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식 vs 대식이 재미없는 이유 [문화 전반]

먹방계의 샛별 연예인 '소식좌' 군단
글 입력 2022.10.0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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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이 세계를 아우르는 고유명사가 되기까지. 인터넷 방송에서 시작한 먹방은 밥에 진심인 한국인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다. 아무래도 먹방을 하려면 먹는 행위를 가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방송인은 남들보다 ‘잘’ 그리고 ‘많이’ 먹어야 한다.

 

기가 막힌 음식 조합을 선보이며 공중파까지 진출한 입 짧은 햇님부터 작은 체구로 어마어마한 양을 먹는 ‘쯔양’, 노포 사장님들과 손자 캐미를 보여준 ‘웅이’. 스피드 있는 먹방을 선보이는 ‘히밥’까지.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먹는 사람들, ‘대식(大食)좌’다.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 방송을 넘어 TV에서도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먹방계 샛별, 연예인 소식좌 계보


 

그렇게 오래도록 먹방 문화가 ‘대식좌’ 한정 콘텐츠인 줄 알았건만,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적게 먹는 사람들, ‘소식(小食)좌’가 먹방을 하는 콘텐츠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식좌의 개념은 인터넷 방송을 하던 비연예인 BJ 혹은 스트리머로부터 비롯됐지만, 소식좌는 적게 먹기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일상이 주목받으면서 대식좌의 반대 개념으로 생겨났다.

 

과거에는 '음식은 복스럽게 많이 먹어야 미덕’이라는 관념이 있었기에 맛없게 먹는 사람이라면 광고계나 예능계에서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개인 유튜브 채널은 그런 관념 따윈 무시하고 먹방을 찍어도 되었고, 21년 3월 주우재의 유튜브 채널 '오늘의 주우재'에서는 '개노맛먹방'의 시초인 [먹방에 도전해봤습니다. 혼밥 브이로그]가 업로드 된다. '오늘의 주우재'채널은 모델 주우재가 주인공이기에 주요 콘텐츠는 패션이지만, 잘생긴 외모에 그렇지 못한 재밌는 입담을 자랑하며 브이로그 또한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나는 단거 먹방 챌린지로 입문했다

 

 

'개노맛 먹방'은 주우재가 무표정 혹은 그보다 더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살기 위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은 브이로그 형태의 영상 시리즈다. 음식은 정말 맛없게 먹지만, 그가 친구처럼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을 시시콜콜 나누는 것이 인기 요인이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군더더기 없는 행동, 패션 유튜버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은 착장정보 공유까지.

 

주우재 개인의 취향과 성격도 콘텐츠의 매력을 가중하는 요소였다. 이렇게 여러 요소로 매력 있는 브이로그를 만들어낸 주우재의 채널을 응원하는 팬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먹방 또한 사랑하게 됐고, 그가 지독한 소식좌에 지독히 맛없게 먹는 방송인이라는 걸 알게됐다. 이 콘텐츠를 통해 주우재는 소식좌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녀들의 한입 먹방도 재미요소지만 김숙의 웃음소리가 더 웃길 때가 있다

 

 

소식좌 키워드를 사용한 영상의 시초를 알기는 어렵지만, 이 키워드를 유행시킨 콘텐츠는 유튜브 채널 ‘김숙티비’일 것이다. 제목은 [최강 소식좌 박소현&산다라박과 함께한 비디오스타먹방모음 (4년치) 대공개]다.

 

22년 10월 6일을 기준으로 유튜브 ‘소식좌’ 키워드 영상 중 조회수 3위로 400만 회가 넘는다. 예능 ‘비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숙과 박나래, 박소현, 산다라박이 자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두 사람씩 대식 소식의 구도로 생겼던 에피소드를 짧은 영상으로 찍어두었다가 대방출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방송인 김소현의 먹성이 놀라울 정도로 적어 저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녀는 새 모이만큼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먹는다. 가장 압권은 잼이 발려있는 파이류의 과자를 먹는 장면이다. 핵심인 잼을 씹기도 전에 겉면만 한 입 먹고 다 먹었다고 하는 게 가장 웃기다.

