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나더 라운드 : 진정한 ‘새 판’을 찾는 법 [영화]

북유럽 중년 남성들의 "알코올로 새 삶 찾기" 프로젝트와 그 이후
글 입력 2022.09.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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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통지서를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건강검진에서 의례 물어보는 주당 음주 횟수 질문에 주 2~3회라는 칸에 체크를 한 상태로 제출했더니, 음주 횟수가 너무 잦아 알코올 중독이 우려된다는 소견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비음주자가 아닌 이상, 현대인에게 술은 습관과도 같다. 성인이 된 이후 저녁 시간대에 만나자는 대부분의 약속은 곧 술 한잔하자는 얘기와도 같다. 술을 마시면 나오는 특유의 편한 분위기와 진솔한 대화들이 좋아, 우리는 자연스레 “소주 한 병이요”를 외친다.


건강검진 통지서를 보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상에 스며들어버린 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술 없이는 진솔해질 수 없게 되어버린 것 아닐까? 진실한 대화를 끌어내는 경로를 술에 의한 취기에 위임해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술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아저씨”들의 삶을 빌려 북유럽 특유의 과장 없고 묵묵한 태도를 취한 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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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북유럽의 고등학교 중년 남성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사는 곳과 문화가 달라도, 중년 남성들이 한 번쯤 삶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오는 것은 닮았나 보다. 대표적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니콜라이의 경우,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본인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 열정 없고 무심한 태도로 학부모들의 민원을 받기도 하며,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태도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고, 우울한 태도가 가정에서까지 이어져 가족들과의 사이도 소원하기만 하다.


우울한 니콜라이를 위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함께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파티에서 함께 술을 마는데, 이때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떠오른다.

 

이들은 이 주제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마르틴의 주도로 이 가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실험에 들어간다. 이들은 “항상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에는 금주할 것”이라는 두 가지 규칙을 설정한 후 수업 전에 소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등, 새로운 일상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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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은 확실히 심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나의 경우, 알코올은 기분을 좋아지게 해 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좋은 기분들이 우리에게 100%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량을 잘 모르던 시절, 잔뜩 취할 만큼 술을 먹고 나면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지만, 다음날에는 곱절이 된 우울감과 공허함이 휩쓸고 가곤 했다. 술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감정들은 온전히 우리의 감정이 될 수 없다. “어나더 라운드” 속 주인공들도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자는 이 실험은 처음에는 그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니콜라이는 무기력한 교사에서, 아침에 섭취하는 알코올의 도움으로 열정 넘치고 위트있는 교사가 되며, 나머지 인물들 역시 직업적, 가정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선을 지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큼만 알코올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은 결국 알코올 섭취 횟수와 농도를 늘려가고, 그럴수록 그들의 생활은 엉망이 되어간다. 수업 시간에 비틀거리고, 함께 만취하여 지역 마트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 망가져 가는 그들의 일상 때문에 결국 실험은 종료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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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이 종료된 이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자신들의 일상을 성찰한다. 끝내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톰뮈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남은 세 친구는 톰뮈를 기리며, 그들 삶의 의미를 다시 정비해보기로 한다.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는 말이 있다. 무기력한 일상과 열정이 상실되는 현상은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쌓이고 곪은 삶의 태도와 감정들이 모여 일어나는 현상을 어떠한 단순한 수단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친구와 함께, 또는 홀로 기울이는 술잔은 잠시동안 기분을 좋게 해 주고, 그 순간에 감정을 몰입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알코올에 의존해 잠시 고양된 감정은 영원하지 않고, 그 감정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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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도피가 된다. 의존하는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말처럼, 술은 문제의 답이 될 수 없다.

 

무언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단단해진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북유럽의 건조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잔잔하게 삶을 들여다보고 다시 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어나더 라운드”는 영화 내내 진한 술판을 벌인 후 우리에게 말한다. 진정한 새로운 판 (Another Round)는 우리가 술을 의존의 대상이 아닌, 가벼운 친구 정도로 여길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시 시작된다고.

 

그렇다 – 우리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결국에는 깨달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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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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