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돌볼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 연극 ‘정희정’

글 입력 2022.10.1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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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22 가을페스티벌_통합 포스터.jpg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스트라이크’가 시작되었다. 이번 페스티벌은 10월 3일부터 12월 18일까지 총 5편의 공연으로 관객을 만난다. 그중 래빗홀씨어터의 <정희정>은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돌봄의 도돌이표’


 

정희정_03_래빗홀씨어터 ⓒ이지수.jpg
사진제공: 래빗홀씨어터 ⓒ이지수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정희정’은 거꾸로 읽어도 똑바로 읽어도 정희정이다. 시작과 끝이 같은 이름에서 갓난아기로 시작해 노인으로 끝나는 사람의 삶을 떠올려 본다. 노인이 된다는 건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둘은 많이 닮았다. 사람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채로 태어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고, 다시 할 줄 아는 것이 점점 줄어들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다가 죽음에 이른다. 래빗홀씨어터는 작품을 설명하는 글에서 ‘돌봄의 도돌이표’라는 표현을 썼다. <정희정>은 ‘길정희’와 ‘양희정’이라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이름의 두 여자를 통해 삶 속에서 반복되는 돌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길정희와 양희정의 역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아기, 엄마, 딸, 할머니, 요양보호사를 오간다. 등장하는 배우는 두 명이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얼굴과 말투, 행동이 계속해서 달라진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얼굴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자신의 처지에 따라, 역할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그렇게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 되었다가, 두 명의 임산부가 되었다가, 요양보호사와 그가 돌보는 노인이 되었다가 한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마주 보면 무한히 반사되는 거울 같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다. 70분 동안 우리는 인간의 삶 속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돌봄을 본다.

    

폭넓은 연령대를 표현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표현력이 결정적이지만, 소품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노인의 이야기를 할 때 무대에는 할머니 인형이 등장한다. 배우가 옷처럼 입을 수 있게 만들어진 할머니 인형은 무대의 한계를 깨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람이 인형을 입고 인형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은 사람과는 또 다른 형태다. 이는 나이가 들면 인형처럼 자신의 몸의 통제력을 잃는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나이가 들며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를 죄인으로 만드는 지금의 돌봄



정희정_02_래빗홀씨어터 ⓒ이지수.jpg
사진제공: 래빗홀씨어터 ⓒ이지수

 

 

우리는 돌봄 받고 또 돌보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현대 사회는 그 돌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9시부터 6시까지라는 보편적인 노동 시간은 집에서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가정주부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정해졌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닐 테다. 최근 들어 육아휴직 제도와 유연근무제 등 여러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아이를 낳고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 공백’은 시시때때로 발생한다. 연극에서는 돌봄 공백을 댐이 터지는 것에 비유한다. 24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부부가 아이를 책임진다 해도 그 톱니바퀴 장치의 어느 한 부분이 삐끗하는 건 한순간이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직장에 급한 일이 생기는 등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일로 인해 겨우 막고 있던 둑의 한 부분이 터져버리고 만다. 끝이 없는 돌봄의 막막함과 불안감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물과 반복해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표현된다.

    

연극의 전반부에서 돌봄의 대상이 아기와 어린이라면 후반부는 노인으로 바뀐다.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노인을 돌보는 일이 훨씬 더 무겁게 그려진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이가 언젠가 어른이 되고 자립할 것을 전제로 하는 반면, 노인을 돌보는 일은 죽음이라는 이미 정해진 결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극은 실제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가족을 간병할 때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멈춰버린 환자의 시간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의 시간 사이를 오가며 간병인은 자기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극을 보며 많은 관객이 공감하는 부분은 ‘죄책감’일 것이다. 극 중 여성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돌봄에 충실하지만,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들의 모습은 현재의 시스템에서 돌봄은 어떤 식으로든 ‘지는 게임’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후회하지 않으려 돌봄에 최선을 다하자니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타협을 하자니 비용 문제와 불효자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오늘날 자신의 일을 놓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훼손되고야 만다.

 

 

 

돌봄을 삶의 기본값으로


 

정희정_04_래빗홀씨어터 ⓒ이지수.jpg
사진제공: 래빗홀씨어터 ⓒ이지수

 

 

연극은 돌봄의 어려움, 오늘날 생겨나는 돌봄 공백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돌봄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요양보호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장은 요양보호사들을 갈아 넣어야 겨우 굴러갈 정도로 열악하다. 1인당 열 명이 넘는 노인을 돌봐야 하는 강도 높은 노동과 저임금은 노인 한 명 한 명을 고유한 개인이 아니라 그저 해치워야 하는 일거리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이들은 ‘똥 치우는 사람’ 정도로 취급받는다.

    

본래 가정 내에서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여성이 맡아 하던 일이라서, 몸으로 하는 일이라서… 돌봄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가는 개인을 기본값으로 두는 사회에서 돌봄은 필수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즉,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돌봄을 ‘선택’한 것이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 역시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은 전체 삶에서 한정적이다. 또한, ‘건강하고 독립적인 몸’이라는 신화는 예고 없이, 명확한 인과관계도 없이 어느 때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서 살고, 또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가오는 초고령화 사회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돌봄 문제가 보이지 않는 척, 우리의 문제가 아닌 척 살다가, 눈앞에 닥쳤을 때 매번 ‘지는 게임’을 해야 하는 걸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것,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행동 또는 돌봄 지원 시스템과 안락사 도입과 같은 제도적 지원이 돌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그보다 앞서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가 돌봄을 대하는 태도다. 연극 속에서 반복되는 돌봄의 모습은 개인이 돌봄으로부터 해방되는 사회가 아니라 필요한 돌봄을 행하면서도 돌보는 사람이 마모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홀로 남은 여자는 유모차에 어린 딸을 태우고 산책하는 젊은 여자를 본다. 그는 어떤 과거를 회상하고, 또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까. 연극은 한때 어린아이였고, 언젠가 노인이 될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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