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두 세계를 잇는 번역가의 일 -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강초아 번역가

글 입력 2022.11.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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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_표1 띠지.jpg

 

 

우샤오러의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짧지 않은 분량인데도 결말을 볼 때까지 책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담고 있지만 문장만큼은 잘 읽힌다. 대만에서 출판된 이 작품이 한국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 여러 사람의 수고가 들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번역가다. 흥미롭고 유용한 책이라는데,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번역가는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잇는 사람이다.


찬호께이의 『13.67』을 시작으로 7년간 번역 일을 해온 강초아 번역가는 번역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번역을 할 때마다 원문이 지닌 아우라를 최대한 보전하되 번역가의 주관이 개입되어 오역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도 그런 마음으로 번역했다. 책을 쓴 작가의 절실한 마음이 한국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지난 10월 28일 강초아 번역가를 만나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를 번역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독자를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번역의 세계도 살짝 들여다봤다.

 

 

 

바다 건너의 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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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도 아무 정보 없이 책을 읽을 때 그 장면에서 제가 느꼈던 미묘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일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는 강초아입니다. 번역을 한 지는 7년 정도 되었어요. 

 

 

번역을 맡으신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가 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책이 나온 직후보다 제가 맡은 번역을 탈고했을 때 끝났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어요. 번역된 원고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 작업을 거치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완성된 책을 받아보면 완전히 새로운 마음이에요. 번역하는 동안 가까이 붙어 지내던 원고가 새로운 친구가 되어 나타난 기분이에요. ‘텍스트’가 이렇게 손에 잡히는 ‘물건’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죠. 이번 책을 받았을 때도 그런 기분이었어요.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어떻게 번역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의뢰가 온 걸까요?


저는 지금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어서 출간하면 좋을 외서를 골라 뉴스레터 형식으로 출판사에 소개해요. 그걸 받아 본 출판사에서 목록 중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판권 계약을 하고, 저희 쪽에 번역 기회를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도 그런 케이스였어요. 

 

 

그럼 책을 먼저 발견하고 소개한 건 번역가님이시겠네요. 이 책의 무엇에 끌렸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우샤오러는 원래 알고 있는 작가긴 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의 원작 소설가인데, 당시 그 드라마가 대만에서 화제가 되었기에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다루는 주제도 좋았어요. 아무래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주제니까요. 읽으면서 작가님이 힘들게 쓰셨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원어로 책을 먼저 읽으셨을 텐데, 그때 가장 강렬하게 와닿았던 부분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초반에 화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오빠가 타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어린 여자아이가 오빠 허리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와요. ‘나’의 정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뒷이야기도 모르는 상태인데 그 장면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또 그런 기분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고요. 책을 끝까지 읽은 뒤 충격을 받았죠. 번역하며 독자분들도 아무 정보 없이 책을 읽을 때 그 장면에서 제가 느꼈던 미묘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장을 고르고 거르는 필터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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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원서

  

 
“말하자면 한국 독자는 저라는 필터를 거쳐 나오는 한국어 문장을 읽는 거잖아요.”
 


이 책을 번역하며 가장 많이 신경 썼던 부분이나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쑹화이쉬엔이 나오는 부분을 번역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 부분은 ‘나’라는 화자의 입장에서 전개가 되는데, 분명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인데도 가끔은 그냥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시점도 불분명하고, 어떤 대화문은 쌍따옴표가 없이 나오기도 하는 등 불안정한 사람이 자신의 어린 시절로 퇴행한다는 묘한 분위기가 원문에서 느껴졌는데, 그걸 살려서 번역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너무 과도하게 제 느낌이 들어가면 원문을 해치게 될까 봐 고민이 컸습니다. 

 

 

번역가님은 이 책의 독자분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나요?


작가님은 독자들이 이렇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겠지만, 번역가로서 그런 바람을 가지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번역가는 다른 독자보다 좀 더 먼저 읽을 뿐 결국에는 일종의 독자라고 생각해서요. 오히려 저는 제가 원서를 읽을 때 받았던 인상이 번역하는 데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요. 번역가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그저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해요. 


