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서관 여행하다가, '도서관 여행하는 법'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9.2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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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도서관을 여행하고 있다. 위치를 찾아보고 방문해서 둘러본다. 마음에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빌려도 본다.

 

이 소소한 취미는 최근에 참여한 도서관 행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서관 세 곳을 방문해서 책을 대출한 후 스탬프를 모아오면 소정의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유익하면서도 어쩐지 아기자기한 행사. 거기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작게 놀라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는 구립도서관과 공립작은도서관까지 무려 15개의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본 곳은 겨우 두 곳 뿐이었다. 가보지 않은 다른 도서관을 가볼 수 있는 적절한 기회였다.

 

처음 방문한 작은도서관의 첫인상은 내 예상과 거의 들어맞았지만, 아예 빗나가기도 했다. 구립도서관에 비해 작았고, 그 작은 공간에 장서를 모아두니 더욱 협소하게 느껴졌다. 둘러볼 데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그 순간 커다란 폴딩도어가 눈에 들어왔다. 열린 통유리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왔고, 그 바람을 따라가면 테라스가 나왔다. 밖으로 나가보니 작은 텃밭들이 옹기종기 일렬로 줄을 이뤄 모여있었고, 그 너머로는 주변 일대가 한눈에 훤히 내다보였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질녘에 다시 와야지, 생각했던 것도 같다.

 

다시 들어와서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뽑아들고 긴 원목 테이블에 앉았다. 열린 문으로 바깥바람이 불어왔고, 책을 읽다 문득문득 고개를 들면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심어놓은 텃밭과 함께 우리 동네 풍경이 보였다. 더는 좁은 공간이 이 도서관의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는 동네 책방 같았다. 그래서인지 거기서 책을 읽던 그 시간이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가끔씩 떠올랐다. 한 번 방문했을 뿐인데도 그곳의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마치 퀘스트를 완료하는 게임 유저가 된 것처럼 동네의 여러 도서관을 순회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책을 빌려볼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던 도서관의 의미가 변해가고 있었다.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건 우연히 마주한 책 한 권 덕분이다.

 

*

 

임윤희 저자의 <도서관 여행하는 법>, 우습게도 책을 펼치기도 전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도서관 여행이구나. 도서관 여행을 하면서 <도서관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을 만나다니. 이상한 운명론에 취해 곧바로 책을 대출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목만큼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앎의 세계에 진입하는 모두를 위한 응원과 환대의 시스템.’ 도서관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도서관을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해서. 셀 수 없이 많이 방문하면서도, 좋아해 마지않는 공간임에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도서관에 대해 알아보고 사색해보고 싶어졌다.


책의 저자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 우연히 한 도시의 공공도서관에 방문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충격적일 정도로 좋아서 여러 도서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 시설, 장서의 수, 서비스, 분위기뿐만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온 사람들의 꿈을 살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서 도서관에 가지는 그만의 철학이 완연히 드러났고, 도서관을 아끼는 마음이 여실히 전해졌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검색이 모든 질문을 해결해 준다는 시대다. 나는 에릭 슐로서처럼 완고하게 도서관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 시대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이 인터넷 단 하나만 있는 세상이 오진 않았으면 좋겠다. 답을 찾는 다채로운 과정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줄지 모르니까. 사람과 마주하면서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으며 얻게 되는 배움의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쩌면 도서관은 이 가느다란 가능성을 일상에서 품을 수 있게 해주는 보루일지 모른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바로 내가 꿈꾸는 곳이다. - p. 25

 

강연장을 나와서 받아 든 유인물에 적힌 "도서관은 나의 두번째 집"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집처럼 안전하고 안락하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이 있었다면 나의 청소년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청소년이든 해고자든 노숙자든, 아니 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은 강한 것 같으면서도 취약한 존재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어쩌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을 뿐 무언가를 공유해 본 경험이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도 평등하게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커다란 마음의 위로가 된다. 도서관이란 내게 그런 곳이다. - p. 29

 

임윤희, <도서관 여행하는 법> (유유, 2019)

 


무언가가 궁금하거나 조사해야 하는 정보가 있을 때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건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그 내용이 요즘 사회와 동떨어져 있거나 최신 정보가 아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은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골몰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들어지고, 편집자와 함께 여러 차례 퇴고해서 완성된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는 건 정확하고 도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깊은 이야기나 오랜 경험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완독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생각의 파장은 더 크고 더 깊다.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도 그렇다. 책이 직접적인 답을 명쾌하게 알려주진 않겠지만, 더 나은 길로 인도하곤 하니까. 그래서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이 인터넷 단 하나만 있는 세상이 오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양한 종류의 서적이 모여있는 도서관은 특별하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일상에서 주어지는 곳. 그런 곳이 도서관이라서.


작가가 도서관을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도 평등하게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평등한 공간'에 가까운 곳은 학교가 아니라 도서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 이용자들은 무언가를 알기 위해, 혹은 조용한 공간에서 휴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도서관처럼 누구나 언제든 방문할 수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건 도서관이 가진 특권이기에 '보루'라고 표현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까지 도서관 덕후를 자처하는 것은 그다음 생각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또한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 p. 13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확답은 못 하겠다. 하지만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씨앗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곳곳에도 그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바뀔 것이다. - p. 149

 

임윤희, <도서관 여행하는 법> (유유, 2019)

 

 

저자가 도서관 덕후가 된 이유를 듣고 있노라면, 내 안의 도서관 정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재정비된다. 별다른 감정 없이 이용하던 도서관에 관심과 애정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도서관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도서관이 모든 동네에 적어도 하나씩은 있고, 많은 사람이 그곳을 쓰임에 맞게 애용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은 이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올바른 길로 향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내가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도서관을 둘러보는 취미가 생기고, <도서관 여행하는 법> 책을 만나 이렇게 사색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도서관에서는 누구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멋진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도서관에서만큼은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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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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