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시아의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만날 수 있는 곳 -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2

세계 유일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
글 입력 2022.10.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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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2(목)부터 9/27(화)까지 CGV 연남점에서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열렸다. 서울 인디 애니페스트는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본디 ‘인디애니페스트’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18회차를 맞아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성을 반영하여 ‘서울’을 더해 명칭을 재정비한 바 있다. 금년 영화제 슬로건은 ‘미리내로’로, 캄캄한 밤에 별이 여행자들의 길잡이가 되듯 동시대 애니메이터들과 동행하고 싶은 뜻을 담고 있다.

 


포스터_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2_최종.jpg

 

 

독립보행(일반 경쟁), 새벽비행(학생 경쟁), 랜선비행(웹애니메이션 경쟁), 아시아로(해외 작품), 그리고 새로 신설된 미리내로(장편 부문)까지 총 5개의 부문에서 공모작을 모집했다. 그 외에도 파노라마, 장편초청, 해외초청 파트에서 작품을 초청해 상영되었다.


그중 두 파트를 선택할 수 있었고, 고민 끝에 ‘독립보행1’과 ‘아시아로2’를 감상했다. 새로 추가된 장편 부문도 궁금했지만, 축제의 취지에 맞게 여러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국과 타 아시아 국가들의 애니메이션을 비교해보고 싶기도 했다. 지면의 한계를 고려하여 부문별로 두어 개의 애니메이션을 뽑아 기록하려고 한다.


팸플릿과 전시 도록을 획득하지 못한 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합의한 지점과 개인적인 감상을 담고 있다. 또 시간이 조금 흘러 기억이 퇴색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감독님의 의도나 일반적 해석과는 결이 다를 수 있으니 그저 감상평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

 

‘독립보행1’ 파트에는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있었다.

 

 

1. 체험! 삶의 현장

2. 별을 담은 소년

3. 우리들의 2

4. 나에게 다가오면

5. A Place in Blue

6. UNIQUE TIME

7. 상실의 집

 

 

 

체험! 삶의 현장 - 왜 사는가에 대한 직설적이고 통통 튀는 고찰



개미와 파랑새, 애벌레의 대화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나는 왜 살아가는 걸까?” 묻는 개미에게 파랑새는 대답한다. “의문이 있으면 살기 힘들어.” 나무 이파리를 먹으며 그저 행복해하는 애벌레처럼 다들 그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라 대답해주며 마음을 나눈다. 어느 날 파랑새가 죽고 개미는 실의에 빠져 담배와 술에 매달려 휘청거린다. 죽은 파랑새의 자리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자라며 열매가 맺고 다시 새가 되었다가 다시 죽고 또다시 식물이 자라난다. 수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개미는 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노랑 새도 빨강 새도 아닌 파랑새가 등장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심리학 용어처럼 파랑새는 막연한 행복을 꿈꾸는 경우를 의미한다. 현재에 발 딛지 못하고 막연한 희망을 좇던 주인공은, 꿈이 깨지고 여러 굴곡을 거치면서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애벌레’와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이 나게 춤을 추면 되는 일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의문이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가. 감독 역시 이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스스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귀여운 이야기를 빌려 내어놓은 듯하다. 직설적이고 짧은 대사와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미지 속에서 의도한 메시지를 200% 이해하고 만다. “기왕사는 거 행복하게 살아야겠지?”라는 물음에 “그건 너 알아서 해.”라는 마지막 대답을 통해, 선택권을 관객들에게 내어주며 나이스하게 마무리 짓는다.


다채로운 색감과 말 그대로 통통 튀어 다니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디어 보드에 포스트잇을 이용해 생각을 전개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고, 감독님이 실제로 20대 시절부터 앵무새 두 마리를 키웠으며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영상에 반영되었다는 비하인드도 재미있게 들었다.

 

 


우리들의 2 - 삶과 죽음의 끝없는 반복, 피어나고 사그라드는 우리



별다른 대화 없이 온전히 영상과 반복만으로 표현한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으나 연쇄적으로 변하는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의도한 바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꺼지지 않는 불과 노동으로 가득한 지옥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그 중간을 지나 천국으로 이어져 사랑하는 이와 꽉 껴안기까지. 영상은 끝없이 변주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들 속에서, 결국 지옥과 천국은 이어져 있음과 무한히 변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얘기를 듣자 숭숭 뚫려있던 해석이 명쾌해졌다. 신곡은 지옥과 천국, 그사이의 연옥을 여행하며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보고 결국 사랑하는 연인 베아트리체와 재회하는 내용이라 들었다. 이를 들으니 상반된 공간인 천국과 지옥이 연속적으로 표현되었던 것과 마지막 부분에 아이를 낳고 다시 태어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변화가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사용하는 색감이 생생하고 날이 잔뜩 서 있는 느낌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국적인 색감과 표현을 하는 데에 근대 회화에 대한 오랜 관심과 일본 화가의 어시스턴트를 하던 경험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니크 타임 - 하나도 독특하지 않은 세계에서 고유함을 지켜내기



본 애니메이션은 인공지능 로봇이 양산되고 보편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AI는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얼굴로 바뀌어 돌아가신 부모님, 이별한 애인 등 어떤 인물의 역할을 대신한다. 주인공 제이는 여느 인공지능 로봇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오류가 발생해 자아가 생긴다. 고유한 자아로 인해 누군가의 얼굴을 베끼는 대신 자신만의 얼굴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기뻤던 것도 잠시, 제이의 모습은 2세대 안드로이드로 대량 생산된다. 수없이 복제되어 독특했던 제이는 보급되어 버린다.