그냥 독자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해 말해보자면, 정말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을 느낀 책이라 추천을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안 읽고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해요. 설명하다 보면 이 책이 가진 장점을 다 살릴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냥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원서를 읽을 때 받았던 인상이 번역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어떤 작품에서 작가가 다른 작품을 오마주한 부분이 보일 때가 있어요. 물론 작가는 어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죠. 독자가 보물찾기를 하듯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제가 오마주를 발견해서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그 부분을 강조해서 번역하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에게 너무 많은 걸 알려주는 게 아닌가 고민을 하는 거죠. 말하자면 한국 독자는 저라는 필터를 거쳐 나오는 한국어 문장을 읽는 거잖아요. 혹시라도 오역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번역가님이 번역을 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책과 관련된 일을 찾다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도 번역에 관심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번역가가 되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일단은 회사에 들어가서 취직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7,8년 일했을 무렵 예전 편집장님이 저작권 에이전시 회사를 차리면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주셨어요. 에이전시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번역 기회가 생겨서 번역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편집자로 일하시다가 번역 일을 하시게 된 거네요. 어떤 일이 더 잘 맞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웃음)


저는 번역 에이전시에 다니며 번역도 하는 경우라 전업 번역가와는 좀 다르긴 한데, 둘 다 매력이 있고 즐거워요. 번역은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 내 시간을 내가 관리해야 한다는 게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동료나 상사가 없이 일하니 홀가분하기도 한데, 가끔은 외롭기도 하죠. 

 

 

번역을 하며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번역한 책에 대해 좋은 말을 들을 때요. (웃음) ‘좋은 말’이 꼭 번역을 잘했다는 얘기만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 내가 번역한 책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무척 기뻐요. 중어권 책은 독자층이 넓지 않고, 소설이 아닌 경우 독자 반응도 상대적으로 적거든요. 또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뿌듯하죠. 제가 원서에서 느꼈던 재미를 한국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옮겼다는 뜻이니까요.

 

 

 

중어권 소설의 광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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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다양한 책을 번역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역서가 찬호께이의 『13.67』입니다. 여러 가지로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역서가 이목을 끌기는 쉽지 않은데, 국내에 소개된 찬호께이의 첫 작품인 데다가 많은 주목을 받았잖아요. 


사실 찬호께이 작가님 정도라면 누가 소개하든 한국에 출판되었을 거라 생각해요. (웃음) 제가 운이 좋은 부분이 있었죠. 많은 번역가가 한국에 번역되면 좋을 책을 여러 가지 경로로 소개하는데, 저는 에이전시 회사에 다니니까 좀 더 소개하기가 편한 부분이 있어요. 혼자 읽고 너무 재밌는데 소개할 루트가 없으면 답답할 것 같아요. 

 

 

번역가님이 생각하시는 번역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일단 번역하려는 언어에 능숙한 것은 기본값이고, 한국어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번역가가 가장 하기 쉬운 실수인데, 본인은 원문을 다 이해하기 때문에 그걸 그냥 한국어로 옮겨놓으면 다른 사람도 다 이해할 거라고 착각하는 거예요. 원문의 뉘앙스 같이 한국어로는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것들도 많아요. 그럴 때 번역가는 나름대로 어떤 장치를 활용해서 그런 것까지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거든요. 그때 중요한 게 한국어 구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을 7년간 하시면서 처음과 바뀐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말 긴 경력을 가진 선배님들이 많기에 7년으로 변화를 논할 수 있나 싶지만, 저는 확실히 능숙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처음에는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게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느낌이라면, 나중에는 직선도로로 가는 것 같죠. 그렇다고 그 직선도로를 맹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에는 중국어로 된 내용을 단순히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게 번역가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인 장면이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 역시 번역가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어권 소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번역가로서 중어권 소설의 매력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중어권 작품의 특징으로 ‘이런 이야기까지 한단 말이야?’ 할 정도로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인구가 많고 역사가 길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현대소설은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중어권 작품은 계속 바깥으로, 사회로 뻗어나가요. 사회적 영역의 이야기를 개인의 경험과 연결해서 풀어내기도 하고요.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홍콩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얽힌 역사를 개인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 찬호께이의 『13.67』도 그런 류의 소설이에요.

 

 

혹시 중어권 번역가로서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중국 SF소설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시장도 훨씬 크고 국가적으로도 지원을 많이 해서 좋은 작품이 많거든요. 특히 중국이 정치체제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많다 보니 일반 소설은 우리나라 정서와 맞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SF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번역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번역가로서의 꿈이 있을까요?


특별히 어떤 작품이 있다기보다 꾸준하게 다양한 책을 번역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로 시작해 지금은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제가 어떤 책을 번역하는가보다 어떤 중국어권 책이 들어오고 그 책이 독자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더 고민을 하게 돼요. 중어권 책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지금보다 넓어진다면 저도 번역을 꾸준히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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