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먹을수록 매운 음식 같은 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

글 입력 2022.10.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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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혜화에서 대학로 연극을 관람했다. ‘옥상 위 카우보이’라는 연극이었다. ‘어른들의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되어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고 어떤 이야기일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울지 말자는 각오를 하고 연극을 봤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흔들렸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을 다잡을 여유도 없었다. 애써 참아온 울음은 이야기 고비에서 터지고 말았다. 얼마나 참았던 건지, 눈물보다 콧물이 더 많이 나왔다.


사실 연극은 담백, 잔잔하고, 코믹요소가 많았다. 눈물, 콧물을 쏙 뺄 정도로 대놓고 슬픈 이야기도 아니었다. 보기에는 별로 안 매워 보이는데 먹을수록 맵고, 매운맛이 입안에 오래 남는 음식. ‘옥상 위 카우보이’가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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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위 카우보이’는 윤아의 엄마와 주리의 아빠의 불륜으로 인해 겪는 두 소녀의 감정과 상황을 그려냈다. 앞에서 언급한 어른들의 문제는 평면적으로 보면 부모가 바람피운 것이지만, 입체적으로 보면 미성숙한 행동과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 준 것이 어른들의 문제였다. 그 문제로 인해 아이들이 겪는 상황을 그려내고, 감정을 전달하면서 관객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21년 초연 당시,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극이다. 많은 사람의 사랑에 힘입어 22년 10월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다시 돌아왔다. 9월 29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에서 공연했고, 12일부터 16일까지 부산에서, 19일부터 23일까지 대구에서 공연한다.


시각,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자막, 음성해설이 제공된 연극으로, 내가 본 공연은 수어통역과 자막이 함께했다.


 

나의 아빠가 쟤의 엄마와 바람이 나서 꼬여버린 두 여고생이 있다. 둘은 환풍기도 멈춰버린 학교 옥상 위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싸우다, 놀다, 결국 함께 운다.

- ‘옥상 위 카우보이’ 리플렛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옥상 위였다. 학교 옥상 위에서 두 여고생이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윤아의 엄마와 주리의 아빠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아와 주리. 그리고 또 다른 문제와 맞닥뜨리면서 화냈다가, 수긍했다가, 다시 화내다가 결국 상처에 아파 운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듯 싸우다가도 동질감을 느낀다. 고민을 나누고 고통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두 소녀의 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주리의 아빠는 도망치고 윤아의 엄마는 태평하다. 한편, 주리엄마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주리를 걱정하고 윤아의 마음도 헤아려준다. 심지어 자기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윤아 엄마까지 챙긴다. 하지만 제일 힘들고 상처받은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


윤아의 엄마와 주리의 아빠 사이에서 생긴 아기는 세상을 느끼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간다. 그 후, 도망만 다니던 주리 아빠는 주리와 주리엄마의 곁으로 돌아간다. 모든 게 제자리로 왔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어른들은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겪은 일들, 현재의 상태, 본인이 받은 상처, 저지른 잘못은 애써 모른 체 하면서. 그런 어른들의 모습에 윤아와 주리는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답답하고 숨 막혔던 엔딩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미성숙한 어른들의 문제 해결방식과 닮아서 이해됐다.


하나 기뻤던 것은 주리의 성장방향이었다. 주리는 아빠의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 비겁하고 어른답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면서 아빠와 정신적으로 독립한다. 주리는 그런 아빠의 딸이라는 굴레 안에서 힘겨워하며 어른이 되는 길로 가지 않았다. 아빠와 나를 분리해 오롯이 ‘나’로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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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이고 뻔하지 않은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 의미 있는 대사를 보면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윤아와 주리는 가족 구성원부터 분위기, 가족 안에서의 역할까지 매우 달랐다. 원인과 결과처럼 두 소녀의 성격이 가정환경과 잘 맞아떨어졌다. 가정환경과 성격은 서로 정반대였지만,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비슷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가정이 있지만, 어른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은 어느 가정이든 존재한다는 것을 잘 그려냈다.


