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 살게 하는 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임을 - 소설 '밝은 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10.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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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삶을 원했지, 소설이 삶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버스 창에 기대어 책장을 꼭꼭 씹듯 넘기다 보니, 창가를 스치는 모든 이들이 각자 인생이라는 소설의 한 문장을 길게 끌며 걷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두어 번 남짓의 제인 에어와 스무 번 정도의 테스와 셀 수 없을 정도로 숱한 89년생 김지영들을 보았다. 핸드백을 몸에 바짝 붙인 채 삶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여자들. 진한 체향의 궤적을 남기며 아래로, 아래로 물려줄 자신만의 서사를 뚝딱뚝딱 지어가는 여자들.

 

그 사이에는 어느새 별을 보는 일을 하며 별이 된 여자들을 기억하는 ‘지연’이 섞여 있었다. 소설 <밝은 밤>은 그만큼이나 생생한 작품이다. 소설이 얼마나 삶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예술인지를 실감하게 했고, 우리네 삶도 그 자체로 역사이자 소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내 소설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는 묘한 책임감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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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은 화자 지연이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희령’에서 문을 연다. 연고라고는 어릴 적 외할머니와 보낸 열흘가량의 기억이 전부인 곳. 지연의 어머니 미선은 그런 그녀의 행적을 ‘실패’라고 암시하는 발언들로 딸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던 중 지연은 우연히 연락을 끊고 살았던 외할머니 영옥을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의 간격을 존중하며 천천히 가까워지고, 지연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을 채워간다. 바로 영옥에게서 증조모와 고조모의 인생사를 들으면서부터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연의 이야기와 ―이제는 과거로 바랬지만― 다시 짙은 현재성을 띠게 된 여자들의 이야기가 <밝은 밤> 서사의 척추를 이루며 교차한다.

 

이렇게 대를 이으며 내려오는 혈연관계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관조하는 작품이 드물지는 않다. 그러나 이 흐름과 역사의 주체는 대개 남성이었다. 역사의 노도에 휩쓸려 가장과 주체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남성적 불행’과 민족의 아픔을 동일시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것은 개인의 슬픔이기 이전에 시대의 슬픔처럼 읽힌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주목한 <밝은 밤>은 확실히 다른 방향성을 띤다. 시대가 넘겨준 개인의 슬픔을, 개인들이 보듬고 위로해온 또 다른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 그리고 현재까지 사소하다고 여겨져 역사 속에서 외면 받아온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시대의 멸시에 젖은 채 살아온 삼천, 그를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던 새비, 여성 연대의 단단한 속성을 가르쳐준 명숙, 어머니들이 새겨온 우정의 기억을 이어 나간 딸들 영옥과 희자, 영옥의 딸 미선... 지연은 그들을 기억하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나이테처럼 새겨진 삶의 흔적들을 본다. 그들은 지연과 할머니에 의해 기억이라는 형태로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기억하는 이의 삶은 얼마나 생기 있고, 또 아름다운지.

 

지연에게 희령은 단절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혼한 남편, 끝내 서로를 할퀴고 마는 엄마와의 관계, 자신의 실패를 알고 있는 사람들, 오랜 과거... 이것들과 철저히 단절해야지만 살 수 있다는 적색 신호가 뜬 결과였다. 그러나 단절함으로써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잘 살 수는 없는 게 우리이다. 놀랍게도 희령은 지연의 뿌리가 된 여성들의 서사가 축적되고 교차하는 공간이었고, 지연은 변화한다.

 

삶은 이렇게 종종 우연이라는 기적을 부린다. 그런 지연이 고조모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연결’의 가치를 체화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울림을 주었다. 그저 끊어내려고만 했던 슬픔과 고통, 갈등을 지긋이 바라볼 용기를 준 건 결국 또 다른 이들의 슬픈 삶이었다. 단절조차도 연결로밖에 이룰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사소하고도 작은 슬픔들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지, 나의 슬픔은 누구의 슬픔과 연결되어 가는지를 깨달아가는 지연과 함께 나 역시도 나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감정은 거기에 있었다. 느끼지 않으려 했을 뿐이지, 언제나 거기에 자신만의 동그란 자리를 지키며 있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길을 떠난 할머니, 영옥이 당도했던 곳은 대구에 위치한 고모할머니, 명숙의 집이었다. 그곳에는 새비도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이 대구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영옥에게는 너무나 꿈같은 추억이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전쟁이 끝난 후 희령에 돌아간 후에도 마음만큼은 대구를 떠나지 못했을 정도로. 영옥은 시대와 상황에 의해 그들과 숱한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이 이별은 ‘단절’이 아닌, 오히려 단단한 결속이자 연결이라 느껴지는 게 묘하다. 물리적으로 함께할 수 없다는 서글픈 사실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대구에서의 기억이 인물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채롭게 살아나며 결국 서로를 위해 살게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나에게 그랬듯, 지연에게 큰 삶의 위안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시간도 공간도 달리 살던 그 여자들과,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는 생각. 더 이상 외롭지만은 않을 거라는 희망.

 

기억되는 삶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억되고 싶다면 나 역시 누군가를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밝은 밤>을 덮은 후, 표지 위에 조용히 손을 올린 채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난 나와 피로 연결된 사람들의 역사를 궁금해해 본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게, 내 삶의 무게에만 허덕이며 살아왔다고.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온한 안정감이 아닌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주곤 했다. 삶은 나의 실과 너의 실을 연결하는 과정이기보다는, 태초부터 복잡다단하게 연결된 이 실들을 하나씩 끊어내 온전히 남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끊어내고 또 끊어내야 한다고.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그러나 <밝은 밤>은 내가 수많은 여성들의 삶으로부터 빚을 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돌이켜보면 날 살게 한 건 또 다른 누군가의 삶들이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괴감에 무너질 땐 A언니의 오랜 일기 한 장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무력감이 들 땐 오늘도 아픈 무릎에 힘을 넣어 걷고 또 걷는 B언니의 하루가, 세상에게 비난 받는 것 같은 모멸감에 차 있을 땐 용감한 C께서 들려준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날 나아가게 했다. 왜 그걸 모르고 지내왔는지.

 

나는 스스로를 위한 단절을 말하면서 정작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지독하게 꿈꿔왔다. <밝은 밤> 속 지연이 삶을 지속해갈 지구력을 얻었다면, 나는 내가 빚져 온 삶들을 나의 삶으로 값아야 겠다는 어른다운 다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가진 생명력은 대단하다.

 

누군가가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 그가 나와 함께 삶을 견뎌준다는 것 사실만으로 사랑할 준비를 마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을 통해 그 사실을 너무도 실감한 만큼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결되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새비가, 삼천이, 명숙이 되고 싶다. 지연이 되고 싶다. 지극히, 내 슬픔을 품고 묵힌 채로 이 아름답고 깊은 여자들과 나누며 또 다른 대구에서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밤은 환하게 밝아올 것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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