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0년 전의 역사 속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 아웃랜더 [도서]

다이애나 개벌돈, 《아웃랜더》, 심연희 역, 오렌지디, 2022.
글 입력 2022.10.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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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지겹게 현실을 살다 보니 잠시 환기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택한 방법은 현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소설 속 세계로 떠나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두께가 꽤나 두껍게 잡히는 장편 소설, 《아웃랜더》를 읽게 되었다.

 

책을 처음에 받아 들고는 표지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무광 코팅이 잘 어울리는 연한 분홍색 배경에, 이 소설에 대한 예언을 압축하는 듯 두 개의 반지를 주축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덩굴과 옛스러운 느낌의 검이 반전되어 그려져 있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패턴이 상징적으로 금박 처리가 되어 있었다.

 

여담이지만, 책이 예쁘면 들고 다닐 맛이 나서 짐가방에 얹혀진 묵직한 무게에도 개의치 않게 되는 기분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주로 여기저기를 오고 가는 야외에서 펼쳐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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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개벌돈, 《아웃랜더》, 심연희 역, 오렌지디, 2022.

 


오랜만에 읽는 장편 판타지 소설로 아웃랜더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장르가 복합된 ‘올라운더’ 소설이라는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을 이루는 핵심은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다. 타임 슬립은 판타지/SF 장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전통적인 소재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최근 들어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보던 웹툰과 웹소설에서 정말 많이 접해 왔던 클리셰였다. 그래서 올라운더라는 소개가 붙을 정도라면 얼마나 입체적으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1945년 영국의 육군 간호사였던 클레어는 전쟁이 끝난 후, 남편 프랭크와 스코틀랜드로 6년 만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크레이그 나 둔’이라는 커다란 바위 유적지를 구경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200년 전의 같은 장소에 홀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200년 전의 스코틀랜드는 한창 자코바이트 운동을 배경으로 잉글랜드와의 갈등을 빚고 있었다. 클레어를 발견한 잉글랜드군의 랜들 대위와 스코틀랜드의 매켄지 씨족은 그녀를 첩자로 의심하고, 무사히 살아남아 현대로 돌아가려 애쓰는 클레어의 상황은 점점 복잡해지기만 한다.

 

내가 읽은 635페이지의 분량은 방대한 아웃랜더 시리즈의 도입부에 불과하다. 《아웃랜더》 1권에서는 1743년에 떨어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이방인이 되어 버린 클레어의 생존과 로맨스를 다룬다. 그리고 이 소설은 로맨스 서사가 주축이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올라운더 키워드에 꽂히는 바람에 나는 이 소설이 로맨스라는 것을 간과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흥미 있어 하는 장르는 아니었기에 소설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 인물 간의 격정적인 기류를 따라가는 데에는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되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살아남기 위한 클레어의 기지와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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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의 역사로 돌아간다는 것은 원시적이고 매우 야만적인 문화를 동반한다. 남성 중심의 씨족 사회라는 배경에서 전쟁이라는 상황은 여성에게 그야말로 악재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클레어가 겁탈당하는 장면이 몇 번이고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녀가 과거 속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했던 젊은 스코틀랜드 전사 제이미 역시 작중 그나마 신사적이고 헌신적으로 그려지는 남자 주인공이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의무 같은 것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이 1991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클레어는 꽤나 진보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는 인간적으로 부당한 대우에 기꺼이 목소리를 내며 저항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과거에 있는 동안 그녀가 머무를 수밖에 없던 매켄지 씨족은 지극히 민족중심주의적인 공동체이다. 가뜩이나 낯선 곳에서, 지금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과거의 관습이 문화적으로 여실히 새겨져 있는 그들 사이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색한 일일 테다.

 

이러한 전개에서 클레어가 식물학을 취미로 공부하던 육군 간호사였다는 설정과 역사학자였던 1945년의 남편에게서 종종 들었던 교양 상식들은, 1945년에 쓰던 도구나 약품들이 없던 1743년도에서도 그녀가 충분히 적응하고 때로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도 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에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했다. 


그렇게 《아웃랜더》 1권에서의 클레어는 자신이 마주한 운명적인 사건에서 아직 현재를 돌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고, 점점 자신이 존재하는 시대에 탐닉하는 듯 마무리된다. 1권의 중심 갈등이 낯선 시대 속 적응에 대한 것이라면, 이후에는 한 시대에만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편린에 대한 내적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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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막상 관심 있어 하던 스코틀랜드의 풍경이나 관습 등의 묘사에서는 문화적 한계 때문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장면들이 그닥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일환으로 아웃랜더 시리즈가 현재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 및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원래 기존에 읽었던 소설이 영화화된 것을 보는 걸 그닥 선호하지는 않지만, 소설 속 묘사를 통해 《아웃랜더》의 세계관이 판타지 보다는 역사적인 면에 더 집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엔 오히려 고증이 잘 갖춰져 있을 영상미가 궁금했다.

 

그래서 바로 드라마를 몇 편 챙겨 보았는데, 해소되지 못했던 상상의 공백이 퍼즐처럼 들어맞는 듯한 감상을 받았다. 너른 풍경과 성, 사람들의 복식과 소품들이 시각적으로 만족스럽게 갖추어져 있었으며 흙먼지와 풀내음이 잔뜩 묻은 채도와 명도,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소설과 드라마, 어느 쪽으로든 풍부한 묘사가 갖추어져 있으니, 선호하는 방식을 택해 감상하면 될 것 같다. 또한 스코틀랜드 특유의 음색이 담긴 드라마 사운드트랙은 소설을 읽으면서 들어도 좋을 정도로 잘 구성되어 있으니, 분위기를 한껏 만끽하고 싶다면 함께 듣기를 권장한다.

 

시간을 거스른 역사 속 거대한 세계관과 긴 호흡을 자랑하는 판타지 로맨스 소설, 《아웃랜더》였다.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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