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늦은 가을. [영화]

글 입력 2022.09.0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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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어디쯤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가을 영화보다 더 쓸쓸하고 외로운 영화이다.

 

만추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인번호 2537번의 애나와 사랑이 필요한 여성에게 적당한 사랑을 주는 훈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도 훈은 적당한 사랑 때문에 애나가 탄 버스 안으로 도망쳐 들어온다.

 

급하게 쫓기는 탓에 당장 돈이 없는 훈은 애나에게 돈을 빌린다. 그를 바라보는 웃음기 없는 애나의 표정에 훈은 당황한 듯하지만, 그간 여성의 비유를 맞춰온 훈은 돈을 갚고 찾아오겠다며 애나의 손목에 큰 시계를 채워준다.

 

만추의 전체적인 영상의 컬러는 잿빛이다. 이런 잿빛이 훈과 애나의 마음속에 공존하는 공허함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우선 애나는 7년의 수감생활 중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 휴가를 받는다. 그렇게 돌아온 시애틀은 7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어색한 시애틀의 거리는 애나가 도망치기에 부족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어쩌다 버스 안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과 그 대가로 시계를 건네받은 사람이 키스를 나눌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같은 상황에 훈이와 애나의 캐릭터 성을 투여하면 납득이 된다.

 

먼저, 훈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마음이 텅 빈 여성을 위로하며 돈을 번다. 많은 여성의 마음을 채워주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텅 비어있었다. “나한테 이러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와 비슷한 맥락으로 애나에게 관심이 갔을 것이다. 자신의 수려한 미모와 멘트로 넘어오지 않는 여성은 애나가 처음이었으니. 이보다 이성에게 관심이 가는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애나가 수감하게 된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애나는 남편을 죽인 살인자이다. 감옥에서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며 그저 시간만 흐르던 날들 가운데 어머니의 부고로 3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세상 위에 걷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나를 반겨줄지, 애나를 제외한 세상은 변했고 홀로 과거에 머물러있다. 이럴 때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알고 지냈던 친구, 어색한 가족이 아닌 완벽한 초면인 사람이다.

 

일회용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대로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은 일회용일 테니. 그 가운데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만큼은 나의 정신, 나의 신분, 나의 위치를 잊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어떤 무거운 짐도 한순간은 놓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껏 웃을 수 있고, 한껏 울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늦은 가을에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3일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다. 첫만남에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할 것 같은 상상을 펼친다. 심지어 애나와 훈이는 서로의 빈 마음을 채우준 대상이기 때문에 3일이라는 시간이 얼머나 값지게 느껴졌을 것인가. 절대 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일이라는 시간 때문에 그들의 감정은 안개처럼 언제 걷힐지 모르고, 뿌옇기 때문에 더욱 아련하고 긴 여운을 준다.

 


[황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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