체로 휴대성 좋고 목차가 잘게 나누어진 책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리고 조금 특별한 날에는, 목적지와 어울리는 책을 선택한다. 그래서 파주의 출판단지로 짧은 여행을 가는 날, 내 짐가방 속에는 <책 만드는 일>이 들어갔다.

 

 

 

<책 만드는 일>이 뭐길래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착각은 두 갈래로 나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사실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작품을 다듬어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문화예술과 대중의 경계에서 일하는 직업들은 특히 더 그렇다. 그냥 완성된 걸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출판 업계를 향한 시선도 그렇다. 주변 사람들과 출판계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탈자 교정이 편집자의 전체 업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출판업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인 편집자의 역할마저도 그렇게 보는데, 다른 직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출판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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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은 민음사 출판그룹이 55주년을 맞이해 특별 기획으로 내놓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열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서, 업무 면에서는 편집자와 번역가부터 마케터와 디자이너까지 담겨 있으며 분야 면으로는 국내외 고전 문학과 비문학은 물론이고 그림책과 판타지 소설, 잡지까지도 다룬다.


이 책의 매력적인 표지와 더 매력적인 가격(3000원이다. 3000원!)에 마음을 빼앗겨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정하면서도 내용에 관해서는 그리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로 길이가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120쪽짜리의 작고 얇은 책인지라 내용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 싶은, 가벼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건 내 착오였다. 이 조그만 놈에게 왜 이렇게 맘에 드는 부분이 많은지. 나는 파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 책의 귀퉁이를 접고, 본문의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나마 밑줄 긋는 건 버스에서 내린 후에 하자 미룬 게 다행이다.


책에 관한 책이라는 설명에 더는 듣지 않아도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부탁하고 싶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아예 책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닐 테다. 최소한, 책을 좋아하거나 많이 읽고 싶은 욕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예상해 본다. 바로 나처럼.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를 소개할 때,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다가도 망설인다.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그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서 그렇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책 중에서도 안 읽은 것이 수두룩하고, 매일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팬이라고 할 만한 작가가 있지도 않고.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실은 영화나 드라마가 더 재밌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가도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며 책의 마을로 여행을 가면서도 나는 자문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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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 속에서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네 번째 장, ‘세계문학의 한가운데’에서는 세계문학 전집 편집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편집자의 일은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p.45)”로 소개된다. 글과 책은 엄연히 다르다. 책에는 글도 있지만, 글’만’ 있는 건 아니다. 종이도 있고, 글씨체도 있고, 레이아웃도 있고, 표지와 띠지, 책날개나 책갈피도 있다. 아 참, 책 냄새는 또 어떻고?


글 혼자서는 사람에게 닿을 수 없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사람들이 좋은 글과 만날 수 있도록 글을 책으로 만든다. 거기에는 편집자 외에 다른 출판계 사람들도 함께한다. 이들의 손길이 합쳐져 완성되는 것이 책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흔적까지 모두 좋아하는 것 또한 책을 좋아하는 방식의 하나일 테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다. 난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좋아한다. 서점에 책을 구경하러 가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관심 있는 출판사들의 SNS를 구독해 신간과 후기를 눈여겨본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책 <책 만드는 일>만 해도, 내용만큼이나 책의 표지, 강조 색, 글씨체 등이 합쳐져 내 맘에 든 것이니 말이다.


 

 

흐르는 이미지, 바탕이 되는 활자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글’로 넘어가자. 앞선 문단에서는 책의 다른 요소를 강조했지만, 책의 중심이 되는 요소가 글임은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책 만드는 일>의 전문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부분 하나를 꼽으라면 마지막 장, ‘인문학을 디자인하기’를 고르겠다. 민음사에서 만드는 인문 잡지 <한편>의 디자인 과정이 담긴 이 장에는 잡지의 초기 기획 과정이 짧게 나오는데, 그중 카피 한 문장이 참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활자는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바탕”

 

(p.120)

 

 

