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직면과 돌파: 단 하나의 선택지 - 책 '위로의 미술관'

독자가 다시 써야 할 '위로'라는 키워드
글 입력 2022.09.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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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위로의 미술관>을 읽기 전, 제목과 목차를 보고 짐작했던 내용은 미술가의 생애와 그림에 얽힌 일화 정도였다. 그러나 의외로 이 책을 읽고 특히 집중해서 생각해 보게 된 주제는 따로 있었다. 정답이 없는 미술에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들, 바로 미술가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서였다.


미술가는 자기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삶의 여정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자기 눈에 비친 것을 보고, 몇 번은 의심하더라도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가는 사람들. 그 시간과 경험의 산물이 그림이며 그림은 그 자체로 미술가의 생애와 생각을 드러낸다.


여기서 ‘왜'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환경적으로 유전적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왜'보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이다. 적어도 이 책에 소개된 미술가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가는’ 공통적인 방법은 바로 ‘직면과 돌파'이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너무 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뻔한 과정이 어떤 사람들에겐 생애 자체였다.

 

*

 

19-20세기 파리는 여러 양식과 그에 대한 갑론을박이 중첩하는 장소였다. 여기서 모든 미술가가 필히 직면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212쪽, “쇠라는 단순히 선배들의 장점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사라지는 장면을 그리는 인상파의 방식보다 일상의 장면을 더욱 단단하고 질서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 그리고 그는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과학에서 찾아낸다.”


138쪽, “고갱은 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곳은 가난한 예술가에게 혹독한 도시였다. 결정적으로 1886년 여덟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서 자신의 작품이 아닌 점묘법으로 그려진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가 주목을 받자, 그는 과학과 미술의 접목이라는 개념을 경멸하며 파리를 떠난다.”


쇠라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는, 고갱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고갱은 대신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분위기를 가득 담은 그림을 그려낸다.


제 3자가 보기에 한 가지 현상이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어 현재의 다양한 미술 양식이 태어났다고 이해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쇠라였다면? 고갱이었다면? 혹은 그 시대에 살던 미술가였다고 가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지금 주어진 삶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로 나아갈까? 내 생각을 적당히 의심하고 꾸준히 확신하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혹은 거기에 들일 에너지가 있는가.


위와 비슷한 예시는 미술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몬드리안과 두스뷔르흐는 뜻을 모아 “데 스테일"이라는 그룹을 결성했지만, ‘대각선의 도입'의 여부를 두고 절교한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던 르누아르는 이탈리아여행을 계기로 자기가 그려온 방식이 본질에 벗어났다고 생각하여 고전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한 번 믿었던 것을 어느 시점에서는 의심하게 되어 변화하고, 그 곳에서 다시 길을 찾아나가는 여정에서 직면과 돌파 외에 어쩌면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도 모른다.


미술가에게는 두 가지 재료가 있는 것 같다. 이미 갖고 있는 것과, 여기에 가변적으로 더해지는 주체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 앞으로만 나아가는 삶에서 미술가는 이 두가지를 심각하게 저울하고 다루었다. 그리고 아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직 다짐하지 못했다면, 그래야 할 것이다.

 

*

 

미술사를 선적으로 이해하면 어떤 양식에 속하는 작가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듯 알기 쉽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한 미술가마다 짧은 분량의 글이지만 역사 속에서 교차하는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어떤 미술 양식이 한 개인에게 어떤 경험과 고민의 과정을 통해 태어났는지, 어떻게 미술가가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해나갔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두고 얘기할 때 흔히 미술가의 삶의 사건이나 상처를 기반으로 설명하는 책이 흔하다. 이런 말하기 방식이 반복되면 ‘위로'나 ‘휴식'이란 키워드와 예술을 붙이기도 쉽고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그만큼 좁아질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로'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중요성마저 퇴색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번에 다시 생각해봤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이 전하는 '위로'의 내용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대체로 그 방식은 미술 자체가 지닌 성격에서 비롯하긴 하지만, 어쨌든 예술을 손에 쥐고 놓지 않고자 하는, 함께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과거에 살았던 미술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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