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숲 예찬 [공간]

은신처 혹은 휴식처. 서울숲의 아름다움.
글 입력 2022.09.2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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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람의 머나먼 서울숲 산책



내가 사는 인천 집에서 성수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족히 두 시간은 걸린다. 힙한 것은 다 성수동에 모여있다는데, 내 동네와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힘겹게 유행을 좇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해진 이상 경험하지 않는 것이 더 견딜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비 오는 가을의 초입에 성수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졸음이 몰려오는 평일의 오후, 예상대로 서울숲길은 한산했다. 멋진 차림의 젊은이들이 오가는 골목길 사이로 개성 있는 가게들이 보였다. 재밌어 보이는 팝업스토어와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은 옷 가게, 반짝거리는 편집숍과 파리에서 옮겨온 것 같은 바게트 집까지.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눈이 바빠서 절로 걸음이 느려졌다. 숨을 돌릴 겸 멋져 보이는 카페 중 한 곳을 골랐다. 나도 여느 젊은이들처럼 그 풍경에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리고 맛 좋은 커피와 함께 만원에 육박하는 디저트를 맛보며 성수동의 힙한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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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읽으니 몸이 근질거렸다. 한적한 성수 골목의 새로운 즐길 거리를 탐색할 수도 있었지만 왜인지 더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약속시간까지는 한 시간도 더 남아있었다. 내 마음은 이상하게 서울숲을 향했다. 궁금해지는 곳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칙칙한 회색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그래도 온 김에 가봐야겠다. 말로만 듣던 서울숲. 주말이면 그렇게 사람들이 몰린다는 서울의 대표적인 공원. 나는 이곳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때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행운이었다. 덕분에 인파 없는 비 오는 날의 모습이 서울숲의 첫인상이 되었다. 이럴 때 P형 인간이라는 게 만족스럽다. 나는 한 번의 방문으로 완전히 서울숲의 풍경에 마음이 빼앗겨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의 서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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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자마자 비가 내렸다. 다행히 분무기로 뿌리는 듯한 미스트 타입의 비였다. 성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로든 서울숲으로 통하게 된다. 보통 공원은 정해진 입구가 있어서 돌아가야 하거나 입구가 많지 않은데. 이런 개방성이 맘에 들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라 더 서울라이티움으로 꺾이는 좁은 길로 들어갔다. ‘서울은 공원도 남다르네.’라고 느낀 건 입구로 향하는 표지판에서였다. 동화책 앞장처럼 귀여운 팻말이다. 갑자기 빨간 모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판타지 게임을 시작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무가 바깥의 건물을 가릴 만큼 우거진 길을 지나면서 스튁스 강을 건너는 것처럼 성수 골목의 존재를 잊었다. 짙은 녹색 나무가 숲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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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텅이로 모여있는 꽃무릇 군단과 팻말과 함께 펼쳐져 있는 다양한 식물 종,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고요함 속에서 회색 하늘에 반사되어 은은히 빛나는 서울숲은 신비로운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표지판을 보지 않고도 아름다운 장관에 취하여 계속 발걸음을 안쪽으로 옮겼고, 다리를 건넜다. 센트럴파크를 떠올리게 하는 드넓은 공원의 중심에는 그림책 풍경처럼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앉아있는 대형견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 장면을 그리고 싶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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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진가는 안쪽으로 발을 디딜 수록 드러난다. 짧은 메타세쿼이어 길을 지나고 나면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그곳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어느 산속의 계곡물처럼 새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가는 곳이다. 무지개 같은 아치 형태의 다리가 반사되어 드러난 물 위의 반영이 장소의 신비감을 한층 더한다. 금방이라도 숲속의 요정 엘프가 나와서 다리를 건널 것만 같다.

 

처음 보는 꽃과 식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생태학습장으로도 이용되어서 그런지 친절히 팻말이 세워져 있다. 거대한 자연의 전시관에 온 것처럼 관람하듯 산책을 즐겼다. 식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지는 예상 못했는데 의외의 재미였다. 그렇게 구경하며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겨울 정원’이 나온다. 조형물과 함께 개미굴처럼 작은 테마정원이 모여있는 곳이다. 한쪽에는 다육식물이 함께 사는 집이 있고, 한쪽에는 난쟁이가 살 것 같은 작은 바위 집과 벤치가 있다. 구석진 곳이 가득한 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딱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적 외부공간을 찾기 어려운 요즘, 이런 장소는 너무나 귀하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의 희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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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비는 그치고 살짝 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에 빗물이 반짝였다. 적당히 비에 젖어 촉촉해진 땅 위에 멈추어 섰다. 향그러운 풀냄새를 맡으며 숨을 들이쉬고,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귀 기울였다. 팔 끝과 귀 끝에 닿는 바람결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 기분 좋은 상쾌함을 한껏 받아들이니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레 걸렸다. ‘이곳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서울숲에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부러움도 잠시 이곳에 있는 동안은 기쁨을 최대한 마시고 가기로 했다. 나는 솜사탕을 처음 맛보는 아이처럼 서울숲의 공기를 내 입보다도 크게 한 움큼 잡아서 마시고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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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을 맘껏 즐기고 나오니 또 다른 길이 보였다. 걸어도 더 걸을 곳이 남아있다는 게 나를 더 설레게 했다.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했다. 옆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종종 지나쳐갔다. 앞에 웬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다리 뒤로 그늘이 가득한 숲이 보였다. 진짜 숲의 모습이었다. ‘진짜 저런 곳이 있다고?’ 깜짝 이벤트를 받은 것처럼 신나는 마음에 거의 뛰어가다시피 잰걸음으로 걸었다.

