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목싸목 S의 골목길] 골목 안 작은 빵집과 '잘 지내요?' 소금빵

글 입력 2022.09.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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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가지 등굣길


 

○○대입구역은 으레 그렇듯이 그 학교 앞에 없다. S의 학교도 그랬다. 학교 이름이 붙은 전철역에서 학교 정문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0여 분, 느린 걸음으로는 20분이 걸렸다. 학교 정문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제법 가팔랐으나 S는 그 길을 주로 10분 만에 주파했다. 1시간 반 거리를 통학하면서 시간표에 1교시 전공 수업까지 들어 있으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S의 손에는 가끔 버블티가 들려 있었다. 그건 아침을 거른 S가 간편하고 포만감 있게 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 메뉴 중 하나였다. 지금 S는 공복에 커피 마셔본 지도 한참 됐는데, 그때는 위장도 강철이었나보다.

 

시간이 지나 S는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더 효율적인 등교 루트를 알게 되었다. S의 모교 학생들은 주로 세 가지 방향으로 학교에 들어왔다. 정문 쪽으로 들어오는 것, 동네 이름이 붙은 역에서 후문 쪽 계단으로 올라오는 것, 시간이 좀 더 여유로운 경우에는 정문과 후문 중간 지점에 있는 쪽문 길로 들어오는 것. 마지막 루트는 가파른 언덕과 가파른 계단 대신에 쪽문과이어진 건물에 문명의 이기-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걸 타고 캠퍼스 위쪽 건물들로 손쉽게 갈 수 있었다. S는 동기와 선후배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처음엔 언덕을 거쳐 정문으로 학교에 들어오다가 후문 계단 길을 이용했고, 최종적으로는 쪽문 길을 애용했다.

 

등굣길에 걸친 두 지하철역은 호선이 달랐다. 그래서 지하철 배차 간격에 따라 그날의 등교 루트가 바뀌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야외에서 걷는 거리를 줄일 쪽으로 다녔다. 그리고 아침이나 짧은 공강 시간에 뭘 먹고 싶은지에 따라 학교에 들어오는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얼그레이 쿠키를 집어 먹고 싶으면 정문 쪽으로, 좀 더 식사다운 빵을 아침으로 먹고 싶으면 후문 쪽으로 길을 잡곤 했다.

 

그리고 S는 주로 후문 쪽으로 걸었다. 전공 수업이 후문 쪽 건물에서 많이 열리기도 했고, 그 근처 골목에 베이커리 B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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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골목 안의 빵집



S에게 베이커리 B는 아침 백반집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치아바타나 베이글 샌드위치를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았고, 그 외에도 식사 빵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담백한 맛의 빵을 팔았다. 이곳 빵을 워낙 자주 먹어서 나중에 S의 대학 졸업식에 온 부모님이 빵집 간판을 보고 알아보기도 했다. 베이커리 B는 ‘학교 이름이 붙은 역’이 아니라 ‘동네 이름이 붙은 역’에서 후문까지 이르는 길 위에, 짧은 골목 안에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걸으면 귀여운 폭스바겐 미니버스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카페가 있었다. 카페 내부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서 드라마에도 몇 번 나왔다고 했다. 그곳을 지나 처음 나오는 모퉁이로 꺾어 들어가면 짧은 골목이 펼쳐지는데 이곳은 몇 년간 S의 등하굣길이 되었고 이 길목의 몇몇 지점은 공강 시간의 휴식 장소 혹은 과제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짧은 골목길 안에는 제법 여러 가게가 있었다. 그 작은 골목에 미용실도 있었고, 카페도 있었고, 작은 식당도 몇 개 있었다. 그리고 골목을 이루고 있는 건물은 대개 누군가의 자취방이 있는 빌라들이었다.

 

이 동네 학생들과 자취생들의 끼니 해결을 도와주는 가게 중 하나가 베이커리 B였다. 단층 건물의 한쪽을 차지한, 특별한 꾸밈은 없으나 항상 단정한 인상이었던 작은 빵집. 고학년이 될 때까지 통학을 하다가,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잠시 자취생의 대열에 낀 S에게도 이 빵집은 ‘아침 식사 빵집’ 이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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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잘 지내요? 소금빵


 

자취의 기억은 우울과 코로나와 겹쳐 그리 활기 넘치지는 않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이삿짐을 빼는 날 베이커리 B에 들러 그곳에서의 마지막 빵을 샀다. 버터 프레첼 두 개와 치아바타. 역시나 담백하거나 고소한 식사 빵으로 쟁반을 채웠다. 얼른 방을 비워줘야 해서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S는 고민을 거듭하다 그곳의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동그란 얼굴에 마찬가지로 동그란 안경을 썼고, 청결을 위해 머릿수건을 쓴 분이었다.


