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반쪼가리들이 사는 세상 - 연극 '반쪼가리 자작'

글 입력 2022.09.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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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반쪼가리 자작 포스터s.jpg

 

 

 

연극만이 가능한 재미를 살리다



[국립극단] 반쪼가리 자작 공연사진26.jpg

 

 

공연이 시작되기 10분 전, 보통은 극장 안내방송이 나올 시간이지만 <반쪼가리 자작>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입장한다.

 

광대 복장에, 본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분장을 한 모습이다.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채비를 하듯 몸을 풀며 대사를 읊조리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무슨 일일까 관객이 호기심을 보이는 순간부터 이미 연극은 시작되었다.


<반쪼가리 자작>은 전쟁에 나갔다가 몸이 반으로 갈라진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공연에서 메다르도 역으로 정해진 배우는 없다. 각 배우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광대들이다.

 

이들은 인물에 매여 있지 않기에 자유롭고, 또 친근하게 다가온다. 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필요에 따라 해설자도, 메다르도 자작도, 마을 사람들도 된다. 인물이 되어 대사를 하다가도 광대로 돌아가 작은 소리로 구시렁거리듯 사견을 덧붙이기도 한다.

 


[국립극단] 반쪼가리 자작 공연사진09.jpg

 

 

인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의 전경, 자작이 포탄을 맞아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순간, 그를 수술로 되살리는 순간처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인형이 대신한다. 인형을 사용하면서도 어색하거나 유치하지 않고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반쪼가리 자작>은 이처럼 연극 무대이기에 가능한 연출법을 최대한 활용한다. 광대들은 이야기 전개 중 늘어질 수 있는 부분은 몇 마디 말로 간단하게 압축하고, 재미있는 대사를 주고받을 때면 이야기 속 인물이 되어 열연을 펼친다.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어디에나 있는 여기는, 테랄바


 

[국립극단] 반쪼가리 자작 공연사진19.jpg

 


시놉시스를 봤을 때는 악한 메다르도와 선한 메다르도의 대결이 연극의 주된 내용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이 극은 선과 악 그 사이에 있는 테랄바 마을의 사람들을 더욱 주목한다.

 

반쪽짜리 메다르도는 ‘순수악’으로 마을에 군림하지만, 사실 그의 악행은 특정 대상을 향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반으로 갈라 버린다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모두에게 잔혹한 형벌을 내리는 식이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공평하게 잔혹한 모습은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신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연극을 보며 관객이 더 현실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쪽은 악한 메다르도가 아니라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을 사람들의 비굴한 모습이다.


이들은 메다르도가 오기 전에는 그에게 어떻게든 아부를 떨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얻으려고 다투다가, 성치 못한 몸으로 돌아온 메다르도를 본 후에는 험담하기 바쁘다. 메다르도가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공포정치를 할 때도 힘을 합쳐 그를 몰아낼 방법을 생각해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잘 보여서 콩고물을 받아먹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이들에게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안위가 보장된다면 누가 마을을 다스리든 상관없다.

 

 

[국립극단] 반쪼가리 자작 공연사진10.jpg

 

 

마을 사람들의 이러한 면모는 선한 메다르도가 나타났을 때 극대화된다. 선한 메다르도에게 안도하는 것도 잠시, 시간이 흐르자 악한 메다르도보다도 선한 메다르도를 더 성가셔하기 때문이다. 악한 반쪽 아래에서는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약자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을 수 있지만, 선한 반쪽 아래에서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마주해야 하기에 더 괴롭다.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두 메다르도를 없앨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한 사람이 선과 악으로 나뉘었다는 비현실적인 설정부터 그 아래에서 우스꽝스럽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사람들까지 <반쪼가리 자작>은 더할 나위 없는 한 편의 풍자극이다.

 

연극의 배경인 테랄바를 설명하며 ‘어디에나 있는’ 마을임을 강조하는데, 그 말의 의미를 연극을 보면서 알게 된다. 절대악과 절대선을 압도하는 것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메다르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비극적이고 야만적"으로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이 극에서 비극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는 따로 있다는 것을 연극을 보는 모든 사람이 안다.

 

 

 

온전함이란 무엇인가


 

[국립극단] 반쪼가리 자작 공연사진24.jpg

 


극에서는 악한 메다르도도, 선한 메다르도도 온전하지 못한 반쪼가리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면 반으로 갈라지지 않은 인간은 과연 온전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테랄바의 주민들은 반으로 갈라지지 않았지만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존재다. 온전함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록 몸은 반쪽뿐일지라도 순수한 선 또는 악으로만 이루어진 메다르도가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온전한 인간에 가깝게 느껴진다.


게다가 연극을 보다 보면 반쪽짜리 메다르도가 처음부터 악한 인물이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사실 반으로 갈라져 가까스로 테랄바에 도착한 메다르도 자작은 처음에는 절대악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라기보다 패잔병에 가까운 모습이다. 별다른 말도 행동도 하지 않은 그를 괴물이라 부르기 시작한 건 마을 사람들이다. 좌절감과 수치스러움에 휩싸인 메다르도에게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진짜 아들’을 데려오라며 역정을 낸다. 그런 환경에서 반쪽짜리 메다르도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했을까.

 

반대로 전쟁터에 남겨진 또 다른 반쪽 메다르도는 종교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 공동체의 도움으로 몸을 회복하고, 다양한 종교의 교리에 따라 심신을 수련한 결과, 선한 메다르도로 거듭난다. 어쩌면 똑같은 반쪽을 선과 악으로 나눈 것은 포탄이 아니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국립극단] 반쪼가리 자작 공연사진18.jpg

 

 

실제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순수악을 만들어내는 것도, 순수선을 만들어내는 것도 불완전한 인간의 행동과 판단이라는 게 선명해진다.

 

애초에 메다르도가 참가한 전쟁 역시 그렇다. 메다르도는 국왕 폐하에게 승리를 안기겠다는 당찬 포부로 전쟁터에 향하지만, 막상 도착해 가까이서 본 전쟁터는 선과 악의 개념이 흐릿하다. 그곳은 그저 상대방을 무작정 죽여야 하는 참혹한 공간이다.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위해서 반대편을 악으로 상정하고 죽이려 든다.

 

이렇듯 필요에 따라 손쉽게 선과 악이 전복되는 세상에서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온전해진' 메다르도라 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메다르도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는 결말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모든 인간은 선과 악이 뒤섞인 채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모두 온전하지 않은 반쪽짜리들이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 누군가를 해치기도 하고, 반대로 나만을 위해 한 일이 생각지 못하게 타인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의사들은 반쪽 메다르도를 살렸지만 그는 폭군이 되었고, 완벽한 남편을 맞이하겠다는 파벨라의 욕망이 메다르도를 다시 하나로 합쳤듯이.

 

우리의 몸은 메다르도처럼 반으로 갈라진 적이 없지만, 그 속에서 선과 악은 매순간 다투며 알 수 없는 결과로 우리를 데려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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