주리아빠의 불륜 상대가 어리지도 않고, 날씬하거나 예쁘지도 않은 여성이라는 점과 윤아 엄마를 이성적으로 더 매력 있게 표현해서 불륜 스토리의 캐릭터 공식을 깨트렸다.


대사는 군더더기 없고, 깔끔했다. 그냥 하는 말 같고, 별거 없어 보이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대사가 많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흔들리게 된 이유가 “맨날 먹는 밥이 왜 지겨워”라는 짧은 대사였다. 내가 엄마 키웠다는 윤아의 대사는 윤아에게 애정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도망 다니던 아빠를 겨우 만난 주리는 그 순간에도 핑계만 대고 합리화하는 아빠에게 참아왔던 말을 쏟아냈다. 엄마 인생에는 내가 있는데, 아빠 인생에는 아빠만 있냐며 나도 아빠 딸 노릇 하기 힘들었고, 이제 아빠 딸 졸업한다는 주리의 대사는 울음을 참고 있던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다만, 그 대사를 윤아가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윤아는 엄마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둘 뿐이기에 서로 의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윤아엄마는 윤아에게 의지하지만, 윤아는 엄마에게 기대지 않는 듯 보였다. 윤아엄마와 윤아는 일반적인 엄마와 미성년자인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윤아는 엄마의 끼니를 챙기고, 잔소리 하고, 건강과 마음을 걱정했다. 하지만 윤아엄마는 윤아의 끼니를 라면으로만 해결하려고 했고, 윤아가 차려주는 밥상을 당연시했다. 윤아의 건강이나 마음보다는 본인에게 관심을 가졌다. 보호받아야 할 윤아에게 오히려 윤아엄마가 보호받고 있었다. 대화를 시도하는 윤아와 달리 회피하는 윤아엄마의 태도와 내가 엄마 키웠다는 윤아의 말은 서로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을 아주 잘 나타낸 대목이었다.


주리엄마가 윤아에게 보통 엄마들이 하는 말을 하며 챙겨주는 신이 있었다. 그때 윤아가 보였던 반응에서 윤아도 부모의 보호를 받고 싶어 하는 자식이라는 게 드러났다.


그런 윤아가 주리처럼 그동안 묵혀뒀던 감정들을 토해내고, 어른스럽고 착하고 엄마노릇까지 하는 딸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나’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더욱 설득력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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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전달된 이 연극의 메시지



윤아가 주리에게 너희 아빠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 신이 있었다. 주리는 윤아의 몇 가지 질문에 하나도 답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누군가의 자식인 관객들에게 나의 부모님으로만 보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도 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작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어른들의 문제로 인해 고통 받는 아이들,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으켜주는 손길 말이다. 그 손길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아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동요됐던 것 같다.


아빠 딸 졸업한다는 주리의 말대로 완전히 누군가의 자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가 그걸 바란 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의 문제,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역할이라는 짐을 내려놓기, ‘부모’와 ‘나’를 분리해 오롯이 나로서 성장하기. 이게 바로 작가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부모 또는 어른인 관객에게는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부탁을 전한 것 같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상처는 쉽게 생각한 건 아닌지, 내 문제를 알게 모르게 자식에게 떠넘긴 건 아닌지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 같다.


나도 너 키우느라 힘들었다 또는 네가 나 속 썩인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태도는 버리고, 자식의 상처를 인정하고 위로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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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많다. 감이 잡힐 때도 있고, 미스테리일 때도 있다. 고민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답을 찾기 어렵다. 어떨 때는 그냥 ‘아 몰라~’ 라며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고민의 흔적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모양으로든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면서 그 흔적이 아이들 또는 아랫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힘들고 지쳐서 잠시 쉴 때가 있더라도, 다시 고민하며 그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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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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