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젖은 소망 [사람]

글 입력 2022.11.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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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네 말대로 촌구석이었어. 요즘 시대에 기차로 닿지 않는 곳이 있다니, 나 조금 놀랐잖아. 나 같은 섬사람이나 고향 어렵게 가는 줄 알았거든. 아무튼, 고속철도는커녕 무궁화호도 가지 않는 네 고향 다녀왔어. 다가오는 계절엔 꼭 우리 살던 곳들 여행 다녀오자고 했었는데, 기억은 나니. 근데 나만 여행하고 왔네.


나는 그렇게 일찍 잠드는 도시 처음 봤다. 나도 바닷사람이라 일찍 잠드는 마을에서 자랐는데 네가 살던 곳이 훨씬 이르더라고. 원래 산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고 하잖아. 그래서 그런가 봐. 정말 밤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동네더라. 야행성인 네가 유독 그 밝은 밤을 좋아했던 이유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천성과 맞지 않는 곳에서 자라느라 숨이 막혔던 네가 제자리를 찾은 거였구나. 그런데 왜.


죽은 도시래서 괜찮은 숙박도 기대 안 했는데 러브모텔이 하나 있더라고. 이런 곳에 웬 러브모텔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찬란할 뻔했던 도시랬으니. 조금 뜬금없긴 해도 나야 편했지. 네가 좋아하던 풍경 보러 간 거였으니까 자고 와야 했거든. 몇 시에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산은 밤이 이른 만큼 낮도 빨리 오는지 헷갈리는 거야. 그래서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햇빛이 나무에 가려지는 건 매한가지일 테니 천천히 나가도 되겠다 싶었어.

 

근데 엄청 일찍 깼다. 잠도 더는 안 와서 그냥 씻고 나갔더니 해도 아직인 아침이더라고. 얼마나 이른 아침이었냐고 묻는다면 달이 지새는 걸 봤다고 할게. 이렇게 말하면 너는 귀신같이 잘 알아듣잖아. 그놈의 달. 보름달도, 반달도, 그믐달도 그저 달이면 다 좋다고 그랬었잖아.

 

근데 너 가던 날은 달 없는 날이었다. 어쩜 그게 또 그럴까. 그토록 속에 담고 살던 거 보지도 못하고 가는 게 영 미안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보여주고 싶다고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하늘이 야속했어. 그믐에 떠난 너를 삭일에 보내고 망일엔 네가 살던 곳에 다녀왔네.

 

그날 도망갔던 달은 돌고 돌아 다시 나타났는데, 너는 어디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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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새는 걸 보면서 얕은 언덕배기부터 올랐는데 완전히 동트고 나니 생각보다 높이 와있더라. 먼눈 팔며 올랐던 것 같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거든. 그냥,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너도 걸어봤을까, 일기예보가 틀렸다면 어떡하지, 네가 좋아하던 풍경 하나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헛걸음이 되어버리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너는 여기를 몇 번이나 올랐을까, 정신이 끊기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귓가에 속삭인 내 말을 듣기는 했을까, 이 동네를 떠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네 짐을 언제쯤 치울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글쎄. 기억이 잘 안 나. 네 말대로 무덤도 엄청 많더라고. 봉긋한 묘지들 보면서 그 생각은 했어.

 

너도 저렇게 묻고 해마다 찾아갈 걸 그랬나. 어쩌면 네가 나고 자란 곳에 다시 데려와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쓸모없는 후회. 그런 잡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여긴 파헤쳐진 묘가 많다 그랬잖아. 데려오지 않은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염없이 발만 옮기는데 비가 오더라. 다행이다 싶어서 마음이 놓였어. 가만히 비 맞으면서도 어땠는지 전혀 기억 안 나. 어느 순간 눈물 마르는 것 마냥 비가 잦아들었는데 그때부턴 맞은편 능선이 젖어들어가더라고.

 

그렇게 산맥 여기저기 뜨문뜨문 비가 내리는 걸 한참 지켜봤어. 산돌림은 처음 봐서 그런지 퍽 신기했다. 이걸 네가 참 좋아했구나. 내려오면서도 잡생각이 많았어. 올라오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더라, 이울어진 네 성정을 달래기엔 내가 모자랐나, 이곳에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을까, 내가 보고 싶지는 않을까, 점심은 뭘 먹지, 그래서 물로 돌아갔나.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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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오면서 내려가는 길에 읽었던 책을 또 한 번 더 꼬박 다 읽었어. 같이 살았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자꾸만 신경이 거슬리더라고. 나는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어서 그런가 봐.

 

아무튼 네 고향 잘 다녀왔다고 말하려고 써. 참고로 네가 살던 집은 부러 안 찾아봤다. 이제 와 내가 그걸 봐서 뭐 하겠어, 그치. 산들어진 내 현실만 해도 버거운데 내가 그걸 봐서 뭘 더 해. 더 쌓을 필요 없어. 갖고 있는 흔적만으로도 충분해.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던 것 같아. 다만 홀로 다녀온 여행인데 너를 두고 온 것만 같아 자꾸 신경이 쓰여. 계속 꿈에 나오네. 너랑 겨울에 떠나는 유럽 여행이 내 작은 꿈이었는데, 네 소망消亡이 내 꿈을 아주 박살 냈다. 참 밉지만 그래도 기도할게. 네 염원은 이루어졌으니 내 바람도 이루어질 때가 오겠지. 나는 네 소망消忘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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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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