사실 인상적이라는 표현은 내가 이 문장을 읽고 받은 감동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 짧은 한 줄이 너무 좋아서 다음 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자꾸만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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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시간으로 화상 통화가 가능한 시대를 살지만, 그것이 이메일 혹은 손 편지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매체의 흥성이 다른 매체의 필연적인 쇠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말 말 그대로, 그 한 가지 매체의 흥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미지와 활자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극명해서 더욱이 서로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줄 수 없다. 그 둘의 차이는 위의 인용구가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미지는 흐르고, 활자는 바탕이 된다. 이미지는 재빠르게 변하고 쉬이 흘러든다. 하지만 내게로 향하는 이미지를 내 안에 고이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은 이미자가 아닌 활자의 영역이다. 이미지든 무엇이든, 흘러오고 금세 또 흘러갈 것을 내가 품을 수 있게 하는 그릇, 그러니까 바탕을 만드는 건 활자다. 활자로 다져진 바탕이 없다면 이미지 또한 제대로 수용할 수 없다.


생각과 언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생각을 구체화하는 종족인 이상, 활자를 통해 근간을 다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미지와 영상에서의 언어는 스쳐 지나가지만 활자의 언어는 새겨진 채 남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미지 매체가 발달하더라도, 이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테다. 우리의 언어 체계가 이미지의 형태로 변하기 전에는.

 

 

 

책과 가까워지기 ‘물리적으로’



이렇게 활자와 글에 대한 애정을 표하다 보면 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더 나아가, ‘글’도 좋아하고 책 ‘읽기’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픈 욕구가 샘솟고 만다. 애서가를 넘어서 애독자가 되고 싶다.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라고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말하고 싶다. 얼마나 멋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책 만드는 일> 속 여섯번째 장의 화자인 민음사 마케터조차도 “쏟아지는 책들을 다 읽지 못해 느끼는 초초함과 죄책감, ‘책잘알’들 사이에서 일하며 더 이상 나를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지 못해 낮아진 자존감(p.75)”이라며 비슷한 심정을 밝힌다. 책은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사이의 편차가 크다 보니 그사이의 모호한 위치에서 혼란을 느끼는 독자들이 유난히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마케터는 그 처방으로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책과의 권태를 이겨내는 약으로 책을 제시하다니 뼛속까지 출판사 마케터라 할 수 있겠다. 이 해결책은 전문적인 처방이지만, 때때로 전문적인 처방은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른 사람들에게만 효과를 보인다. 그 일정 단계에 미치지 못한, 아직 책과의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비전문적인 처방이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비전문적인 처방을 제안한다.


단순 무식하게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정말 ‘책과 가까워지기’인 것 같다. 물리적으로 말이다. 읽든 말든, 첫 장을 펼치든 말든, 책과 몸이 가까이 있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는 느릿느릿 넘어가고 있다. 내 작은 자취방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왜 올 때마다 책이 늘어나냐고 묻는다. 예전에는 사놓은 책을 읽지도 않고 다른 책을 사는 게 민망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냉장고를 새 음식으로 채우는 것처럼, 책장도 새 책으로 채우는 게 어때서. 그러다가 정말 할 일이 없을 때 책장을 한참 노려보면 읽고 싶은 책이 한 권은 나오기 마련이다. 정말 비효율적인 방법일지언정 나는 이렇게 책과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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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출판단지의 한 카페에서 책을 읽다 찍은 사진

 

 

그래서 파주의 출판단지 여행도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1박 2일 여행을 올해에만 두 번 갔는데, 짧은 기간 동안 책을 세 권씩은 읽었다. 도처에 널린 책방, 도서 박물관, 도서 관련 전시들은 물론이고 카페에도, 숙소에도 책이 가득해 고개만 돌리면 책과 눈을 마주치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두 차례의 여행 이후 확실히 책과 훨씬 가까워졌음을 느꼈고, 이제는 파주까지의 먼 여정을 가지 않더라도 근처의 서점이나 집에서 그때의 거리감을 떠올리며 책과 친해지려고 한다. 아직도 친해지는 중이긴 하지만 머지않아 당당하게 말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나는 책도 좋아하고 책 읽기도 좋아한다!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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