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의 은하수: 창작자가 만들어낸 오래된 미래 –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2 [영화]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
글 입력 2022.10.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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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8회를 맞는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2”는 국내 공모 4개 경쟁 부문 및 초청 부문 총 78편의 상영작을 공개했다.

 

포스터와 공식 트레일러에서 찬란하고 반짝이는 색의 향연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였는데, 이는 창작자들이 갈고 닦아 만든 애니메이션들이 영화제에서 다른 빛나는 이야기들과 어울리며 관객들을 만나는 것을 상징한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작품과 작업 과정의 열정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져 독립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흐름과 확장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올해의 슬로건 ‘미리내(Mirinae)’는 신설된 장편 부문 명칭인 [미리내로(Mirinae Road)]에서 따온 것으로, 새벽의 첫 비행을 시작으로, 작가로서 홀로 나아가는 독립보행을 지나, 별들의 강 미리내(은하수)로 향하는 여정을 뜻한다. 기존 영화제 섹션명인 [새벽비행(First Flight)]과 [독립비행(Independent Walk)]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새벽비행]은 학생 애니메이터들 작품 대상이며, [독립비행]에서는 기성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웹애니메이션 경쟁인 [랜선비행(Web Animation)], 아시아 경쟁인 [아시아로(ASIA ROAD)],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거나 주목할 만한 작품은 초청 부문인 [아시아 파노라마(Asia Panorama)]와 [한국 파노라마(Korea Panorama)],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장편초청(Feature Special)]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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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이 흥미로워 보였기에 심혈을 기울여 관람할 수 있는 날인 9월 25일(일)에 가장 보고 싶은 섹션을 두 개 선택했다. [독립보행3]과 [장편초청3]을 골랐는데, 독립 애니메이션을 가까이에서 접해 본 적이 없어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기성 애니메이터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국내와 국외 작가들이 작품에 시도한 새로운 여정의 길잡이로 만든 별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독립보행3] 김경배, <아맨 어 맨(AMEN 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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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배의 < AMEN A MAN >은 [독립보행] 부문 본선 진출작 중에서 올해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지목됐다. 2022 부천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경쟁 부문 외 다수 상영하기도 했으며, 2022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 곤 사토시 상(단편-금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초록이상(Special Prize for Debut Film)’을 받았는데 죄책감에 대한 시각적 놀라움을 애니메이션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활용하여 능숙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고 한다.


 

[시놉시스] 

 

산새 살해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된 노인.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 재판장은 노인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되고, 노인이 소년이었을 당시 참여한 연극이 시작된다. 연극 속 제비 역할을 맡은 소년은 제비가 받는 부당한 대우가 억울하지만, 아무도 그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숨 막히는 억압에 점점 패닉하는 소년. 그에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실제로 영화를 관람하고 GV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는데 그중에서 < AMEN A MAN >은 본 시간이 선명할 정도로 기억날 만큼 인상깊었다.

 

재판받는 노인과 어릴 적 연극 속 왕자와 제비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조로 이루어져 사건의 깊이를 더하는 한편 강렬한 색으로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연출은 관람자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그럼에도 캐릭터성이 잘 드러나는 인물들의 외양과 자연스러운 화면전환, 극적인 무대구성은 작가만의 창의적인 표현력을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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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인 ‘위선’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남이 잘못을 저지르면 너도나도 쉽게 돌을 던지지만, 정작 자신의 잘못은 눈감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짚어내어 억압받는 위선과 강요된 희생,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었다.


시간순으로 다시 정리하면 극 중에서 산새를 죽인 노인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교회에 갔지만, 그 죄책감의 무게를 지운 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었다. 교회에서 고개를 숙여 남들이 보지 않을 때 표정을 풀고 웃으며 억압받는 위선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왕자와 제비 이야기에서 제비 역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왕자의 명을 따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따듯한 남쪽 나라로 가야 하는 제비는 추위를 견디며 왕자의 선한 행동을 돕는다. 제비는 왕자가 강요하는 희생으로 불우한 이들에게 선의를 베풀지만, 그 자체가 위선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다시 주변의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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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돌아온 제비는 노인의 어린 시절 제비역으로 분장한 소년이 되어 관객들의 눈을 피해 무대 밖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마주한 이는 산새를 죽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총을 들고 있는 자신이었다. 인간 사회에 만연한 위선이 돌고 돌아 다시 자신에게 왔을 때 총구를 겨누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본인이었지만 이를 부추긴 것은 남이었기에 결론적으로 강요당한 희생이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이는 각자의 방식대로 보이는 위선적인 모습일 뿐이다. 자신과 동떨어진 상황에선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에 대한 합리화를 펼치기 이전에 소년과 제비의 태도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위선의 한 부분인 선을 희미하지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선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든 결국 선을 내보이기에 -특히 제비의 경우- 위선을 자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혹은 이 역시 이기적인 가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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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립보행]은 심사평에서도 그렇듯 이야기가 돋보이는 중단편 작품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재생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대 독립애니메이션이 만들어낸 이슈와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어떻게 투영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해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작품성에 대해 논할 때 단순히 작품의 미적인 부분이나 기법, 소재만 보지 않고 이야기의 완결성을 생각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다른 관람객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GV가 끝날 시간이 다가와도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신선한 표현과 시선은 영화제의 ‘미리내(은하수)’가 품은 별을 더욱 찬란하게 빛나도록 만들었다. 탄탄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독립애니메이터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장편으로의 확장성에 기여하여, 앞으로의 한국 애니메이션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창작자가 만들어낸 오래된 미래가 등불이 꺼지지 않는 환대의 기지에서 지속되길 바라며 별들의 강이 넘쳐흐르길 바란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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