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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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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에게 담화를 이루는 핵심 *모드는 문자나 말과 같은 언어적 요소로

인식되었다면, Z세대에게 언어적 요소는 담화를 구성하거나 의사소통 하는 데

사용 가능한 여러 모드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비언어적 모드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실 세계에서의 가치가 반영된,

그러나 가상 세계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러나 언어적 요소가 개입되는 순간, 현실세계의 정체성이 가시화될 수 있다.

(…)

이러한 맥락에서 다중 모드를 구성하는 언어적 요소는 현실 세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비언어적 요소는 가상 세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용이하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신유리, 「메타버스의 담화적 특성 연구」, 『담화·인지언어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담화·인지언어학회』, 2021, p. 237.

 

*여기서 모드(mode)는 의미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문화적으로 주어진 기호 자원을 의미하며 이미지, 글, 레이아웃, 음악, 제스처, 발화, 움직이는 이미지, 사운드 트랙, 3D 개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메타버스 내에서 이루어지는 담화의 양상을 분석한 신유리(2021)는 메타버스 내에서는 언어적 의사소통의 비중이 현실 세계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현실세계와는 다른 가상 세계에서의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그의 말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그것을 드러낸다는 것을 반증한다.

 

세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언어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겉으로 보이는 여러 특징들만큼이나 사람들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국가, 성별, 계급, 연령, 학습 수준, 신체의 상태 등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 혹은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다르기에 언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재현하고 또 우리 각각의 위치를 재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 우리의 문화와 사회를 발전시켜왔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논의를 열기도 했고, 서로의 감정을 풍부한 언어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어의 양면을 조율하고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결국 오랜 시간 동안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해 온 우리 인간의 몫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때로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일 수 있는 언어는, 우리의 정체성과 위치를 재현하면서도 여전히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언어가 품은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한 채, 언어가 계급을 노골적으로 재현하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 <바벨 신드롬(연출 : 채두병 / 극본 : 이찬영)>은 이러한 SF적 상상을 통해 언어가 재현하는 우리의 위치를 선명하게 가공하여 우리 앞에 내놓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가진 양면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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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재현하고 재생산하는 우리의 위치


 

 

 

드라마 <바벨 신드롬>은 뇌의 언어 중추가 마비되는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하게 된2031년의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바벨 신드롬’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바이러스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쓰던 하나의 말 빼고는 다른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완벽한 치료제도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언어를 잃은 사람들은 국가에서 유상제공하는 일시적인 항체를 지속적으로 구매해야 일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었고, 항체의 가격에 따라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수준이 제한되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항체의 등급은 곧 언어의 등급이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등급이 되었다.  다양한 외래어와 외국어를 포함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는 높은 등급의 항체를 가진 사람들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낮은 등급의 항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부당한 일에 분노하거나 항의 하지도, 좋아하는 시의 구절을 따라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7등급의 항체를 사용하는 주인공 ‘하늘’은 마트 점원으로 일하며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려간다. 그에게 주어진 언어로는 고객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따질 수 없고, 아버지의 유품인 오래된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늘은 ‘감히’ 사랑을 고백하려 한다. 그는 오랫동안 친구 ‘연희’를 짝사랑해왔지만, ‘바벨 신드롬’이 퍼지기 전에도 둘의 경제적 상황의 차이 때문에 고백을 망설이며 미뤄왔다. 그렇게 고백하지 못한 채 연희는 유학을 떠났고, 둘이 만나지 못한 사이 ‘사랑’은 ‘155번 단어’가 되어 3등급 이상의 항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말이 되었다.

 

드라마는 ‘고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늘의 이야기를 경유하여, 언어를 사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계급이 미치는 영향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는 SF적 상상이라는 ‘필터’를 통해 가공된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9레벨인 어머니는 기초생활 언어 천 단어 밖에 쓸 수가 없다.

단순 노동자들이 일하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천 단어.

그 속엔 연민이나 사랑, 증오 같은 감정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개미처럼 일하는 데 최소한이 있을 뿐.