 

 

 

‘밥맛없는 언니들’의 먹기 수업


 

그렇게 연예계 대표 소식좌는 주우재를 시작으로 김소현, 산다라박이 발굴되었고, 이번 연도 1월 MBC 예능 ‘나혼자산다’의 고정멤버로 코드 쿤스트가 등장하고, 주우재보다 더 맛없게 먹기로 유명한 개그우먼 안영미가 새로운 소식좌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들은 타의로 발굴되었지, 자체적으로 소식 먹방 콘텐츠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때 이 기세를 몰아 '샌드박스네트워크'에서 유튜브 채널 ‘흥마늘 스튜디오’를 통해 김소현과 산다라박을 데리고 ‘소식좌’ 먹방 콘텐츠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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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밥맛없는 언니들’. 두 사람은 건강과 같은 이유로 소식하는 것은 아니고 타고난 몸의 할당량에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다. 실제로 그들의 소식은 일반인의 것보다 극단적이라 누구에게 권할 만큼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공통으로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양껏 먹는 것에 욕심이 없으며 과한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식사를 끝내는 것을 선호한다.

 

이 콘텐츠는 소식좌와 대식좌 구도로 나누어 먹방을 시작하고 대식좌가 소식좌에게 먹팁(맛있게 먹는 방법)을 전수하는 컨셉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적게 먹는 사람은 많이 먹는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가 전제인 것이다.

 

 

 

소식 vs 대식 구도가 더 이상 재밌지 않은 이유


 

 

 

초창기 이 콘텐츠를 보았을 때는 ‘왜?’라는 의문과 함께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소식좌가 대식좌에게 음식먹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오기 힘들어 보였고, 그들이 딱히 배워야할 당위도 느끼지 못했다. ‘적게 먹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많이 먹는 것을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들이 바라는 것인가?’ 와 같은 의문이다.

 

그러나 유튜브는 참신한 연출이나 컨셉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렇게 진지하게만 생각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어쨌든 소식좌로 콘텐츠를 만든 것은 신선했다. 하지만 신선한 캐릭터를 가지고 좋은 콘텐츠로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다른 이야기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떤 재미와 메시지를 위해 이 포맷을 선택했는가?’는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구조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경험을 전달하거나 훈수 두는 식으로 진행될 게 뻔했다. 현 세대는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질려있다. 대식좌는 나와서 늘 감탄하거나 경악하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먹팁을 전달할 것이다. 반대로 소식좌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경청하며 상대를 대단하다고 여기며 따라 할 것이 분명했고, 중간 중간 적게 먹는 자신을 대변할 것이다.

 

‘많이 먹는 사람들이 나와서 소식이 잘못인 것처럼 훈수를 두겠군.’하는 생각도 거부감에 한몫했다. 나는 공중파건 유튜브건 할 것 없이 소식을 소비하는 한결같은 방식에 지겨워져 있었다.

 

 

 

산다라박보다 김소현의 먹방이 재밌는 이유


 

앞서 떠올린 반응은 실제로 지금까지 ‘밥맛없는 언니들’에서 가장 자주 나온 행동들이다. 포맷 자체가 이러한 반응을 유도할 수밖에 없기에 지속가능한 재미가 보장되긴 어렵다. 익숙해질수록 재미의 폭은 줄기 때문이다.

 

과거 김소현의 먹방이 재밌던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캐릭터가 불러온 참신성 때문이었다. 적당히 조금도 아니고, 완전 ‘찔끔’ 먹기 때문에.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예상외의 것에 웃음을 터트린다. 적당히 먹을 줄 아는 산다라박보다 김소현이 더 재밌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포인트를 기반으로 기획을 유추해보자면, 이 웃음 코드에는 식생활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 문화', ‘복스럽게 먹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 식사에 진심인 문화, ‘많이 먹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 등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비될 만큼 소비되었고, 이제 대중들은 김소현과 산다라박을 잘 알고 있다.

 

*

 

한편으로 소식이든 대식이든 어느 쪽이 대단하다면서 열광하는 분위기가 점점 커져가는 것은 위험해보인다. 먹는 행위에는 개인차가 따를 뿐 좋고 나쁨은 없는 것인데 이런 반응이 사회적 분위기로 고착되려는 것이 우려스럽다. 이런 가치판단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쪽에게는 차별적인 시선이 던져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 예로 예전에는 많이 먹으면 왜 이리 많이 먹냐고 눈치를 줬지만, 요즘엔 반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다음 글 '소식좌는 왜 대식좌에게 배워야 하는가?'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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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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