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후회는 이야기가 된다 - 테레즈 라켕 [공연]

글 입력 2022.10.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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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인적일 수 있지만 나에게 뮤지컬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작위적인 서사 구성 때문이다.

 

“납득이 안 돼 납득이”

 

뮤지컬을 보고 이렇게 외치는 건 뮤지컬한테 해서는 안 될 짓이다. 노래 부르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노래 부르다 갑자기 사람을 죽이고. 당연히 납득이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선을 쫓아 가는 것에 뮤지컬 관람의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나는 과격하게, 폭풍처럼 흘러가는 뮤지컬 서사를 어떤 상징이라고 생각하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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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의 서사는 이러하다. 어릴적 고모의 집에 맡겨진 테레즈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갈 데 없어지고, 아픈 고모의 아들인 카미유를 함께 돌보게 된다. 그러다 카미유와 정해진 수순처럼 결혼을 하고, 라캥 집안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카미유의 친구인 로랑을 만난다. 카미유와 달리 건강한 신체, 직업을 가지고 있는 로랑에게 빠져든다. 결국 로랑과 사랑에 빠지고 카미유를 죽여 라캥 집안에서 도망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단순한 파괴의 가능성


 

카미유를 죽이는 과정까지 이 극은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나는 앞서 말했듯 뮤지컬의 모든 말도 안 되는 서사를 그저 하나의 상징처럼 느끼곤 한다.


현실은 원래 좀 지독한 면이 있지 않은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는 내가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체로 끔찍하다. 불안과 불만 욕망 후회가 뒤얽혀 나를 옭아매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테레즈는 로랑을 만나 뒤, 현실을 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유일하고, 비밀스러운 만병통치약을 알게 된다. 그는 억압받고, 후회 뿐인 테레즈의 삶을 되돌릴 수 있다고, 그 삭제의 가능성을 은밀하게, 지속적으로 속삭인다. 그런 속삭임을 들은 사람치고, 로랑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테레즈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는 단 한번의 단순한 파괴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현실을 적응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뿐이지 될 수 있다면 다른 삶을 살고 싶다. 테레즈와 우리의 차이점은 테레즈는 다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현실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안주한 반면 그녀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테레즈 라캥_선민.jpg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녀는 ‘다른 삶’을 택한 죗값을 톡톡히 치른다. 그녀가 하는 선택은 객석에서 편안히 그녀를 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다른 결말을 맺는다.

 

테레즈는 그제야 그녀의 결정을 후회한다. 그녀의 안락했던 ‘현재’가 괜찮았던 삶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안도한다. 우리는 여기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삶의 파괴와는 등을 진 채로. 동시에 그녀의 파괴를 지켜보며 느끼는 이 안도감이 이 뮤지컬의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그녀로부터 조롱당하는 것이다. 테레즈의 후회는 곧 관객에게로 옮아온다. 그리고 다시 테레즈와 로랑은 함께 속삭인다.

 

네가 ‘다른 삶’을 택하지 않고 ‘현재’를 살기 때문에 너는 더 큰 후회를 경험하게 될 거야.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그녀는 후련해 보였다. 마음에 짐이 가득 쌓여 버린 관객들과는 달리.

 

 

 

가부장제 안에서 벌을 받는 아이


 

한편 ‘현재’라는 안락함과 답답함을 내던져 버린 테레즈는 마치 벌을 받고 있는 아이처럼 보인다. 특히 극 전체를 관통하며 테레즈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라캥의 시선 때문에 더더욱 테레즈가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는 왜 벌을 받을까, 라고 생각하며 한편 이 연극을 페미니즘적으로 읽게 된다.

 

테레즈는 이곳으로도, 저곳으로도 갈 수 없는 한 시대의 길 잃은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돌봄 노동, 남편의 사랑스러운 아내, 보편적 여성의 역할극 바깥으로 벗어날 경우 벌을 받고, 다시 세계로 돌아올 수 없다.

 

길 잃은 그녀의 울부짖음, 로랑을 향해 “네가 내 삶을 망쳤다”고 외치는 테레즈를 보며 어쩌면 로랑은 처음부터 그의 구원자가 아니라 그녀를 실험에 들게 하기 위해 나타난 악마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영화 <아가씨> 속 “내 삶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 반대편에 ‘로랑’의 성별(남성)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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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은 그녀를 결코 가부장적 세계에서 벗어나게 허락하지 않았다. 테레즈가 그토록 지겨워했던 라캥의 집에 두 사람은 남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캥은 로랑을 자신의 아들의 대체로 위안하며 과격하게 로랑과 테레즈의 결혼을 밀어붙인다. 남편까지 죽였는데 집을 떠나기는 커녕 유사한 정상 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녀의 절망은 되풀이되는 끔찍한 속박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점은 그만 라캥의 집을 떠나자는 테레즈의 말을 들었을 때 로랑의 반응이다. 그는 “이토록 안락하고 좋은 집을 두고 왜 떠나느냐"며 아이처럼 집 구석에 웅크린다. “떠날테면 너 혼자 떠나”하고 손을 휘휘 내젓는다.

 

이토록 안전한 남성중심 가부장제 세상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려 하는 듯한 로랑의 행동을 보며 확신했다. 로랑은 테레즈에게 악마가 맞다.

 

 

 

후회라는 이야기


 

매일 다른 후회를 지칠 줄도 모르고 하는 나는 최근에 이런 문장을 읽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2만 개도 넘게 인간의 후회를 모아온 다니엘 핑크는 말한다.

 

 
“후회의 뚜껑을 열어보면 그 동력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우리는 머릿속 타임머신에 올라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과거의 이야기를 고쳐 씁니다.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어땠어땠을지 상상하는 것이지요. 과거를 바꿨으니 현재의 이야기도 바뀔 수 밖에요. 참으로 신통한 재주죠!”
 


인간의 후회라는 감정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덕에 인간만이 시간 여행 능력을 가진다.

 

후회 속에 갖혀 삶을 영위하는 테레즈의 모습은 언뜻 봤을 때 벌을 받는 것 같기도, 따라서 관객들에게 죄악을 저질러선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테레즈의 이야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여긴다.

 

테레즈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그녀는 평생 라캥의 집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테레즈는 라캥의 집에서 카미유의 아내로 사는 삶이 너무 지겨워 머릿속으로만 온갖 일탈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녀는 일탈 이후의 삶을 최대한 끔찍하게 그려내 어떻게든 현재를 버텨내려 한다.

 

'로랑과 사랑에 빠진다면 나는 후회할 거야, 남편을 죽인다면 나는 후회할 거야.'

 

후회를 상상하며 삶은 이러나, 저러나 참 별 거 없다고, 불안과 불만 욕망 후회가 뒤얽힌 건 어떤 삶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것이다. 빠져 나올 수 없는 현실의 굴레에서.

 

그녀에게 후회란 이야기의 시작인 동시에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기묘한 동력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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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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