 

이곳은 ‘은행나무숲’길이다. 높은 은행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숲처럼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햇빛은 점박이처럼 나무 기둥을 비출 뿐이었고 나무 사이 거리만큼 바닥을 채운 그늘이 비밀 아지트처럼 아늑했다. 아쉽게도 은행나무 숲은 길지 않았다. 그만큼 은행나무가 채운 길을 아껴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잎은 노란색으로 물들지 않았지만, 열매는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찌릿한 열매 특유의 향도 오늘은 왠지 괜찮네.’라고 생각하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은행나무숲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한 바퀴 두 바퀴 같은 곳을 맴돌았다.

 

 

 

맑은 날의 서울숲



비 오던 날의 서울숲을 다녀온 후에도 그 감동이 이어졌다. 친구와 만나고 난 뒤에도 계속 떠오르는 것은 서울숲의 정경이었다. 새벽에 가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그 고요한 신비로움을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자기 전 누워서 그곳의 풍경을 곱씹었다. 이번엔 카메라를 들고 가봐야지. 맑은 날 오후, 저번처럼 느지막히 출발했다. 도착하니 두시였다. 평일이었으나 이번엔 사람이 많았다. 내 예상과는 달리 조용한 서울숲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 번 와봤다고 익숙해져서 어디 가면 뭐가 나오는지 알게 됐다. 저번처럼 좋았던 장소에 다시 들어가며 사진을 찍고 산책했다. 이번에는 정문으로 들어갔다. ‘거울연못’을 봤다. 건물과 나무를 거꾸로 비추는 게 정말 거울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그때처럼 광장을 지나 메타세쿼이어 길을 걸었다. 핑킹가위로 자른 종이같은 나뭇잎들이 맑은 하늘 위에서 유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공원과 ‘도시락 정원’에는 오후의 느긋한 식사와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돗자리를 깔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책을 읽거나 누워서 눈을 붙이고, 친구와 담소를 나누거나 포장해 온 피자를 먹고 있었다. 웨딩 촬영을 하러 나온 예비 신랑 신부와 컨셉 사진을 찍는 모델과 사진사,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까지. 서울숲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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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 줄기를 따라가 보면 호수가 나온다. 맑은 날에는 호수가 정말 아름답다. 호수를 크게 둘러싼 곳곳의 벤치가 눈에 띄는데 서울숲의 의자는 모양이 하나가 아니다. 일반적인 의자 모양부터 누워있을 수 있는 벤치, 평상 등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앉거나 누워 호수를 바라보고 다양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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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지나 오두막을 만났다. 서울숲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컨셉이 있는 테마 정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그중 하나인 ‘어린이 정원’이다. 뒤편에는 둥그런 원형 파이프 통이 입구처럼 나 있다. 몸을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향해야만 어린이와 만날 수 있다는 뜻일까. 원통 건너편으로 보이는 나무 밑동 징검다리가 숨겨둔 동심을 꺼내게 했다. 오두막집처럼 연출한  모형일 뿐이지만 나 같은 어른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곳을 혼자 점령한 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무 사이사이 전구도 걸쳐져 있던데 밤에는 또 얼마나 멋진 풍경이 될지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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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풍경은 평일과는 또 다르겠지만, 서울숲은 PARK 1부터 PARK 3까지 있는 드넓은 공원이다. 그만큼 넓은 부지를 두고 조성한 공원이라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숲은 개방성과 폐쇄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지하철역에서 서울숲으로, 골목길에서 서울숲으로, 도심에서 서울숲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고 나갈 수 있다. 반면 들어오는 순간 빽빽이 조성된 커다란 숲길이 바깥의 공간을 잊게 만든다. 공간의 전환이 빠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길들이 이곳을 공원이 아닌 진짜 숲처럼 느껴지게 한다.

 

자연과 관련하여 다양한 컨셉이 스며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넓은 공원과 계곡이 같이 있고, 오르막길이 없는 숲에서 산책을 할 수 있다. 아지트처럼 우거진 정원과 거대한 놀이터, 호수, 오두막까지 진짜 숲이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대여소가 가까이 있어 이동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큰 다리를 건너 사슴을 볼 수 있는 생태숲과 곤충을 볼 수 있는 체험학습원까지 빠르게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비상 은신처로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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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심지어 집 안에서는 온라인 공간을 향해 사소한 삶의 순간을 공유하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노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이지만 때로는 숨고 싶어지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정신은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뜰이나 정원, 옥상, 테라스 등 나만의 자연 공간을 갖기 어려운 도심에서 서울숲은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개방 공간이다. 은신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타인과 적정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곳.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이곳을 거닐며 안정감과 아늑함을 느낀 가장 큰 이유도 이것에 있다. 잠시 '나'라는 사람의 역할을 잊고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서울숲이 서울시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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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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