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심장도 스트레칭이 필요해 [운동/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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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에세이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에세이에서 내 마음에 든 것은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문장뿐이다. 나머지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그저 하루키가 달린다고 하니, 나도 달리면 하루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친구들도 러닝 크루를 만들자고 카톡을 보내왔다. 이쯤 되면 안하는 것이 이상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첫 날, 3km만 가볍게 뛰어보자고 생각했다. 주변에 조깅하는 친구들이 5~6km를 5분 대 페이스로 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첫날에 6분 대 페이스로 3km 정도를 뛰는 것은 아주 적절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욕심이었다. KM 당 5분 30초 페이스로 2km 정도를 뛰었을 때 나는 멈춰버리고 말았다. 무릎에 손을 짚고 한참 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
고작 2km를 뛰었을 뿐인데 숨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턱에 힘을 주고 달렸는지 귀부터 턱까지가 무척이나 아팠고 발목과 허벅지에도 찌릿찌릿한 통증이 생겼다. 충격적이었다. 어릴 적 운동선수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어딜 가도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고작 2km를 뛰고 이렇게 힘들어 하다니. 하루키의 감정을 느끼기는 무슨, 하루키보다 먼저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라고 생각했다.
다음날에도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전날에 고작 2km를 뛰고 힘들어한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번엔 기필코 3km를 뛰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조금 두려웠다. 전날 2km를 뛰었을 때 아팠던 곳들이 벌써부터 욱씬거리는 것 같았다. 오늘도 3km를 뛰지 못하면 체력 약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낙인 찍을 것 같기도 했다.
천천히 달렸다, 거의 걷는 것처럼. 뛰어나가고 싶어 하는 발에 힘을 줘 속도를 유지했다. 처음 뛴 날보다 2분도 더 느린 km 당 8분 페이스였다. 너무 느리긴 했지만 꼭 3km를 뛰어야 했기 때문에 더 빠르게 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8분 페이스로 3km를 뛰는 건 솔직히 쉬웠다. 땀도 나고 숨이 차긴 했지만 힘들진 않았다. ‘힘들지 않은 운동’은 운동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3km를 무사히 뛰었다는 만족감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날에도 나는 조깅을 하러 갔고 역시 8분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8분 페이스는 여전히 쉬웠다. 내 기준에서는 빠른 걸음과 다를 바 없는 운동 강도였다. 그렇게 3km를 다 뛰어갈 무렵에 하루키의 에세이 중 한 바닥이 떠올랐다.
‘솔직히 달리기를 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읽던 나는 그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하면 생각할 힘까지 팔다리를 움직이는데 써야할 텐데, 어떻게 생각을 하면서 달리겠는가. 그런데 나는 생각을 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너무 이기적이었던 전 애인이나 새로 집에 들여올 테이블, 3일 후에 마감인 원고 등을 생각하면서 달렸다. 나는 왜 달리면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내릴 수 있었다. 달리기에 온전히 힘을 쏟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첫날 달리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이유로 힘이 들지 않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피했다.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3km를 뛴 상태였지만 3km를 더 뛰어보기로 했다. 3km를 뛰었음에도 그닥 힘들지 않았고 만약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힘들지 않은 달리기보다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린 달리기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3km를 돌파한 순간부터 페이스를 올리면서 뛰었다. 이상하게 페이스를 올리면서 뛰어도 힘들지 않았다. 5km를 돌파할 즈음에 내 속도는 첫날과 비슷한 5분 40초 페이스가 되어있었고 그 상태로 1km를 더 뛰어 6km에 도달하고 나서야 달리기를 멈췄다.
신기했다. 이틀 전, 고작 2km에 죽을 것 같았던 내가 5km를 뛰고 나서도 5분 40초 페이스로 1km를 더 뛸 수 있다니. 그때 나는 느꼈다. 심장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는 걸.
심장은 평소 1의 속도로 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해 5의 속도로 움직이기를 강요한다. 심장은 당연히 제 능력을 발휘할 리 없다. 갑자기 닥쳐온 4의 갭을 어떻게 견딜 수 있나.
그러나 천천히 뛰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2의 속도로 움직이면 심장은 마땅히 2를 해낸다. 내가 3으로 속도를 올려도 2로 일하던 심장은 마땅히 3으로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5의 속도에 도달한 심장은 1에서 5를 해내야 하는 심장보다 훨씬 유능하다. 당연한 이치다. 내 심장은 100으로도 뛸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적응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적응이 필요하다, 는 당연한 생각을 심장에 적용시키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삶은 적응의 차원인 경우가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해야 하는 일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가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날들에 힘든 일이 닥칠 것 같다면, 그리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될 것만 같다면. 마땅히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심장의 스트레칭인지, 정신의 스트레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레칭은 당신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오늘도 8분 페이스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몇 km를 뛸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루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권명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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