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사랑하는 색의 비밀, 그 다양한 얼굴 - 도서 '컬러의 방'

글 입력 2022.11.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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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브랜드를 떠올리면 바로 떠오르는 색이 있다. 당장 스마트폰 화면을 켜서 몇몇 어플리케이션을 확인해 보자. 포털 사이트의 앱이나 은행 앱들이 대표적인데, 꾸준히 자기들 브랜드의 색으로 밀어 온 색상별로 어플의 이미지가 정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은 밝은 노란색이, 네이버는 그 친근한 연두색이 그 브랜드의 이미지이자 얼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미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이미지 감각을 갖추고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이다. 색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지 문법의 가장 기초를 익히는 것과 같다. 색에는 문화적인 함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 문화권에 걸쳐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기도 하고, 특정 문화권의 지식이 있어야만 소통할 수 있는 의미로 기능하기도 한다.


출판사 윌북의 ‘컬러 시리즈’ 중 하나이자, 폴 심프슨의 저서인 <컬러의 방>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열한가지 색상에게 각각의 방을 만들어 주고, 그 방 안에서 그 색상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선보인다. 색깔을 다루기 때문에 미술에 특화된 책일 것 같지만 컬러의 방 안에서는 미술, 과학, 전통적인 사회문화, 그리고 근현대 미디어 안에서 한 색상이 쌓아온 의미, 상식 등을 자유롭고도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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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노랑, 파랑, 주황, 보라, 분홍, 초록, 갈색, 회색, 검정, 하양. 색상의 프리즘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자주 쓰이는 열한 가지의 색들이다. 순차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이 아니다보니 이 색상의 목차 중에서 평소 독자 본인이 좋아하던 색이나 흥미를 가졌던 색을 먼저 찾아 읽어도 무방하다. 혹은 한 색상이 지닌 보편적인 의미와 특수하고 좁은 의미를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다.


 어떤 색깔이 지닌 보편적인 의미는 아무래도 인체나 자연의 보편적인 현상에서 기인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강은 많은 문화권에서 분노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이는 ‘화가 나면 산 산소가 많아진 혈액이 얼굴 정맥으로 몰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몹시 화가 났을 때 눈앞에 ‘빨간색이 보인다seeing red’는 발상은 그 밖의 수많은 언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독일어에는 같은 뜻으로 로첸rotsehen이라는 동사가 있고, 스와힐리어로도 ‘화가 난 사람의 눈에 빨간색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어에는 ‘모든 것을 빨갛게 보다verlo todo rojo’라는 표현이 있는데, 투우사가 빨간 천을 흔들면 소가 격분하는 투우 문화와 연관이 있다. (pp. 37-38)

 

 

그런가 하면 같은 색이라도 특정 문화권에서 강조되는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서구 문화권에서 가장 유명한 피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다. 기독 신학에서 예수의 피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새로운 서약을 상징한다. 「누가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자신을 기념하라고 말한다. 그 후 기독교의 성체 의식에서 잔에 담긴 신성한 포도주는 종파에 따라 예수의 피나 예수의 영적 임재를 의미하게 되었다. (p. 49)
 

 

문화는 시간이 층층이 쌓인 것이고 한 문화권 안이라 하더라도 여러 계층과 계급, 지역의 하위문화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대상이 복합적인 의미, 심지어 상충되는 의미를 한꺼번에 갖기도 한다. 파랑의 방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파란색 중 하나는 ‘울트라마린’이다. ‘바다 저 너머의 색’은 재료도 귀하고 만드는 과정도 복잡다단했기 때문에 고가의 색이었다. 그 귀함 때문에 울트라마린은 테오토코스(Theotokos, 신을 낳은 자)로서의 성모 마리아를 위한 색, 더 정확히는 성모의 푸른 망토를 채우는 색이 되었다.

 

이렇게 파랑이 더없이 고귀한 의미를 지녔는가 하면 불경스러운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파란색은 거룩한 색이기도 하지만 포르노 영화(blue movie), 비속어(blue language), 음담패설(blue humor)처럼 불경스러운 의미도 지니고 있다.(p. 131) 파란색이 이러한 뉘앙스로도 쓰이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보이는 가설은 없다고 한다.

