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대로, 유저를 게임에서 소외시키지 말 것 [도서/문학]

저예산 프로젝트, 김보영 (2020)
글 입력 2022.09.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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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 인생의 초점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맞춰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초라해지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름대로의 방어기제였다. 쉽게 실망하고 쉽게 슬퍼하지 않도록, 내가 긁어대는 부스럼에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이 '기대하지 말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은 쉽게 기대하는 내 마음을 잠재우기에는 특효약이었지만, 심한 부작용 하나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다가오는 '내일'마저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일은 어차피 반복될 어제와 같은 또 하나의 하루. 그 속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면 운이 좋았던 하루.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하게 된대도 괜찮았다.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운이 좋지 않았던 하루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 결과에 대한 기대, 내일에 대한 기대... 실망하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나만 빼고) 멋진 일들로만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가 세상을 소외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근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방법은 적용한 이후부터 삶이 조금씩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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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오던 중 만난 책 속 단편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요약하면, 절대로, 유저를 게임에서 소외시키지 말 것.

 

<저예산 프로젝트> 중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외부의 누군가가 플레이하고 있는, 잘 짜여진 게임은 아닐까라는 상상. 나는 이 게임 속 캐릭터이고, 지금 내가 지나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게임 속 NPC들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날수록 나의 이상한 상상은 힘을 더해갔다. 외부에서 나를 조종하는 알 수 없는 플레이어에게 이곳에서의 내 캐릭터를 잃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쩌면 이 느낌은, 나 스스로 나를 이 게임에서 소외시켰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깨달음이 일었다. 지금까지 나는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선택의 권한을 내가 아닌 운명(운)에게 떠넘겨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 인생도 선택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어차피 평생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결국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웅적인 선택도 바보스러운 선택도 할 수가 없어. 원하지 않는 길을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다 자신의 인생에서 소외되는 거야.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 선택지가 나타났을 때 알게 되는 거야. '나는 저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겠구나.' 세계의 이면을 다 보고, 모든 가능성과 경로와 결과를 다 볼 수 있겠구나...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그게 바로 게임이야. 그게 진짜 게임 시나리오라고."

 

<저예산 프로젝트> 중

 

 

이 말을 인생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다'라는 능동적인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볼 때에 내가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나를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물론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다. 소설 속에서의 게임은 망했고, '끔찍하고도 지루한 게임'들이 회사에 돈벼락과 빌딩과, 부동산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 마음을 계속해서 되뇌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나 스스로를 이 게임에서 소외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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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는 있지만 예측을 살짝 벗어나는 이벤트로 놀라게 할 것. 이벤트를 볼 확률은 높게, 하지만 놓쳤을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여 그 일이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게 할 것. 그래서 믿게 할 것. 당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영웅적인 선택도 바보 같은 선택도 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저예산 프로젝트> 중


 

삶은 언제나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어젯밤에 읽고 잔 소설처럼 내일 갑자기 지구에 곧 운석이 떨어진다는 소식에 모든 사람들이 종말을 기다리는 시한부 같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가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예측할 수는 있지만 예측을 살짝 벗어나는 이벤트로 가득할 내일. 그 내일 속에서 어떤 선택도 내릴 수 있는 내가, 나라는 세상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언젠가 맞이할 나의 엔딩 크레딧 속 주연 자리에 새겨질 글씨는 나의 이름이니까.

 

나는 이 게임 속에서 나 스스로 좀 더 재밌는 플레이를 펼치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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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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