“저 여기 살았었는데 학생 때부터 아침으로 이곳 빵을 자주 먹었어요. 오늘 이사 가는데 맛있게 잘 먹었어서 한번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셨구나. 그런데 사실 저희도 곧 영업 그만해요.”

“정말요? 장소를 옮기시나요?”

“아니요. 그런 아니구요. 당분간 가게를 접으려고요.”


이것도 코로나의 여파일까? S는 코로나 이후 학교 상권 근처에서 사라진 가게들을 떠올렸다. 그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빵집이 아니라, 등굣길 기억이 엮여 있는 가게라 사장님의 그 말을 들으니 아쉬운 마음이 정말 컸다. 이사를 가도 여기 다시 놀러 오면 집에 가는 길에 이곳의 빵을 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S는 이곳에서 자주 샀던 빵들을 떠올렸다. 바닐라빈 가루가 콕콕 박힌 크림이 잔뜩 들어 있어 오픈 초기에 인기가 많았던 크림빵, 한 끼 식사도 되는 버터 프레첼. S가 가족들과 같이 먹고 싶어 종종 사 갔던 까눌레와 납작한 무화과 타르트도, 조각으로 된 카라멜 파운드도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다 맛있었다. 여기 빵과 얽힌 추억들을 떠올리니 아쉬움이 한층 짙어졌다.

 

어쩌면 좋은 이유로 가게를 그만하시는 걸 수도 있지만 더 묻는 건 실례였다.


“정말 아쉽네요….”

“네‥, 저희도 그동안 감사했어요.”


사장님은 S가 고른 빵들 위에 서비스라며 빵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그녀가 살까 말까 고민했던 바로 그 빵이었다. 고민하는 게 다 티가 나나보다, 조금 머쓱해졌지만 어쨌든 맛을 궁금해하던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추억의 페이지가 또 하나 접히는구나…. S는 살짝 헛헛해진 마음으로 자취방 이삿짐이 가득한 아버지의 차에 올라탔다.

  

서비스로 받은 빵은 소금빵이었다. 아마 소금빵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기 전이었지 싶은데 어쩌다 보니 S의 첫 소금빵은 이별의 빵이 되었다. 빵은 고소하고 짭짤했다. 이후에 먹어본 다른 빵집의 소금빵에 비하면 버터 맛이 덜 나며 담백했다. 역시 베이커리 B의 빵 맛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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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S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새로운 빵 맛집을 발견했다. 거기서 제일 맛있는 빵 중 하나가 잠봉 햄을 넣은 소금빵이다. 버터가 듬뿍 들어간 빵을 결대로 찢어먹으며 베이커리 B와 그곳이 있던 후문 등굣길 골목을 떠올렸다.

 

가끔 본인은 떠나는 동네에 다른 것들은 떠나지 않고 변함없기를 바랄 때가 있다. 그만큼 그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정이 들었기 때문일 게다. 다시 돌아와서 추억 그대로인 모습을 보고 싶을 만큼. 하지만 시간은 모든 걸 변하게 하고 가게와 건물 같은 건 사람 많고 돈이 빠르게 도는 큰 도시에서 특히나 변하기 쉬운 것들이라 S의 바람을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아쉬워하고 기억으로라도 묶어 놓으려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쓸 뿐이다.

  

S는 그때 먹었던 소금빵을 혼자 속으로 ‘잘 지내요? 빵’으로 부르기로 했다. 시간이 닫아 놓은 페이지를 다시 글로 풀어쓰면서, 기억 속 사물에 붙였던 감정도 조금씩 업데이트를 해 본다. 갑작스러운 이별만으로 남겨놓기보다는, ‘잘 지내요?’하고 물어볼 수 있는 조금 더 여유로운 감정으로. 어쩌면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변했을지도 모르는 지금 그 동네의, 그 사람의 모든 것들에도 잘 지내냐고 물어볼 수 있는 우호적인 호기심으로.

 

비록 자신도 그 동네를 떠난 채로 하는 혼잣말일지라도, 어찌 보면 이것이 지난 시간에 대한 예의 같다는 생각을 하며 S는 커피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한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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