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의 탐욕과 벌, 둘은 언제나 함께여야만 하는가 - 뮤지컬 '테레즈 라캥' [공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테레즈 라캥>
글 입력 2022.10.2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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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같은 핑계 같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뮤지컬을 꽤 오랫동안 접하지 않아 초대를 받게 되었을 때 긴장이 됐다. 처음 초대를 확인했을 때 뮤지컬 <테레즈 라캥>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다룬다는 무게 있는 주제였다.

 

이제까지 봐온 뮤지컬은 주로 밝은 분위기의 로맨스나 가족들끼리 보기 좋았던 '해피엔딩' 위주의 작품이었기에 암울한 주제의 뮤지컬은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까 궁금했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노래와 춤이 즐거워 뮤지컬을 좋아했던 내게 <테레즈 라캥>은 어떤 경험을 선사할지 기대되었다.

 

드림아트센터는 처음이었지만 혜화는 오랜만이었다. 공연을 보러 몰려든 인파는 당연히 초면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반가웠다. 조금은 어수선하게 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부터 막이 오르기 전 잠시의 적막까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현장의 공기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테레즈 라캥>의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놉시스>

 

1860년대 프랑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고모에게 맡겨진 뒤, 병약한 사촌 카미유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테레즈. 테레즈는 고모와 함께 카미유를 돌보며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미유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는 테레즈.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카미유의 어린 시절 친구인 로랑이 그들을 찾아온다. 테레즈는 카미유와는 다르게 완숙한 남성미를 가진 로랑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두 사람은 곧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서로를 탐닉하는 밀회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둘은 그들에게 걸림돌인 카미유를 없애기로 계획한다.

 

한 치의 의심도 받지 않는 완전 범죄에 성공하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데…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욕망이 불러온 파국이 휘몰아친다.

 

 

 

홀로 설 수 없는 인물들


 

첫 넘버이자 '키스해 줘, 카미유'는 테레즈가 객식구로 얹혀살며 느끼는 압박과 무력감이 잘 나타난 노래이다. 무능하지만 자신과 결혼해 살겠다는 카미유와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체념한 듯 노래하는 테레즈의 모습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잡아 눌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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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 가족'은 카미유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테레즈를 의미한다. 이 세 인물은 각자 자신이 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믿으며 그렇게 하고 있다 생각한다. 병약하고 무능력한 카미유는 겉으로는 밝다. 그러나 그의 신경질적인 성격은 테레즈를 지치고 눈치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의존적이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이다. 아프지도 않은 아들에게 약을 먹이고 그를 돌보도록 테레즈를 종용하는 인물이지만 사실 그녀 또한 자신의 손안에서 상황을 보고 싶어 하는 불안에 빠진 인간이뿐이다.

 

밝고 당당한 로랑 역시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아니다. 카미유의 절친한 친구지만 그는 사실 잘 꾸며지고 단정한 '집'에 대한 욕망이 있는 인물이다. 테레즈를 사랑하는 듯하지만 그보다는 포근한 공간과 화목해 보이는 가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는 잠깐 대사로 지나가는 그의 가정사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테레즈 역시 자신의 욕구를 억누른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테레즈, 테레즈 테레즈. 공연 내내 그녀의 이름은 수없이 불리지만 과연 '테레즈'로서 살아가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정해진 시간에 카미유의 약을 챙기고, 살림을 돌봐야 하는 그녀에게 나타난 유일한 구원 같은 존재, 로랑마저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은 아니기에 그녀는 답답하다.

 

 

 

테레즈, 테레즈, 테레즈


 

대체 테레즈는 몇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들었을까. 자신을 갑갑한 집으로 해방시켜줄 것 같았던 남자 로랑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미쳐버리고 만다. 무기력하고 불안정한 카미유를 달래기 위해, 엄마의 지휘 아랫집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날들이 너무 쌓여서다.

 

집착과 불안.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탓에 주변 인물들이 그녀를 옥죄었다. 서로의 고통은 또다시 다른 이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사랑받은 존재일지 모른다. '카미유의 고백'은 특히 테레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만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카미유의 마음이 나타난다. 괴로운 현실을 딛고 살고 싶어 할 정도로 말이다.

