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름이었다, 아주 무서운.

글 입력 2022.09.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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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에서 3, 4분기는 정신없는 시기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날처럼 밀어닥친 광고 건들을 정신없이 처리하고 있는데 또 새로운 캠페인이 날아들었다. A 기업에서 이번에 ESG 차원으로 행사를 진행하는데 이를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콜라보 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캠페인을 넘겨받자마자 이제껏 진행한 광고 히스토리와 유튜브 알고리즘을 뒤져 크리에이터들을 찾았다. 그러다 '쓰레기왕국'이라는 채널을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광고 건은 광고주 측의 내부 사정으로 제대로 된 제안 한 번 하지 못하고 엎어졌다. 무용해진 리스트는 혹시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내 폴더에 담겼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쓰레기왕국이란 채널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점심시간을 틈타 그녀들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았다. 이 채널은 쓰레기왕국이 되어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출연자들이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직접 수행하고, 이를 영상으로 남기는 채널이다. 어떻게 보면 흔하디흔한 브이로그 채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영상을 모두 훑어본 나의 소감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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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쓰레기왕국' 유튜브)


 

어느덧 날씨가 쌀쌀해졌다. 지난주엔 정말 오랜만에 재킷과 후드티를 꺼냈다. 회사에서도 즐거웠던 추억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여름휴가에서 복귀했다. 이렇게 이번 여름도 지나가나 보다. 벌써 가을이 오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감상에 빠져 있기엔 이번 여름은 유독 다사다난했다. 지난 7월, 유럽과 북미 지역에는 지독한 폭염이 덮쳤다. 스페인은 45.7도, 포르투갈에서는 무려 47도라는 기록적인 온도가 찍혔다. 비교적 위도가 높은 영국과 프랑스도 40도가 넘는 최고 온도를 기록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까지 겹치며 유럽 지역이 겪는 고통이 배가 되었다. 강의 수위가 낮아져 강바닥에 숨겨져 있던 유물이나 유적이 드러났고, 각국 정부는 시민들의 샤워와 세차까지 제한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한편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역시 지독한 여름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서구권 국가들이 폭염과 가뭄에 시달렸다면 아시아 국가들은 폭우와 홍수에 시달렸다. 실제로 지난 8월, 파키스탄 남부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국토 30%가 물에 잠기고, 1,100명의 사망자와 3,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8월, 중부 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피해를 봤다. 교통이 마비된 것은 물론, 도로가 파괴되고 집이 침수되었다. 사망자도 발생했다. 최근엔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태풍 힌남노와 난마돌이 남해안을 덮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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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신문)


 

그렇다면 이러한 재난들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 위기’가 바로 그 답이다. 사실 환경이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된 것은 굉장히 오래전부터였다. 1991년 처음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니 한국 사회에 친환경이 주요 키워드로 대두된 역사만 하더라도 최소 20년이 넘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그동안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피부로 직접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기후 위기는 멀리 투발루 같은 작은 섬나라나 극지방에서 겪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기후 위기의 불공평에 대해 성토했다. ‘기후 위기의 불공평’은 그동안 선진국들이 산업 혁명을 겪어오며 수많은 탄소를 배출하여 지구의 온도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피해는 개발도상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여름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기후 위기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겼던 선진국들이 더위와 가뭄에 불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십수 년 전부터 투발루를 비롯한 작은 섬나라들은 이대로 가다간 자신들의 나라는 바닷속에 사라질 것이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했고 그 결과 덴마크의 코펜하겐, 영국 런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등은 도시가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안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기후 위기 앞에서 안전한 곳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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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김난도 교수 등이 쓴 <트렌드 코리아 2019>를 보면 현재를 친환경이 아닌 ‘필환경 시대’로 명명하였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듯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는 우리 삶에서 더 이상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면서 우리나라는 한차례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쓰레기 매립지를 둘러싼 인천시와 수도권 지역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없고, 최근엔 서울시가 마포구에 쓰레기 소각장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얼마 전엔 국내 과학자들이 과거 쓰레기 매립 지역이었던 지역에서 시추 작업을 진행했는데 매립된 쓰레기가 거대한 지층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인간의 흔적이 한 지역을 넘어 지구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채널의 이름처럼 우리는 지금 ‘쓰레기왕국’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이상 관망해선 안 된다.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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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펭귄)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과학자들이었다. 올해 4월엔 독일, 멕시코 등에서 ‘과학자들의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천명이 넘는 과학자가 파업에 돌입한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몸으로 도로를 봉쇄하고, 화석 연료 사업의 투자를 진행하던 은행의 출입구에 수갑을 채워 직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동안 연구실에서 실험과 논문으로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증명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을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 <돈 룩 업>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현실의 과학자와 영화 속 랜들 교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 당장 우리의 대답을,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린 계속 무시당했고, 결국 지구는 파멸의 길을 걷고 있죠. 전 세계 과학자들은 계속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짜 멈춰야 할 때입니다. 이건 세상의 모든 어린이, 젊은이, 결국 모든 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무시당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우리는 편향되지 않으려 했고, 중립적 입장에서는 침묵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피터 칼무스, 기후학자)”

 

“우린 정치적으로도 접근해 봤고 유명 인사들의 입을 빌리기도 했고, 정말 우린 모든 짓을 다 해봤다고요! (앨런 코르낙, 생물학자)”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혜성이 존재하는 걸 아는 이유는 우리가 봤기 때문이에요. 에베르스트 산만한 혜성이 지구로 날아오는 게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끼리 그런 최소한의 합의도 못 하고 처앉았으면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서로 대화가 되기는 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죠? 어떻게 고치죠?”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에는 총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우리는 멸종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멸종은 적게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났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여섯 번째 멸종은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물론 원인은 인간이다). 실제로 그린랜드의 과학자들은 우리가 지금부터 아무리 탄소 배출을 줄여도 빙하의 3%는 무조건 녹을 것이며 이로 인해 해수면이 27cm나 상승할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멸망은 확실하지만 아주 천천히 온다. 이는 그 사이에 우리가 결말을 비틀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린랜드 과학자들의 말마따나 3%의 빙하는 잃겠지만, 적어도 더 잃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하듯 드디어 시민들이 과학자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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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실제로 지난 주말에는 광화문 일대에서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집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도로에 드러눕는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린 기후 위기 운동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이는 기후 위기와 관련된 행동들이 일부 환경단체만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들의 주요한 의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러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한 영향력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소개한 ‘쓰레기왕국’ 같은 채널이다. 이들은 플로깅, 제로 웨이스트 등 일반인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 관련 활동을 소개하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얼마 전엔 플로빙(플로깅과 비슷한 개념, 프리다이빙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기 위해 수영을 배우고,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콘텐츠로 제작하기도 했다.


 
"우리는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착실한 실천자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알아가고 배우며 쓰레기 왕국의 조그마한 변화를 위해 몸부림쳐보는 안파카와 맹스터이다." - 쓰레기왕국's 채널 소개
 

 

올여름은 아주 무서운 여름이었다. 지나간 여름과 다가올 여름 사이에서 우리는 시험대에 올랐다. 아마도 그 시험대에 매해 오르게 될 것이다. 내년엔 어떤 여름이 찾아올까. 다가올 여름은 앞으로 우리가 보내게 될 계절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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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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