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딘가 어설프고 왠지 사랑스러운 - 낮과 달

글 입력 2022.10.2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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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었다. 그리고 남편이 의미심장하게 남긴 sns 기록을 좇아 제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장소의 사진과 무엇이 그립다고 읊조리는 한마디 문장. 의미심장하다지만 영 이해할 수 없는 종류는 아니었다. 남편은 그저 자신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제주에서의 삶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듯 나고 자란 곳을 추억하는 것이었으리라. 민희는 남편과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에 도착하니 이웃이 민희를 반겨준다. 요가도 하고, 카페도 운영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자기는 나마스떼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며 서글서글하게 웃는 낯이 친근하다. 그녀의 이름은 목하. 음악을 한다는 아들 태경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렇게, 이제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볼까 싶은 찰나. 무언가 이상한 조짐이 느껴진다.

 

바다 낚시를 하던 중 목숨을 잃었던 남편의 마지막 장소에 꽃이 놓여 있고, 작은 돌담에는 제 남편과 다른 누군가의 이니셜이 적혀 있다. 그뿐만일까. 목하의 아들 태경은 제 남편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나에게만 불러주던 노래를 태경도 알고 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잘 짜여진 현실이 눈 앞에 들이밀어진다.

 

남편을 추억하며 휴식하러 온 제주에, 남편의 첫사랑과 남편의 아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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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끔찍하고 자극적일 수가 없다. 코가 찡할 정도로 맵다. 그러나 영화는 무척 순한맛이다. 그 지점이 너무나 재미있다.

 

원치 않게 밝혀진 진실 앞에서 민희는 무너진다. 항상 남편과 자신이 다투던 부분은 아이를 갖자는 것이었는데, 남편은 그 주제에 있어서 항상 부정적이었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감히 남편의 첫사랑이었다는 목하에게는 자신이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가족의 모습이 있는 것이었다. 민희는 목하가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목하는 첫사랑이었던 남자의 마지막 사랑을 이웃으로 두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정 반대의 상황, 서로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불편한 관계는 의외로 유치하고 저돌적인 방식으로 해결된다. 민희는 상실의 아픔을 끓어오르는 분노로 덮는다. 남편과의 추억이 모두 오염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를 정말 사랑한게 맞는지, 이렇게 큰 비밀을 어떻게 숨길 수가 있었는지, 끊임없이 의심이 솟이오르며, 남편에 얼굴에 삿대질이라고 하고 싶으나 이미 죽은 사람에게 무엇을 더 할 수 있나.

 

결국 분노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목하에게로 향한다. 목하의 면전에서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목하가 아끼는 정원으로 달려가 전기톱을 들고 마구잡이로 파헤쳐 놓는다. 이전에는 보인 적 없던 철없는 모습으로 징징 울며 남편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끝끝내, 남편을 꼭 빼닮은 태경의 사진을 편집해 남편과 자신의 사진에 붙여넣어 기묘한 가족사진을 만들기까지.

 

그 상황을 목도하는 관객은 말도 안되게 돌발적이고 당황스러워서 진짜 그런다고? 차마 못보겠어! 공감성 수치가 올라와!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지만, 길을 잃고 날뛰는 민희와 그녀에게 휘둘리는 목하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져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지켜보게 된다. 사실 무척 크리피한 소재임에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유쾌한 톤 덕분에 무섭기보다는 웃음을 유발할 뿐이었다. 그 허술하고 유치한 분노가 정말로 삶 같다. 마지막 즈음, 밤새도록 팔씨름을 하다 잠들어버린 장면은 내가 살면서 본 장면 중 가장 사랑스럽고 웃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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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정 반대의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짜릿하다. 그 상황이 아이러니한 계기로 빚어질 때는 더욱 전투적인 마음으로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한 남자로 인해 인연이 맺어진 두 여자.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남편의 존재는 도리어 이물질적이다. 이 영화에서 남편의 죽음은 가장 의미심장하게 연출되는데 사실 별 게 없다. 죽음의 원인도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모르겠고, 아내를 멀리하고 과거의 사랑을 좇은 나쁜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아내에게 충실하고자 했던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새로운 인연, 새로운 삶을 만나게 해준 계기나 다리 정도가 되겠다. 실제를 알 수 없어 찝찝하기도 한데, 가벼워서 불편하지 않다. 목화가 말하듯, 과거가 아니라 그저 지금 주어진 이 순간에 집중해서 살아가면 된다 하는, 그런 맥락과 맞닿아 있는 영화적 연출인 것 같다. 그래, 이미 죽은 사람의 진실을 파헤치는게 무어 중요하겠는가. 어쩌다 보니 민희와 목화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는데.


민희와 목화 사이의 이 기묘한 인연은 종장에는 화해와 이해로 나아간다. 대단한 포용력이 있어서는 아니고, 치고받고 싸우다가 정이 든 모양새다. 물론 그 기저에는 서로의 상황과 마음에 대한 공감이 있다. 각자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의 형태가 어찌 보면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고통을 주었던 서로의 존재는 도리어 치유가 되는 관계로 나아간다.

 

돌이켜보니 묘한 공통점도 있다. 돌담에 쓰여 있던 남편과 한 여자의 이니셜. 민희와 목화 모두 mh더라. 감독님이 의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또 마지막에는 목화가 해녀가 되겠다고 당당하게 외치는데 민희의 직업은 수상안전요원이다. 영화 초반 두 사람의 극적인 대비감은 말미에 이르러 묘한 연대와 공통의 정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시사회에서 배우분들이 하나같이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편안하게 감상해주셔라, 하는 말을 전하시길래 대체 어떤 뉘앙스인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니 알겠다. 이토록 불편한데 이토록 편안할 수가 없다. 어딘가 어설프고 왠지 사랑스럽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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