 

로랑 역시 카미유를 죽이고 원하던 집을 차지하게 되지만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런 그녀 곁에 여전히 남는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라캥 부인과 테레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죄책감으로 보내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죽으려 할 때도 그는 넘버 '계획'에서 말했던 살인 방법들 중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자신과 함께 테레즈를 떠나보내려 한다. 그만의 사랑법이 아닐까.

 

 

붉은 포도주를 주는 거야

깜짝 놀랄 만한 약을 타서

기분 좋게 부드럽게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죽는 거야

 

넘버 '계획' 중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 그리고 네 개의 호흡


 

가장 인상 깊었던 넘버 '왈츠'에서는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네 인물은 시간과 반대로 대형을 돌며 흘러가는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준다.

 

 

테레즈, 로랑, 라캥 부인, 카미유

시간이 멈춰 버린 공간

서로의 호흡에 맞춰

 

테레즈

이러다 점점 숨 멎겠지

 

로랑

안정된 숨소리 모두 끝났어

 

라캥 부인

새로운 희망 앞에 맹세해

 

카미유

멈춰 버린 어린아이

 

테레즈, 로랑, 라캥 부인, 카미유

시간이 멈춰 버린 공간

서로의 호흡에 맞춰

흐르는 공기

 

로랑

달아오른 살결에 취해

손끝으로 당신을 그려

팽팽해진 끝 모를 욕망이

당신의 모든 걸 그려

 

테레즈

빛깔 잃은 내 입술에 키스

 

테레즈 / 로랑

너의 입술에 포개어 / 우린 떨어질 수 없어

 

테레즈

소리 잃은 내 심장에 키스

내 심장을 구해줘

 

로랑

우린 함께할 수 있어

 

테레즈, 로랑

우린 행복할 수 있어

우리는 우리는

 

넘버 '왈츠' 중에서

 

 

꿈이길 간절히 바람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기만 하는 인물들이 안타깝다. 각 인물들의 갈등 인물 간의 직접적인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연된다. 각자의 불안을 안고 드러내지 않을 때와 대비돼 불안과 죄의식은 커져가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절망적 엔딩이 그들을 덮친다.

 

커튼콜에서 누군가 테레즈를 부르고 그녀가 뒤돌아 본다. 그녀의 시선은 어딜 향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처음 카미유의 청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이는 일에 동참해야 했던 불안한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만일이라는 말은 소용없는 줄 알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카미유의 청혼을 거절하고 '집'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면 결말은 달라졌을까. 안타까움으로 시작하고 끝이 나는 훌륭한 뮤지컬이었다. 주제를 끝까지 끌고 함께 번뇌하도록 만드는 기획의 측면에서 말이다.

 

 

 

자연스러운 욕망과 징벌, 여전히 열린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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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엔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과연 이 뮤지컬의 교훈은 '욕망을 따르면 반드시 파멸이 온다'일까. 저마다 존재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본다면 단순히 신이 내린 벌로 끝나는 엔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다. 로랑과 테레즈가 결국 서로를 증오하고 가여워해 죽음을 택하고 라캥 부인은 이를 지켜본 채 부동자세로 죽어가야 하는 결말이 이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들의 죄가 그렇게 큰 것일까.

 

겉으로는 밝고 쾌활하지만 안정된 가정에 대한 열망이 있는 로랑, 표면적으로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외롭고 고단한 엄마와 테레즈, 그리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처럼 채워지지 않아 괴로운 카미유.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집착과 폭력으로 이어진 관계를 벗어나려는 방식이 과연 올바를 수 있을까. 그들이 무고하다는 확실한 근거를 댈 수 없기에 더욱 그 절망스러움이 잘 전달된 것 같다. 때문에 죽음으로 끝나지만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오프닝넘버 '키스해 줘 카미유'부터 마지막 막을 내리는 에필로그까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탐욕과 죄의식, 그로 인한 파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공연이었다. 좋은 공연과 노래를 보여준 캐스트들의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해진다.

 

이제는 뮤지컬을 좀 더 가까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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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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