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0km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운동/건강]

뛰든 걷든 완주
글 입력 2022.10.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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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마라톤까지 약 한 달 정도가 남았다.


나는 가끔 느닷없는 도전을 한다. 생각해 보면 올해가 사실 그런 도전들의 연속이었는데. 주변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나조차도 몰랐던 돌발 도전. 아무래도 올해부터는 재미 세포나 의욕 세포 같은 것들이 프라임 세포가 되는 시기인가 보다.


나조차도 얼떨떨한 도전을 위해서 한 달 정도의 연습 기간을 두기로 했다. 대학 때는 선배를 따라 몇 번 뛰어보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봉식 선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톡방 이름은 야반도주. 중랑천을 빙 둘러 뛰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내가 겨우겨우 장평교에 도착했을 때 선배들은 이미 군자교를 찍고 온 이후였다. 나는 그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장평교에서 몸을 돌렸다.


사실은 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피부가 얇아서 뛰고 나면 보기 싫을 만큼 불그죽죽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라앉히는 데 한참 걸린다. 학생 때는 체육대회니 육상부니 해서 뛸 일이 제법 많았다. 그래도 제법 달리는 축에 속했기 때문에 늘 체육대회에서는 계주를 맡아 했어야 했는데, 우열을 가리기 위해 달리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죽을힘을 다해 사수하던 앞머리가 홀라당 까지는 것도 싫었다.


장거리는 더한 문제였다. 운동장을 6바퀴씩 돌아야 하는 수행평가 때는 거의 울면서 뛰었던 기억이 있다. 가끔 동거인을 따라 한강을 찬찬히 뛰곤 하는데, 결국 나는 멀어지는 동거인을 보면서 걷는다. 뛰는 것이 싫어 횡단보도 끄트머리 신호에는 건너지 않고 버스도 다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기만 한다.


이렇게 달리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읊는 사람이 왜 마라톤에 도전했나. ‘최근 몇 달간은 도무지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를 않아서’ 아마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몇 달간 나는 ‘뭐 재미난 것 없냐’를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다.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모르니까 찾지.


그러던 중 향이가 라이프플러스 JTBC 서울 마라톤을 신청했다는 말을 했다. 몇 달 전부터 이야기하던 마라톤 표가 드디어 열렸단다. 망원한강공원에 늘어지게 앉아있던 나는 그 소식을 보고 허리를 세웠다. 아, 뛰어볼까? 마라톤...한 번 해볼 만한 거 같은데. 하필 또 그날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고, 내 도전을 무조건 응원하는 K가 옆에 있었다. 마침 취소표도 풀려 있었다. 일사천리로 예매까지 해버린 후에 나는 K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 마라톤 등록해버렸어.


그렇게 덜컥 나는 내 인생 첫 마라톤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첫 연습날이었다. 가볍게 3km부터 뛰어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왔지만 3km...결코 가벼운 거리가 아니었다. 일단 뛰던 대로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렸다. 이 정도면 1km는 달린 것 같아서 러닝 앱을 켜보니 1km는 무슨. 500m도 못 와서 벌써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려니 속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서 물을 들이켰더니 물통이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면서 몸에 출렁임을 더해서 더 힘들다. 뛰면서 숨 배분을 하는 방법을 몰라 결국은 기침을 토해내고 마는 것들도 발전이 없이 어려웠다.

 

이 악물고 1km를 채워 달렸는데, 2km에 접어들자마자 힘이 쭉 빠졌다. 그대로 걸었다. 걷다가 뛰다가. 다시 걸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자 다시 힘이 났다. 그래 내가 운동을 안 하던 사람도 아니고 이 정도는 좀 해보자. 오기였다. 3km는 속도를 조금 늦춰서 뛰었다. 기가 찼다. 3km도 못 뛰었는데 나 10km는 어떻게 뛰어야 하는 거지.


기록은 처참했다. 3km 뛰는 데 거의 22분이나 걸렸다. 세부 기록을 보니 얼마나 무작정 뛰었는지가 보였다. 1km 구간은 5.47. 2km 구간은 8.07, 3km 구간은 7.57이다. 생각보다 처참한 기록에 살짝 속상해졌다. 기분이 걸음에 쉽게 반영되는 내 걸음이 터덜거림으로 바뀌자마자 무릎이 확 꺾일 뻔했다. 러닝...정말 위험한 운동이구나. 몸을 달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천근만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미 마라톤 경험이 있는 친구들에게 내 기록을 보냈다. 보아라 얘들아. 그래도 나름 꾸준히 운동했던 나의 기록이 이렇게 처참하다. 그러나 친구들의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친구들은 내 기록을 보고 입을 모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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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전력 질주를 하니까 힘들지...

나는 km당 평균 8분으로 뛰어

5분 대면 그냥 전력 질준데.


그러니까 10km든 뭐든, 오래 뛰기 위해서는 페이스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뛰어 보며 안 셈이다. 나는 몸에 하루의 유예를 두고, 이튿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걷는 것처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더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주변 뛰는 사람들이 앞질러 가면 조바심이 났고, 실시간으로 앱의 목소리가 알려주는 평균 속도가 늦으면 다음 발이 빠르게 앞으로 나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리로 눈을 돌렸다. 아 저 골목에는 이런 가게가 생겼네, 이 시간에 이쪽은 사람이 아직도 많구나. 이쪽은 신호등이 오래 걸리네. 이 거리는 보수를 좀 해야겠다. 지금 이렇게 뛰니까 숨이 차는 것 같네, 땅을 차는 방법을 좀 바꿔볼까. 숨은 이렇게 나눠 쉬니까 한결 편하다. 이렇게 주변과 나를 중심으로 시선을 옮기니 5km 완주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늘 뇌의 모든 부분을 써야지 온전히 무언가가 완성된다고 여기던 것에 금이 가던 순간이었다. 어떤 부분은 오히려 집중을 덜어내야 하는 부분도 있구나. 너무 마음을 쏟으면 안 되는 것들도 있구나. L은 달릴 때는 달리는 것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버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야 더 잘 달릴 수 있어.


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목표는 완주. 원래는 1시간 안에 들어오겠다는 당당한 목표를 세웠으나 실제로 몇 번 뛰어본 결과 완벽하게 불가능한 플랜임을 깨달았다.

 

마라톤은 무조건 뛰는 게 아니야. 힘들면 걸어도 되고 잠깐 쉬어도 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마라톤에 참가하는 두 명의 H가 해준 조언을 업고, 나보다 먼저 뛰어가는 사람을 보기보다는 지금 헉헉거리는 내 상태를 더 돌아보고, 뛰는 나의 길을 더 많이 짚어보기로 했다. 10km는 아직까지 무서운 거리지만 적어도 이 질문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그래서 10km까지는 얼마나 남았다고요?

 

 

[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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