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K-판타지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구미호뎐 [드라마/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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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리포터>의 광팬이었다. 처음 <해리포터>를 접한게 된 것은 5살 때로, 그 이후에 <타라덩컨>, <율리시스 무어> 등의 다양한 판타지 소설은 물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모든 영화는 여러 번 돌려보기도 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나 드라마는 주로 외국에서 창작된 작품이었고, 그러던 와중에 한국 설화와 민담 등을 꽉 채워 담은 <구미호뎐>을 발견하여 시청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구미호를 다뤘던 경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시청했던 옛날 드라마 중에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라는 드라마도 있었고, 주로 구미호는 외모가 뛰어난 여성 캐릭터로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있는 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여우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특이하게 주연 구미호 캐릭터가 남자배우들에게 할당되었다.
<구미호뎐>에서는 구미호 외에도 다양한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요소들이 등장했다.
1화에 등장하는 여우누이는 여우누이 설화에서 인간이 되고 싶어 양부모와 오라비들의 간을 빼먹은 그 여우누이로, 현세를 어지럽히는 요괴를 처단해야 하는 주인공 이연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였다. 염라대왕의 누이이자 저승과 이승의 경계인 삼도천의 문지기인 탈의파는 삼도천에서 옷을 벗기는 노인이며, 그의 남편인 현의옹도 삼도천 문지기이자 옷을 거는 노인이다. 이들은 옷의 무게에 따라 이승에서 지은 죄의 무게를 재고 심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렁각시 설화 속 우렁각시도 등장했다. 드라마 캐릭터들이 자주 방문하는 한식당의 사장으로 등장하여 농사꾼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고 하며 이후 환생한 남편을 만나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빌런들도 모두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었다.
불가살이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 나타난다는 전설 속 동물로, 쇠붙이를 먹을수록 성장하며 사람들에게 악몽을 전염시키는 요괴이다. 어둑시니는 어둠을 상징하는 요괴로, 타인의 마음속 상처와 공포를 헤집어 잡아먹는 요괴이며, 각 인물들의 공포를 헤집어 이를 투영한 환상에 가두고 괴롭히는 빌런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빌런인 이무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설화에 등장하는 용이 되지 못한 비운의 구렁이로, 이 드라마에서는 옛날 역병 환자들이 버려진 사굴에서 태어난 악신으로 등장하여 본능적으로 살아있는 것들을 증오하는 요괴라고 한다. 이외에도 아귀, 호랑이 눈썹 설화, 장승 할아범과 반달가슴곰 산신 등의 다양한 전통 설화 속의 요소와 캐릭터가 등장하며 드라마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편, 드라마의 장르는 판타지 로맨스와 호러, 액션으로 구미호인 이연과 인간 남지아의 로맨스가 드라마 전반에 다뤄졌는데, 사실 멜로적 요소는 잘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여우는 한번 맺은 짝은 절대로 져버리지 않는다는 설정이 존재하긴 했지만, 환생한 600년 전의 첫사랑과 다시 사랑에 빠져서 죽고 못살게 된다는 점이 약간 개연성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작품 중반에서 다뤄지는 구미호 형제 이연과 이랑의 서사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를 시청하기 전에는 장르에 호러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무서운 장면이 꽤 있어서 시청 도중에 자주 놀라기도 했다.
<구미호뎐>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작품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기대하고 시청했던 만큼 아쉬운 점도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한국 설화와 민담을 적절히 섞어서 드라마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주로 판타지라는 장르를 떠올리면 마법사나 히어로, 뱀파이어 정도 떠올랐다. 그런데 <구미호뎐>은 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K-판타지 요소를 풍부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소중한 작품이 아닐까? 내년에 방영 예정인 프리퀄작 <구미호뎐 1938>을 기다리며, 다채로운 한국형 판타지 작품들이 양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 글을 마친다.
[이민선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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