실제로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기 이전에 회화를 하던 시절 자기 작품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모든 작품이 비슷해 보이고 독특한 것이 잠깐 있었다 하더라도 곧 따라 해 이는 금세 보편적으로 된다. 너무나도 빠르게 모든 게 퍼지는 세상에서 ‘고유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다고.


샛별과 같았던 신진 작가들은 루키 시절이 지나면 금세 기성 작가가 되고, 그 사람들의 고유해 보였던 무엇은 식상해져버린다. 비단 작가뿐만이 아니다. 반짝 빛나던 이는 자신의 독특함을 전부 소모하기 이전에 비슷하게 행동하는 누군가에 의해 소모당한다. 금세 익숙해지고 빛을 잃는다.


제이에게 발생한 오류가 그의 고유함을 나타내는 것에서 우리의 고유함이 어쩌면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을 남긴다. 오류는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시스템에 생긴 약간의 구멍이고 곧 기존의 흐름에 편입되고 말 것이란 불안이다. 그렇지만 리셋된 후에도 여전히 제이에게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보여주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한다. 여전히 제이의 알맹이 조각이 남아 있음에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


'아시아로2'에는 9편의 애니메이션이 수록되어 있다.

 

 

1. Parasite Family

2. 이렇게 편할 수가

3. 살인적 폭염에도 불구하고

4. MANHOLE

5. 악어연못

6. Elephant in Castle

7. Holy Holocaust

8. Opera

9. 밤

 

 

 

살인적 폭염에도 불구하고 - 밖은 지옥이라고!



살인적 폭염 속에서 작열하는 바깥의 해와 대비되게 집 안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있다. 집 안은 마치 에스키모의 집처럼 고드름이 열리고 그 어디보다 시원한 밤. 유튜브를 보면서 시원하게 놀던 중, 에어컨의 건전지가 나간다. 이에 견디지 못하고 한 여자애가 건전지를 찾아 바깥으로 나선다. 이곳저곳 뒤져보고 상점에 가봐도 건전지가 동나 있다. 광장에서 덥다며 시위하는 무리를 발견한다. “덥다, 덥다. 여긴 생지옥이다!” 함께 분노로 소리를 지르던 중 시위대의 확성기에서 건전지를 탈취해 도망간다. 택시를 타고 도망가는데 기사님이 “다들 시위하고 소리를 지르는 건 더위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분노 때문이다. 내면의 것을 추구하면 평화도 뒤따른다.”고 말한다. 환장의 쇼를 하고 집에 돌아왔으나 이미 집 안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상태. 그 고생을 했는데 보람이 없다.

 

 

"밖은 지옥이라고."

"이젠 집이잖아."

"진짜 끔찍어."

 


밖에서 더위에 찌들어 분노했던 건 그저 기억으로 남고 현재의 시원함에 몸을 맡겨 잊고 만다. 내 몸이 편해지면 다 같이 조금 더 시원해지기 위한 일이나 이전의 불편함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이다. 이런 집들이 모여서 도시는 점점 더워져 간다.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일이 아니라면 금세 신경을 끄고 마는 모습, 즉 무관심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금세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맥락을 짚지 못하는 택시 기사님의 말도 그렇다. 내면의 것을 추구하면 평화가 뒤따른다고? 정작 중요한 것에 관심이 없고 그냥 회피하며 내면 수양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이는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환경오염을 둘러싼 주체들의 이기심과 무관심. 논점을 흐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직관적이고 독특한 그림체가 기억에 남는다. 노래도 굉장히 독특했다.

 

 

 

악어연못 - 미디어가 어떻게 사람을 오해하고 사건을 왜곡하는가



대학원생 왕 씨가 연못에 빠지고 땅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겨우 매달려 있다. 악어가 사는 연못이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연못 근처에서 몇 사람이 실종된다. 이에 왕 씨가 사람들을 유인해 살해했다는 소문이 매체들에 퍼지기 시작한다. 유튜브 영상으로 숏폼 컨텐츠로, 렉카 채널에서, 뉴스에서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재생산된다. 이에 진실은 왜곡된다. 시사 채널에서는 성과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 때문에 타인을 살해한 것이라 분석한다. 한 유튜브에서는 그의 책 대여 리스트를 확보해서 책을 홍보한다. 그의 삶을 죽죽 찢어 제멋대로 들여다보고 마음껏 왜곡한다.

 

“그런 말 말고 우선 구해줘요.”

 

외치던 왕 씨는 미디어에서 자신이 너무나도 먼 곳에 와버렸단 걸 깨닫고 스스로 연못에 들어가 악어가 되어버린다. 악어에게 물려 연못에 빠진 게 아니라 육지의 사람들의 말로부터 상처받고 차라리 악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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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가짜뉴스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최근에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이혼했다’는 것이었다. 아나운서 도경완과 결혼해서 깨 볶으며 잘살고 있는 사람을 두고 아무 근거 없이 이혼이라니. 말초적인 관심과 조회수가 전부이지 온라인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최근 방영되는 ‘환승연애2’라는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을 얹고 있는지? 그중에는 그저 악플에 불과한 댓글도 정말 많다. 이 때문에 이전 기수의 출연진은 심리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대중 앞에 나올 때 감수했어야 한다고 말할지라도, 사실 이들에게 말을 얹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누군가의 선동과 거짓말 하나를 반박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말과 증거가 필요하다. 우리는 미디어를 어떻게 소화할지, 그 환경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이외에도 온라인 상영관에서 10월 7일까지 55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궁금한 작품이 있다면 꼭 한 번 들려보길 바란다.


‘인디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자칫 낯설게 보이지만, 다채로운 그림체와 독특한 툴을 이용해 기존의 문법을 깨는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진지한 문제의식과 새로움을 담은 작품들이 새로운 색깔로 저마다 빛나기를 기대한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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