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심장도 스트레칭이 필요해 [운동/건강]

새로운 일에 어려움을 겪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2.10.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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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에세이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에세이에서 내 마음에 든 것은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문장뿐이다. 나머지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그저 하루키가 달린다고 하니, 나도 달리면 하루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친구들도 러닝 크루를 만들자고 카톡을 보내왔다. 이쯤 되면 안하는 것이 이상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첫 날, 3km만 가볍게 뛰어보자고 생각했다. 주변에 조깅하는 친구들이  5~6km를 5분 대 페이스로 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첫날에 6분 대 페이스로 3km 정도를 뛰는 것은 아주 적절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욕심이었다. KM 당 5분 30초 페이스로 2km 정도를 뛰었을 때 나는 멈춰버리고 말았다. 무릎에 손을 짚고 한참 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


고작 2km를 뛰었을 뿐인데 숨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턱에 힘을 주고 달렸는지 귀부터 턱까지가 무척이나 아팠고 발목과 허벅지에도 찌릿찌릿한 통증이 생겼다. 충격적이었다. 어릴 적 운동선수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어딜 가도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고작 2km를 뛰고 이렇게 힘들어 하다니. 하루키의 감정을 느끼기는 무슨, 하루키보다 먼저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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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도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전날에 고작 2km를 뛰고 힘들어한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번엔 기필코 3km를 뛰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조금 두려웠다. 전날 2km를 뛰었을 때 아팠던 곳들이 벌써부터 욱씬거리는 것 같았다. 오늘도 3km를 뛰지 못하면 체력 약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낙인 찍을 것 같기도 했다.


천천히 달렸다, 거의 걷는 것처럼. 뛰어나가고 싶어 하는 발에 힘을 줘 속도를 유지했다. 처음 뛴 날보다 2분도 더 느린 km 당 8분 페이스였다. 너무 느리긴 했지만 꼭 3km를 뛰어야 했기 때문에 더 빠르게 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8분 페이스로 3km를 뛰는 건 솔직히 쉬웠다. 땀도 나고 숨이 차긴 했지만 힘들진 않았다. ‘힘들지 않은 운동’은 운동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3km를 무사히 뛰었다는 만족감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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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도 나는 조깅을 하러 갔고 역시 8분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8분 페이스는 여전히 쉬웠다. 내 기준에서는 빠른 걸음과 다를 바 없는 운동 강도였다. 그렇게 3km를 다 뛰어갈 무렵에 하루키의 에세이 중 한 바닥이 떠올랐다.


‘솔직히 달리기를 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읽던 나는 그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하면 생각할 힘까지 팔다리를 움직이는데 써야할 텐데, 어떻게 생각을 하면서 달리겠는가. 그런데 나는 생각을 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너무 이기적이었던 전 애인이나 새로 집에 들여올 테이블, 3일 후에 마감인 원고 등을 생각하면서 달렸다. 나는 왜 달리면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내릴 수 있었다. 달리기에 온전히 힘을 쏟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첫날 달리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이유로 힘이 들지 않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피했다.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3km를 뛴 상태였지만 3km를 더 뛰어보기로 했다. 3km를 뛰었음에도 그닥 힘들지 않았고 만약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힘들지 않은 달리기보다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린 달리기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3km를 돌파한 순간부터 페이스를 올리면서 뛰었다. 이상하게 페이스를 올리면서 뛰어도 힘들지 않았다. 5km를 돌파할 즈음에 내 속도는 첫날과 비슷한 5분 40초 페이스가 되어있었고 그 상태로 1km를 더 뛰어 6km에 도달하고 나서야 달리기를 멈췄다.

 

신기했다. 이틀 전, 고작 2km에 죽을 것 같았던 내가 5km를 뛰고 나서도 5분 40초 페이스로 1km를 더 뛸 수 있다니. 그때 나는 느꼈다. 심장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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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평소 1의 속도로 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해 5의 속도로 움직이기를 강요한다. 심장은 당연히 제 능력을 발휘할 리 없다. 갑자기 닥쳐온 4의 갭을 어떻게 견딜 수 있나.

 

그러나 천천히 뛰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2의 속도로 움직이면 심장은 마땅히 2를 해낸다. 내가 3으로 속도를 올려도 2로 일하던 심장은 마땅히 3으로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5의 속도에 도달한 심장은 1에서 5를 해내야 하는 심장보다 훨씬 유능하다. 당연한 이치다. 내 심장은 100으로도 뛸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적응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적응이 필요하다, 는 당연한 생각을 심장에 적용시키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삶은 적응의 차원인 경우가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해야 하는 일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가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날들에 힘든 일이 닥칠 것 같다면, 그리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될 것만 같다면. 마땅히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심장의 스트레칭인지, 정신의 스트레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레칭은 당신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오늘도 8분 페이스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몇 km를 뛸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루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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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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