그야말로 가난하면 감정 조차 가질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바벨 신드롬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사용하는 혹은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달라진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친절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감정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기도 하고, 젠더 질서에 의해 특정 성별에게 유독 금기시 되거나 요구되는 대화의 주제나 언어, 말투가 있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상황에서 소수자들의 언어는 그 자체로 희화화되거나 그들에 대한 편견과 구분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렇듯 드라마 속에서는 특히 계급에 주목했지만 계급 외에도 젠더와 인종, 국가, 지역, 연령, 학력, 장애와 같은 신체적 상황 등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되는 지점에 우리는 서 있고, 우리의 언어는 이를 재현한다. 이렇게 언어는 사회 안의 다양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질서를 재현하며, 동시에 이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어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 안에 형성된 질서와 권력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임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의 한 부분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유념하며 다양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또 우리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함께 돌아보고, 이것이 무엇을 재현하고 재생산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언어가 품은 가능성 : 언어, 그 너머를 상상하기 위해



 

"얼마나 좋아요, 만인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언어로 이 내면이 풍족해진다는 게"

 


드라마 속에서 바벨 신드롬이 유행하기 전 하늘에게 ‘시인의 자질이 있다’고 말해준 교수님은 언어가 만인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학습과 습득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언어를 학습하고 사용하는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우리는 언어를 통해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또한 언어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며 사람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진다. 이러한 언어의 기능들은 우리가 속한 위치와 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가로막는 소통의 장벽을 없앨 수 있는 ‘더 나은’ 소통의 방식을 합의해 가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언어가 계급을 재현하는 세상을 그려내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언어의 가능성이 상상해 볼 수 있는 장치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주인공 ‘하늘’의 동생이자 바벨 신드롬에 감염되지 않은 ‘버들’의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면역력이 약해 무균실에서 지냈던 ‘버들’은, 바벨 신드롬이 퍼질 당시에도 무균실에서 항생제와 소염제를 맞으며 지냈기에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않은 뇌를 가지고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버들은 신체적인 상태로 인해 약자의 위치에서 살아 왔지만, 이러한 버들의 ‘약점’은 오히려 자유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자원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이용하여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기는커녕, ‘정부가 언어를 차등 지급함으로써 국민을 통제한다’고 주장하며 항체를 차등지급하는 국가의 정책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와 더불어 드라마는 말(口話)을 통해 언어를 구사하기 어려운 상태에도 인물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수화(手話)를 제시하는 등 언어가 직접적으로 계급을 재현하는 상황에서도 약자 혹은 소수자의 위치가 전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로 계급 문제를 온 삶을 통해 지나 온 하늘과 달리, 외부의 질서에서 격리된 ‘무균실’이라는 공간에서 자라 온 버들이 주어진 질서를 만드는 체제를 지적하고 이에 맞서는 모습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현실에서는 ‘무균실’과 같이 어떠한 질서와 권력의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선명하게 구조를 인지하고 지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드라마 안에서는 항체를 유상으로 차등 지급하며 기존의 질서를 재생산하고 공고히 하는 주체로서 ‘정부’ 혹은 ‘국가’가 지목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언어를 통해 기존의 질서와 소수자들에 대한 구분을 강화하는 주체를 지적하기란 요원하다. 현실세계에서 그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이기도, 그러한 질서 안에서 쥐게 된 권력을 지키려는 우리 곁의 수많은 사람들이기도, 이를 통해 형성된 우리 사회의 질서와 편견, 혹은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욱 우리 각각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사랑이 이다지 고가인데 설렘은 무상제공되고,

행복이 이다지 희귀한데 욕망이 자가증식하는 것은 잔혹한 신의 오류"

 

 

‘하늘’은 ‘낮은 등급’일수록 사랑과 행복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너무나 커지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설렘과 욕망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위한 노력을 부채질하는 상황을 한탄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랑과 행복을 향한 설렘과 욕망을 드러내고 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가고 변화를 이루어 왔다. 이는 어쩌면 드라마 속에서 하늘의 고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함께하는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거쳐 이어진 하늘의 ‘고백기(告白記)’가 도달한 곳이 비록 ‘말이 없어도 진심은 통한다’는 진리라 할지라도, 그 ‘진심’을 발견하고 드러내기까지 또 그것을 전하기까지 수많은 ‘말’이 필요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가 재현하고 재생산하는 우리 각각의 위치를 인지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언어 그 너머를 상상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치열하게 언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제약과 언어가 품은 가능성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일상 속 언어를 돌아보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한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함께 만들고 사용하며 또 바꾸어가는 ‘언어’가,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며 서로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더 풍부하게 경험하고 다양한 문화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우리를 구분하고 제약하는 것들을 뛰어 넘는 상상을 일상에서부터 현실로 함께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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