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슴슴한 평양냉면 맛 에세이 - 끼니

유두진, 『끼니』 (파지트, 2022)
글 입력 2022.10.1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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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얘기라면 언제나 군침을 흘리며 듣는 편.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무릅쓰진 않더라도, 육해공에 각종 채소까지,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제법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울 수 있는 위장은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성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 음식을 가려서 챙겨 먹는 것은 인간 각자의 개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과 장소에 맞춰 각자의 음식을 가려 먹는 일, 우리는 그것을 ‘끼니’라고 부른다.


배가 고플 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마음이 출출할 땐 책으로 끼니를 때운다. 이번 메뉴는 잡식성 종으로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 혹은 먹고, 살고, 울고, 웃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유두진의 에세이 『끼니』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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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음식의 맛처럼 다채로운 이야기의 맛을 기대하며 책을 펼친다. 음식과 그 음식에 얽힌 개인적 에피소드를 엮은 이 에세이는 슴슴한 평양냉면과 비슷하다.

 

느끼한 크림 파스타처럼 쩍쩍 달라붙으며 요동치지도, 달고 매운 떡볶이처럼 날카롭게 비비고 찌르지도 않는다.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지만 음식과 곁들여지는 삶을 조금 더 유쾌하고 가벼운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나는 다시금 착잡함을 느꼈다. 그의 말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는 그런 류의 아픔은 아니었다. 난 컵라면보다 즉석 어묵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800원 정도가 모자랐다. 편의점에서 1000원만 빌려 달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쓸데없는 인생타령이 시작될까 싶어서였다. 막상 컵라면을 앞에 두니 즉석 어묵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 잔소리 좀 듣더라도 그냥 돈 빌려 즉석 어묵을 먹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그가 ‘인생의 아픔’ 운운하며 치고 들어왔다. 이럴 땐 뭘 어째야 하나. 난 그저 즉석 어묵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 <난 그저 즉석 어묵이 먹고 싶었을 뿐이야> 중에서


언제가 저자가 실직을 겪었던 시절. 지인은 저자의 마음을 어설프게 판단하고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지만, 저자는 그저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어묵”이 먹고 싶을 뿐이다.

 

지금 당장 주머니에 800원이 모자라다는 사실이 작고 소소한 ‘인생의 아픔’인 사람. 더없는 깊이나 명징한 통찰보다는 유쾌한 슬픔을 선택한 사람. 그런 저자가 쓴 에세이라면 조금 심심한, 그러나 은근히 중독되는 묘한 맛을 내고야 말 테다.


사람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속에 가끔씩 인간, 그리고 사회에 대한 번뜩이는 이야기도 섞여있다. 예를 들면 작가가 기자로 일했던 시절 취재했던 한 벤처 기업 젊은 대표의 이야기. 유난히 거만해보였던 그 대표는 취재 도중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며 직원에게 떡볶이 주문을 맡긴다. 도착한 떡볶이 포장을 정리하던 직원의 실수로 취재수첩에 국물이 쏟아진다. 대표는 기자에게 임시로 쓰라며 책상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입사 지원자들의 개인정보가 적힌 이면지를 건넨다.


[그냥 씁쓰름한 얼굴로 입술만 씹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속으로 다짐했다. 이 업체의 기사는 쓰지 않겠다고……. 나는 잠깐 숨을 고르며 떡볶이를 먹었다. 그 와중 떡볶이는 맛있었다. 씁쓰름한 건 씁쓰름한 거고 떡볶이가 맛있는 건 맛있는 거였다.] - <이력서로 떡볶이 국물을 닦아내고> 중에서


자본이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잃고 있다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건만, 어쨌든 여지없이 배는 다시 고파 올 테고, 빨간 자태를 뽐내는 떡볶이는 이럴 때 괜히 더 맛있어 보이는 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통쾌한 응징은 대접받은 떡볶이를 맛있게 뚝딱 해치우고 뒤에서 구시렁대는 일. 특식이지만 특별한 맛은 아닌, 딱 이 정도의 맛. 사람을 좋아하고 불의에 분노하지만 정의 구현까지 이르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의 삶이 오늘도 맛있게 익는다.

 

음식 안에 삶도 사람도 다 있다고, 슴슴한 맛으로 쓰는 유쾌한 음식 에세이가 자꾸만 구미를 당긴다.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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