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 문외한이 클래식을 즐기는 방법 - 힉엣눙크 갈라 콘서트 [공연]

여기, 그리고 지금 클래식 음악의 창작의 역사를 함께하다.
글 입력 2022.09.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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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 엣 눙크. 처음 들었을 때 참 발음이 예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어는 발음 뿐 아니라 뜻도 참 예쁜 단어였다. 힉 엣 눙크는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은 ‘지금 이곳의 축제’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조금 더 자세히 풀이해보자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도록 일정한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비정형성이 특징인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클래식이란 무엇인가. 고전적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서양의 전통적인 작곡 기법에 의한 음악을 말한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클래식 음악은 그를 해석하고 재현하는 것이 주축이 되는 장르이지만, 현재에도 지속해서 변화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은 창작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다.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은 일 년에 한 번씩 그 창작의 현장을 관중들에게 보여준다. 전 세계의 클래식 신곡과 가능성 있는 젊은 음악가를 추천하는 이 페스티벌은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타 장르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결합하는 현장을 발굴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비정형성과 무경계성은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이 가지는 여타 음악 축제와의 차별점 그 자체이다.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은 언제나 창작의 역사를 주목하는 음악 축제로서, 클래식 음악을 21세기의 환경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선구자의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은 2022년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았다. 지난 8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총 7개의 메인 행사와 16개의 사전 이벤트가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 등에서 열렸다. 비올리스트 이화윤의 리사이틀로 시작된 페스티벌은 임주희 피아노 리사이틀, 갈라 콘서트, 레라 아우어바흐 음악회를 통해 꽃을 피웠다. 그리고 9월 6일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세종솔로이스츠의 연주가 이어졌다.


이처럼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은 서양 클래식 음악의 생생한 현장을 들여오기도 하면서 역으로 한국의 신선한 음악가를 세계에 소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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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힉 엣 눙크 페스티벌>에서 단연코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갈라 콘서트를 감상했다. 8월 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갈라 콘서트는 세종솔로이스츠와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 뉴욕 필하모닉의 악장 프랭크 황, 첼리스트 사라 산암브로지오가 함께 무대를 꾸몄다.


세종솔로이스츠는 미국 CNN이 세계 최고의 앙상블 중 하나라고 극찬한 현악 오케스트라이다. 1994년 강효 줄리아드 음대 교수가 창설하면서 그 역사를 시작하였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등 120개 이상의 도시에서 60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가졌다. 세종솔로이스츠는 뛰어난 기량으로 전 세계에서 그 응집력과 음색을 인정받는 앙상블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는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 다수 지명된 바 있는 실력자답게, 최정상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이다.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접근 방식으로 정통 레퍼토리를 해석하거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해 내는 일에 적극적인 필립 퀸트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협업하기도 한다.


첼리스트 사라 산암브로지오는 198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동메달을 수상했고, 미국, 유럽, 중동 등을 넘나드는 순회공연을 개최하였다. 사라 산암브로지오는 나움버그 실내악 상을 받은 에로이카 트리오의 창단 멤버이다. 그는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2015년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악장을 맡고 있는 프랭크 황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세인트폴 챔버 오케스트라 등 전 세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또한 프랭크 황은 그래미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잉 콰르텟의 제1 바이올린 주자였다. 그는 이스트만 음악학교, 라이스 대학교의 셰퍼드 음악학교, 휴스턴 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연출가 정구호를 비롯하여 한국의 퍼커셔니스트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지헤, 김은혜, 한문경, 김범태가 함께 무대를 꾸몄다.


갈라 콘서트는 정구호가 연출하고 정지헤, 김은혜, 한문경, 김범태, 사라 산암브로지오가 연주하는 작곡가 탄둔의 <엘레지: 6월의 눈>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필립 퀸트가 이끄는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가 특별한 편곡으로 준비되어 바이올린의 비르투오지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는 프랭크 황이 리딩하는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갈라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페스티벌의 중심에 서 있는 세종솔로이스츠와 탁월한 역량의 솔리스트들이 만난 무대는 ‘갈라 콘서트’에 부합하는 화려함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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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자는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못하다. 클래식은 막연하게 나와 먼 곳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껏 격식을 차려야 할 것만 같은 우아한 장르라는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쉽게 시도할 용기가 생기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클래식은 유명한 작곡가들의 유명한 노래 정도만 짧게 기억할 수 있다. 대학 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클래식의 이해라는 수업 때는 비슷하게만 들리는 곡을 구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으니 이번 리뷰에 전문적인 감상을 적기에는 한참 부족하기만 해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릴 적 언젠가 들었던 뉴에이지 작곡가 양방언의 ‘프론티어’ 만은 꾸준히 좋아하고 있으니,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니 클래식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힉 엣 눙크 페스티벌>에도 문외한의 순수한 감상이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탄둔 <엘레지: 6월의 눈>



첼리스트 사라 산암브로지오와 퍼커셔니스트 정지혜, 김은혜, 한문경, 김범태가 함께 만든 무대 <엘레지: 6월의 눈>은 정말 신선한 무대였다.


