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상한 독자의 책에 관한 혼잣말

글 입력 2022.09.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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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관계없이 내가 꾸준히 하는 거의 유일한 것은 바로 독서다. 책이 필요해서 읽기도 하고, 재밌어서 읽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묘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읽기도 한다.

 

어쨌든 늘 무언가를 읽는다. 하루에 한 페이지 혹은 일주일에 한 페이지라도 읽는다. 아주, 아주 느리더라도.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늘 어떤 책의 표지를 가까이 둔다. 마치 내가 그 책을 완독이라도 한 것처럼, 여러 차례 다시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익숙해질 때쯤 표지를 바꾸기 위해 다시 종잇장을 넘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책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또 어느 정도 이상은 실제로 그렇다. 욕심이 넘치고, 궁금한 게 많을 때면 여러 책을 동시에 읽으려 시도해보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나와 맞는 방법은 아니다. 요즘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붙잡고 있다. 이 한권으로도 충분히 무겁다.

 

책은 얇고 가벼울수록 좋다. 밖에 나갈 땐 두 손을 활짝 펼쳐야 겨우 가려질 만한 크기의 가방 속에 얇고 가벼운 책 한 권을 넣는다. 그러나 정작 밖에서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보다 더 작고, 책만큼 가벼운 스마트폰 속에는 더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하면 책을 꼭 챙긴다. 이 산만하고 유쾌한 것들을 뒤로한 채 인내심 많은 활자를 탐독하고 싶은 어느 날을 위한 나의 작은 배려다.

 

그래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책이 없는 세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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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고도 줏대 없다. 나의 흥미를 자극하면 된다. 이걸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같은 이유로 좋아하는 장르가 바뀌어 왔다. 요즘은 문학에 빠져 있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신작 소식이 들려오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긁는다. 소설은 내 책일 때 가장 맛있다. 이런 이유로 자꾸만 바닥에 책이 쌓인다.

 

독서 편식이 있는 편 같다. 그래서 고민 끝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다운 더 래빗홀. 우리는 한달에 한 번,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토끼굴 속으로 빠져든다. 이 모임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고, 내 생각을 정리해 말로 전달하는 연습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럴수록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나의 빈틈을 발견한다. 그러나 기쁜 일이다. 책 한 권 읽었다고 꽉 차는 작디 작은 세상 속에선 살고 싶지 않다. 부족해도 넓은 우주가 더 좋다. 조금은 우울하고, 공허하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나의 작은 우주!

 

가장 최근에 완독한 책은 연인인 이브 생 로랑에게 보내는 피에르 베르제의 편지를 엮은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이다. 너무나도 밑줄 치고 싶은 문장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라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이곳에 옮겨 적어본다.

 

 

‘무언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두 잊어버려야 해.

그게 내가 끝없이 행한 일이었어.’

 

 

아주 느려도 계속해서 읽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일생의 한 문장을 찾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자꾸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스마트폰 속의 어떤 소란보다, 무시할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 무심한 활자들이 마음에 더욱 깊이 박힌다.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나와 내 삶 그리고 내 모든 것을 꿰뚫고 중심이 되어줄 단 한 문장.

 

그러나 평소에는 이렇게 유난스러운 이유를 구태여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읽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며. 쓰고 보니 우정을 나누는 것과 얼추 비슷해 보인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한 번쯤은 나의 책 읽기에 대해 어떤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지금 붙잡고 있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펼쳐볼 예정이다. 묘하게 들뜨는 기분이다.

 

책 읽기 좋은 가을이 왔기 때문인가?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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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라떼36a
    • 멋진글입니다.
    • 0 0
  •  
  • 너무
    • 공감되는 글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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