 

한편, 색상의 쓰임이 유독 친숙한 경우도 있다.


  
문서에서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빨간색을 사용하는 관습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제들은 중요한 문구를 강조하거나 때로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이 색을 사용했다. 악, 혼돈, 파괴의 신인 아펩Apep(일명 아포피스)에 대해 언급하는 어느 파피루스는 모든 글자가 빨간색이다. (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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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이 색상에 의미를 결부시키는 것이라면, 염료와 안료의 발명은 인간이 그런 색상을 소유하고 능력껏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각각의 방에 흩어져 있는 염료, 안료의 발달사를 유의 깊게 보는 것 또한이 책을 유익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다.

 

기원전 2200년경 탄생한 최초의 합성색소인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는  실리카, 구리, 석회, 그리고 탄산칼륨과 같은 알칼리 혼합물을 가열하여 만든 것이다.(pp. 121-122) 앞서 언급했듯이 울트라마린은 서구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를 위한 안료였다. 보라색의 영어 이름인 퍼플(purple)의 기원이기도 한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은 바다 조개 수십 만 개를 들여 만들어져 황제나 왕을 위한 직물을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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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안한대로 좋아하는 색에 집중하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다. 필자의 경우 보라색을 좋아한다. 보라색은 그 자체로 다양한 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라색을 언급했을 때 누군가는 붉은 계열의 보라를 떠올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푸른 계열의 보라를 떠올린다.

 

그뿐인가? 제비꽃도 라일락도 보라색 꽃이라 불리지만 그 보라색이 너무나 다르다. 붉은 보라와 푸른 보라, 진보라와 연보라의 다양함을 지닌 보라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색 중에서도 천의 얼굴을 가진 게 아닐까? 각설하고, 보라색에 대한 필자의 애정 때문에 보라의 방을 읽을 때 집중도가 남다르게 올라갔다.

 

책에서 찾아 본 보라색의 의미를 대강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첫 번째, 황제의 색으로서의 보라색. 비잔틴 제국에서 ‘보라색으로 태어났다’는 의미의 포르피로게니투스(porphyrogenitus)라는 호칭은 아버지가 황제가 되고 난 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궁에 있는 보라색 침실에서 태어난 왕자에게만 주어졌을 정도였다. (p. 178) 이미 언급했지만, 특정 계층이 보라색을 독점한 이유는 보라색을 만드는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만드는 방식도 워낙에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독교에서의 보라색이 있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준비하고 회개하는 시간인 강림절과 사순절 예배에 쓰이는 색이다.(p. 186) 가톨릭 국가들, 특히 브라질에서 보라색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결부되어 주로 장례식장에서 착용된다.(p. 187)

 

세 번째, 보라색은 영국과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공식 복장에 쓰인 색이었다. 여기서의 보라색은 여성의 힘, 서프러제트 운동에 투신하는 여성들의 정신의 고귀함을 찬양하기 위해 쓰였다.

 

네  번째로, 보라색, 특히 라벤더색은 성소수자와 결부되었다.(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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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방>을 읽으며 색상에 대해 어렴풋이 알았던 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지식들을 만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정보가 가득했으나 역시 서구 문화에 치우쳐 있다는 인상은 지우기 쉽지 않았다. 컬러의 ‘방’을 설정해 놓아서 한 가지 색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읽게 만드는 방식은 특정한 색에서 영감을 얻고 싶을 때 유용하게 작용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색상을 각각의 방으로 분절해 놓았기 때문에 하나의 ‘세트’로서 유기적으로 조합된 색의 문화적 함의는 아예 다룰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한국의 오방색을 한 색깔씩 떼어서 이해한다면 그것을 완전한 이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컬러의 방>은 색에 대한 전반적인 TPO의 감각을 키워가는 자료집으로 활용하거나, 깊게 알고자 하는 특정 색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책으로 접근한다면 유익할 것이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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