커다란 북, 징 그리고 꽹과리 등의 다양한 타악기의 소리도 흥미로웠지만, 동양적인 타악기와 첼로 연주가 만나 전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가장 신선했다. 단순히 동서양의 조화라고 축약할 정도가 아니라, 정말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것 같아서 무대에 집중하게 됐다. 종이를 찢는 소리, 돌과 캔의 소리처럼, 악기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소리가 더해진 무대는 점점 풍성해졌다.


<엘레지: 6월의 눈>의 아티스트들은 웅장한 소리의 강약 조절을 매우 섬세하게 해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악기를 연주하다가도 아주 큰 소리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중 아주 작은 소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관객들 역시 숨을 죽여야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 무대의 일부분에 포함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객들의 침묵으로 무대가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엘레지: 6월의 눈>은 작곡가 탄둔이 천안문 사태 이후 작곡을 시작하여 2년 만에 완성한 곡이다. 이 곡은 13세기 중국 극작가 관한칭의 작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젊은 여성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처형되자 세 가지 자연현상이 그녀의 결백함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나아가, 이 곡은 연민과 순수, 미와 암흑을 노래하면서 모든 희생자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이와 같은 배경지식이 충분했다면, 나 역시 곡의 서글픔을 잘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필자는 그저 소리의 질감과 강약 조절으로부터 전해지는 웅장함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이 부분이 스스로 좀 아쉬웠다.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퀀트와 세종솔로이스츠가 함께 한 무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는 바이올린 연주의 매력을 한껏 증폭시킨 무대였다.


세종솔로이스츠의 한 가운데서 솔리스트가 연주를 선보인 만큼, 바이올리니스트의 선율이 상당히 인상적인 무대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선율이 네 가지 계절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차례로 눈앞에 선사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앙상블과의 조화로운 연주는 마치 계절풍처럼 강렬했다.


피아졸라는 자신의 악단인 ‘퀸테토 누에보 탱고’와의 수많은 공연과 음반 녹음을 통해서 탱고의 부흥기가 도래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이 곡에서도 탱고의 선율을 찾아볼 수 있다. 탱고를 훌륭하게 연주한 필립 퀀트와 세종솔로이스츠의 연주는 무대에 생생한 감동을 불어넣었다. 바이올린이 정말 많은 구성이었는데, 하나하나의 선율이 합쳐져 조화로운 연주를 완성하면서도 각자의 특색이 살아있는 것 같아 인상 깊었던 무대였다.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프랭크 황이 리딩하는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세종솔로이스츠의 매력을 담뿍 담아낸 무대였다. 호흡이 척척 맞는 연주는 아티스트의 역량과 연습량을 가늠할 수 있게 했고, 무대를 한껏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현악기의 부드러움만으로 선율을 풍부하게 표현한 무대는 섬세하다가도 강렬했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마치 댄서들의 칼군무처럼 일제히 움직이는 활이 시선을 사로잡는 무대였다. 일제히 위아래를 가르는 활이 개개인별로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모습은 연주자들이 각각 자신의 느낌대로 곡을 느끼며 연주하고 있다는 게 잘 느껴져서 감동을 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완성한 무대라는 게 뭉클했던 이 무대를 통해 앙상블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차이콥스키가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작곡했다는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정말이지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4악장이 모두 다른 매력을 가진 곡이었다. 개인적으로 1악장은 우아한 느낌이 강했고, 2악장은 부드러웠다. 3악장은 웅장한 느낌이었으며 4악장은 강렬한 매력이 돋보였다. 각기 다른 매력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아티스트들 덕분에 인상 깊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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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클래식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고 창조해내었다고 한들 그 특유의 진중하고 세련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선뜻 가까이할 수 없었던 무거운 분위기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단정한 옷을 갖춰 입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 무대를 감상하는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마음으로 연주하는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이 무대로 소통하는 건 클래식 역시 다른 음악 무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무대를 마치고 뿌듯한 표정을 짓던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멋진 연주에 보답하는 박수갈채는 내가 느껴본 적 없던 색다른 장르의 아름다움이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클래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무대에서 선보인 극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고 있었다면 보다 풍부한 감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더불어, 멋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이 치니까 쳤던 박수가 실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상당히 부끄러웠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와 <세레나데>의 악장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이 박수를 쳐서 나도 지금 박수를 치는 줄 알고 힘껏 박수를 쳤다. 그런데 원래는 악장의 사이사이마다 박수를 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 이 자리를 빌려 무대의 흐름이 깨졌을 아티스트들과 일부 관객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그럼에도 태어나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클래식 무대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좋은 추억이다. 그것도 클래식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힉 엣 눙크 페스티벌>의 화려한 갈라 콘서트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창작의 역사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내년에도 개최될 <힉 엣 눙크 페스티벌>에서 더욱 다양한 무대를 즐기고 싶어졌다.


클래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게도 즐거운 추억을 선사해준 <힉 엣 눙크! 갈라 콘서트>와 아티스트들에게 감사드린다. 소중한 경험을 통해 보다 폭 넓은 문화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마음가짐을 정비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막연하게 멀리하게 만들었던 어떤 점들은 때로는 온전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워갈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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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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