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펜 바를렌이 마주한 변월룡 [미술/전시]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본 변월룡
글 입력 2022.09.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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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변월룡. 대학원 졸업 기념 사진으로 추정. [출처 : 학고재]

 

 

펜 바를렌(邊月龍)(1916~1990). 그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한 '카레이스키'(옛 소련 고려인) 미술인이다. 뛰어난 그림 솜씨를 지닌 그는 고려인 유지들의 후원을 받아 러시아 최고 미술대학인 레핀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최초의 국외 정교수를 역임했다.

 

1953년, 소련과 북한 간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 미술대 학장을 맡았던 그는 주체 미술로 변질되기 전 북한 미술 교육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귀화 제안을 거절한 이후, 변월룡은 북한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땅을 밟고 서 있는 러시아에서는 이민자로, 고국에서는 숙청 대상자로서 경계에 서 있던 변원룡은 마음 둘 곳이 없었다. 변월룡은 일생 정체성에 대한 남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갔을 것이다. 디아스포라 역사를 겪은 변월룡은 어떻게 정체성을 확립해나갔을까.

 

 

 

변월룡과 렘브란트


 

학창 시절 변월룡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를 동경했다. 변월룡과 렘브란트는 닮았다. 이들은 주로 물감을 두텁게 칠하고 붓 자국이 남는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빛과 어둠을 포착하는 것에 탁월했고, 판화라는 관심사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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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 <자화상>, 1963,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75x60cm

 

 

하지만 렘브란트는 죽기 전까지 수많은 자화상을 그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달리 변월룡은 일생에 자화상을 단 1점만 그렸다.

 

변월룡 연구소장 문영대는 변월룡이 자화상을 1점 밖에 그리지 않은 이유가 작가 자신이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변월룡에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자화상'이란, 자신한테 어색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말년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렘브란트는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계속 자화상을 그려나갔다. 그러나 변월룡은 찾을 정체성조차 없었다. 줄곧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상태에 있던 변월룡의 경우, 정체성이란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변월룡이 그린 자화상은 어딘가 모르게 암울해 보이기도 하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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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 <양지의 소녀>, 195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7.5x29cm

 

 

자화상을 1점만 그린 것과 달리, 변월룡은 타인의 모습을 다수 제작했다. 변월룡의 아내는 남편에 대해 "제 남편의 그림을 보면 느끼겠지만, 그이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교제하는 것을 퍽 즐겼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사람을 좋아한 변월룡의 시선이 느껴지듯, 그가 그린 초상화는 생동감 있다. 특히 신분의 高下)나 남녀노소, 인종 등의 구분이 없다. 가족, 북한에서 만난 동료, 러시아 소설 작가, 연해주의 어부 등의 모습에서 각 인물에 대한 화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 존경 등이 배어 있다.

 

그렇다면, 변월룡의 경우 타인을 통해 자신을 마주한 것이 아닐까?

 

 

무엇이건 나에 관한 진실을 얻으려면 나는 반드시 타자를 거쳐야만 한다.

타자는 나의 존재에 필수 불가결이다.

 

- 사르트르

 

 

타인을 통해 나를 마주하는 일, 인간이라면 으레 겪는 일이다. 상대를 보고 나를 보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특징을 하나씩 짚어가며 정체성을 형성해간다.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인간의 범주를 '나'와 '타자'라고 하는 영역에 구분하고 있으며, '타자'를 원칙상 '나를 바라보는 자'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즉 타자란 나에게 객체성을 부여하고, 나에게 나의 존재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타자는 나의 존재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변월룡은 자신이 과연 한국 사람인지, 러시아 사람인지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정체성 속에 있던 변월룡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수의 초상화 제작을 통해 발견한 것 같다.

 

그에게 사람을 만나 초상화를 제작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정립하지 못한 정체성에 대한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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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 <개성 선죽교>, 195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6x55cm

 

 

초상화 이외에 변월룡은 불확실한 자신의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민족적인 정서가 드러나는 소재를 작품에 넣고, 자신의 작품 측면에 한글을 새겨 넣기도 했다.

 

당시 소련은 소수 민족 말살을 위해 러시아어 외에는 다른 언어 사용을 금지했지만, 그는 결코 이에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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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 <햇빛 찬란한 금강산>, 195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78x59cm

 

 

평생을 '펜 바를렌'으로 불려온 그는 '변월룡'을 마주하기 위해 꾸준히 자신을 탐구했다. 생동감 넘치는 선, 맑은 색채가 어우러진 작품은 그의 능동적인 움직임을 더욱 생생히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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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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