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람들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 덕분에
글 입력 2022.11.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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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3년 만에 '노마스크 핼러윈'으로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당사자, 혹은 남겨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모두 충격을 받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와중에, 뉴스 댓글을 보면 고인을 탓하는 몇 몇 부정적인 반응들이 보인다. '그러게, 왜 사람들 많은 데를 가가지고.'라는 댓글, '우매한 시민의식의 결과'라는 댓글,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였으면 진작 나갔어야 하는 개인의 문제'라는 댓글.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댓글에 대해 긍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게 잘못된 것이다 라는 반응.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하루 전에 영화 캐릭터 분장을 하고 사람들과 파티룸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었던 나는 참사 관련 자료를 우연히 목격한 이후로 며칠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나 또한 장소만 달랐더라면, 하루만 더 늦게 일정이 잡혔더라면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밖을 나가는 것도 힘들어했고,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일정을 수행하느라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만 하면 호흡곤란이 찾아와 일상생활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소에는 그저 급하기만 했던, 혹은 지나치기만 했던 순간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보다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이다.

 

11월 3일, 천천히 나아지는 호흡에 안도하며 평소처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저녁에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인파가 몰리기 쉬웠고, 그 혼잡한 상황을 피하고자 평소보다 약간 일찍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에 들어섰다. 휴대폰으로 간단히 영상을 시청하다가, 지하철이 들어와 안전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했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살피며 전보다 매우 조심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지하철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조심스럽게 길을 터주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춤거리며 발을 떼고 디딛은 그 순간, 내 왼쪽 발이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틈에 빠졌고 그대로 왼쪽 다리 전체가 심연에 빨려들어갔다. 순식간에 내 몸이 그 좁은 간격에 들어가버려서 나는 주저앉아버렸고 오른쪽 다리로 간신히 승강장의 안전발판을 밟고 있었다. 나의 시야는 사람들의 종아리를 향해있었고 팔은 떨리며 바닥을 짚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실감하는 것에 앞서, 어떻게든 빠져나오기 위해 왼쪽 하반신을 발버둥쳐봤지만 아무것도 밟히는 것이 없어서 몸은 더욱 들어갈 뿐이었다. 곧 지하철의 문이 닫힌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더욱 당황할 뿐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사람들은 커진 눈으로,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나를 꺼내올려준 건, 사람들이었다. 약 2~3명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나를 양 옆에서 팔을 들어 올려주었다. 그 엄청난 힘에 나도 모르게 몸이 쑥 들려서 그 틈에서 완전히 빠져나왔고, 왼쪽 다리로 지하철 바닥을 내딛으며 얼떨결에 승차를 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줘서 그대로 지하철 안쪽으로 들어가서 기둥에 몸을 기댔다. 사람들은 나의 진정을 위해 최대한 내 주변을 텅 비워줬고 한 아저씨께서는 내게 두 차례나 앉으라고 권유하셨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과 다리로 괜찮다고 연거푸 사양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도, 또 다시 사고를 경험하기 싫어서 서두르다가 오히려 크게 넘어질 뻔 했다. 벽에 기대자마자 주저앉아 식은땀을 닦아내고 거친 숨을 몰아쉰 나는 한순간에 발생한 이 일로 큰 사고가 '내게' 발생할 뻔 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자리를 이동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피하려고 했다가 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했고, 사람들은 나를 구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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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 떠오른다이끄는 자 없이 표류하게 된 극한의 순간 속에서 사람들은 비극적인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살인과 식인까지 해가며 그 지옥같은 순간을 버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고자 한다풍랑 너머 구원의 손길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몸을 뻗는다.

 

여전히 뉴스 댓글엔 참사 당일의 '사람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 때문에, 그런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한 것이라고. 그러나 참사 현장에는 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나 또한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내가, 단순히 그 순간을 즐긴 '사람들'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이 많은 데를 간 이유는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였고, '선량한' 시민의식 덕분에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내가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으며, 많은 인파 속에서 빠르게 나오기 위해서 서두르다가 되려 승강장에서 넘어질 뻔해서 또 다른 사고를 만들 뻔 했다. 사람들에 의해 살아남은 내가, 해당 댓글들을 보며 느낀 점들이다.

 

고인들에 대해, 명복을 빌며, 다시 한 번 나를 도와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아트인사이트] 명함_컬쳐리스트.jpg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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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청춘
    •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 <메두사호의 뗏목>과 관련하여 글을 풀어낸 부분이 인상깊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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