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은하수를 헤치는 사람들 - 2022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영화]

글 입력 2022.09.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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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독립 애니메이터들의 축제에 방문했다. 금년 여름 새롭게 개관한 CGV연남에서 '서울인디애니페스트'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그 자체로 신선한 도약을 꾀하는 듯했다. 동시에 세계 유일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매년 더 알찬 구성을 자랑한다고 느꼈다.

 

자잘한 상영회나 행사로 비교적 접할 기회가 잦은 독립영화에 비해, 독립 애니메이션은 관련 업자나 전공생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느낀다. 해서 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매년 9월마다 인디애니페스트를 찾는 것은 연례 행사가 된 지 오래이다.

 

 

포스터_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2_최종.jpg

 

 

이번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미리내(Mirinae)'라는 슬로건과 함께한다. 미리내는 은하수의 방언으로, 개최 측에 따르면 '새벽의 첫 비행을 시작으로, 작가로서 홀로 나아가는 독립보행을 지나, 별들의 강 미리내(은하수)로 향하는 여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양한 꿈과 환상 세계를 직조해온 애니메이션이 나아갈 길을 그대로 시각화한 슬로건이라 느꼈다. 또한 이는 서울인디애니페스트의 섹션 이름과도 겹친다.

 

학생 애니메이터들의 풋풋함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새벽비행'은 기성 애니메이터들의 꾸준한 열정이 담긴 '독립보행'으로 이어지며, 이번에 신설된 '미리내로'는 특별히 장편부문을 다뤄 그 다양성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돌아보면 항상 이 새벽비행과 독립보행 섹션을 관람해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작품 위주로 감상해왔다. 이번에는 해외 독립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관심을 충족해보고 싶은 욕심에, <장편초청1 : Archipel>과 <해외초청2: 미유 단편 스페셜>을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장편초청 섹션은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라는 컨셉에 맞게 형식/기법적인 실험에 힘썼으며 한국 소비자로서는 생소한 문화적 주제들을 다룬 작품을 소개한다. 그중 필자가 관람한 은 그야말로 선과 도형으로 그린 시(詩), 가장 예술적인 철학 에세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었다.

 

 

그림1.jpg

펠릭스 뒤포-라페리에르 감독의 Archipel(아시펠) 스틸이미지

 

 

Archipel(아시펠) 시놉시스

 

세인트로스강과 수천 개의 섬들에 대해 -실제 혹은 꿈의 나라, 또는 그 사이 어디에 있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 땅을 지역, 공동체로 만드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이자 반허구적 오디세이

 

 

무어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촘촘한 밀도와 심오한 철학을 담은 작품이었다. '너는 존재하지 않아'라는 말에 반증하듯, 목소리와 풍경을 품은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여인은 수많은 소도시들을 여행하며 삶과 존재를 증명해간다. 지도에 쓰여진 지역 명칭이 하나씩 탈각되면서 그저 하나의 거대한 땅덩어리로 형상화되는 장면부터 시작해, 그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지역들을 굽어보는 구성이다. 실사 화면과 앵커의 목소리는 애니메이션 화면과 여자의 목소리와 대비를 이루며 그 땅의 인간적/자연적 가치를 굽어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더불어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듯한 나레이션, 실사 이미지와 2D 애니메이션의 조화, 컷아웃 기법 등이 인상적이었다. 화면에 나타나는 정보값이 많은 편이라 다시 한 번 감상한다면 그 가치를 좀 더 세밀히 감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저녁에는 <해외초청2: 미유 단편 스페셜>을 관람했다. 작품 상영 이후 진행된 GV에서 배급 관계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프랑스 단편애니메이션 배급사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미유(MIYU)는 설립 5년만에 각종 영화제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독립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배급사가 없다시피 하며, 해당 분야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와 같은 행사의 영향으로 세간의 관심이 모이고, 독립 애니메이터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GV 역시 흥미롭게 참석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금껏 인디애니페스트에서 관람했던 그 어떤 섹션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실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생동감 넘치는 동물 모델링에 귀여운 상상력, 놀라운 음향 효과를 더해 만든 <일로직>, 귀여운 그림체 속에 반려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녹여낸 <캐서린>, 스톱모션 기법의 인상적인 사용과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남달랐던 <빈 공간>, 수영장 내에서 오고 가는 다양한 욕망들을 독특한 그림체로 표현한 <거대한 수영장>, 거식증 환자의 심리를 공간적으로 표현해낸 <에그>, 제 2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 해도 무방할 만한 환상세계를 직조해낸 <굿바이, 제롬!> 등... 실로 다채로운 기법과 주제로 이뤄진 작품들이 오래 잔상으로 남았다.


관람을 마칠 때면 큰 영감을 선물처럼 얻고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오랜 세월 외로운 여행자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별처럼, 서로가 서로의 빛나는 작품으로 위로 받고 이끌리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미리내 위로 뻗쳐나갈 애니메이터들의 미래를 기도한다. 내년 2023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역시 기대하는 바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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