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를 닮은 너에게

나와 닮은 친구인 너에게 전하는 이야기
글 입력 2022.09.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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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일은 어려워. 술자리에서 한두 번 스쳐 지나가는 만남을 넘어 깊게 친해지는 과정은 갈수록 어색해지고,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도 좋은 감정만 주기는 더더욱 어렵지. 아마 너도 끝없는 관계에 대한 고민에 대해 나와 의견의 결을 같이 할 거라 생각해 –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이니까.

 

공통점이 많은 사람과는 친해지기 쉬워.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몇 개의 얕은 공통점을 기반으로 상대방을 속단하기 쉽다는 말이 되기도 해. 처음 너와 친해졌을 시절의 내가 생각나. 그때의 나는 나와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신이 났어.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사람의 차이점을 잘 몰랐었던 것 같아.

 

같은 영화의 같은 장면을 좋아해도 우리는 매우 다른 사람일 수 있는데 말이야.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같은 노래를 좋아했어도, 우리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야.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지나, 이 영화를 좋아한다며 대화하기 시작한 시간쯤의 너와 나는 꽤 비슷한 사람으로 성장해있던 상태였어.

 

대부분의 경우에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데에서 그치지만, 취향에 관해 이야기할수록 나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네가 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때부터 너는 내게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넘어 나와 ‘비슷한’ 친구가 되었어. 비슷한 것을 좋아해서 친해지게 된 너에게서 나는 나를 발견하게 된 거야. 그리고 그건 네가 내게 준 매우 신기한 경험이야.

 

너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나와 같은 구석이 있을 거라는 내 확신에 가장 큰 근거가 되어 준 사람이야. 하지만 분명 너와 나 사이에는 다른 점들도 존재해. 그리고 그 다른 점들은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스며들어 나를 성장시켰고. 삶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던데, 정말 그런 것 같아. 너와 내가 친해진 것도, 지금처럼 좋은 친구가 된 것도 정말 하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까 말이야.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삶은 예측불가능하고 유한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걸 요즘 더욱 실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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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내가 너보다 충동적인 사람이기도 하며, 때때로 너는 나보다 복잡한 사람이 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언젠가부터 우리의 우정에는 대화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자리하게 되었어.

 

너와 나눈 대화들은 가끔 나에게 생각지 못한 해답을 제시하기도 해. 처음 친해지기 시작했던 때 이후 몇 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들을 겪으며 비슷한 크기만큼 성장했어. 그 시간 속 우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다음번에 만나면 요즘 느끼는 인간관계에서의 속도에 대해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관계에서 속도와 온도가 알맞은 데에서 오는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느끼는 중이거든. 낯간지러워서 만나서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너와 나 사이의 일정한 거리감과 미지근한 온도가 좋아.

 

우리는 좋은 친구지만 분명 우리 사이에는 서로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하고, 서로 너무 기대하지도 너무 방임하지도 않을 수 있는 아주 적당한 온도. 확신은 아주 무서운 거라고 하지만 너와 나는 지금 같은 속도와 온도로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네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궁금해. 내가 변하는 만큼 너는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변해있을까. 어쨌든 그 종착점에는 우리의 행복이 있기를 바라. 앞으로 우리가 겪을 일들과 변할 우리의 모습들이 기대되는 동시에 조금 무섭기도 해.

 

그래도 우리가 너무 많이 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같은 영화의 같은 장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친해질 결심을 했던 때의 기억이 너무 많이 빛바래지 않았으면 좋겠어. 비밀인데 나와 닮아있는 너라서 나는 유독 더 너의 행복과 사랑을 응원하게 돼.

 

영화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너와 내 관계는 정말 소중한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너와 하는 대화들에서는 항상 다음에 할 이야기를 남겨놓게 돼. 몇 달쯤 뒤의 너와 몇 달쯤 뒤의 내가 궁금해서 말이야. 나와 닮았지만 나와는 또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을 K야. 너는 소중하고 너와의 대화는 특별해. 조만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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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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