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간결함 뒤에 숨겨진 다채로움을 지닌 공연 - 판소리극 '적벽'

적벽대전이 이루어지는 그 공간 속으로
글 입력 2022.09.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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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적벽 (8.20-9.29) 포스터.jpg


 

‘적벽’이라는 공연에 대해 관심을 가진 지는 사실 좀 되었다. 한창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다니던 재작년, 색다른 장르의 공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혜성처럼 나타났던 공연이 바로 ‘적벽’이었다. 앞서 인상 깊게 보았던 ‘낭랑긔생’이라는 공연을 통해 정동극장의 창작 공연들에 관심이 있었기에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관람을 고민하던 중 나의 대학 생활 중 가장 정신없던 학기가 시작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공연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올해 적벽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이러한 일련의 과정동안 쌓여 있던 나의 아쉬움은 곧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전 시즌처럼 모 공연장인 정동극장에서 진행되기를 바랐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극장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공연을 모두 보고 나온 후 무대 구성에 만족했기 때문에 공연장의 이전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에 현대 무용을 가미한 ‘적벽’은 이름 그대로 중국의 삼국시대 중 일어났던 ‘적벽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음악인 판소리로 중국의 역사를 읊으며 현대의 무용을 곁들인 공연이라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이 신선한 조합은 나와 같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것을 무대 위에서 절묘하게 조합하여 선보였다. 지금부터 적벽을 관람하며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을 위주로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좁은 무대가 광활한 전쟁터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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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처음 무대를 마주했을 때는 조금의 실망감과 동시에 궁금증이 피어올랐던 것 같다. 생각보다 무대 사이즈가 작았고, 온통 흰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무(無)’의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 안에서 어떻게 ‘전쟁’을 표현하고 군무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듦과 동시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기대감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막이 올라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은 완벽히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적벽의 배경은 주로 흰 벽에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무대의 앞쪽 한 켠 기둥에는 배우들이 읊고 있는 적벽가의 구절이, 무대 한 가운데에는 장면의 배경이 되는 영상이 상영되는 방식이었는데, 영상의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고 간결했기 때문이지 오히려 극 중 일어나는 사건에 군더더기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허전한 무대를 채우는 앙상블들의 군무와 부채라는 작은 소품의 활용도에 있었다. 무대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의상 또한 간결한 편이었는데, 이렇듯 배경과 의상을 간소화 했기에 그들의 움직임과 손에 쥔 부채에 더욱 시선이 가고, 자연스럽게 공연의 핵심이 되는 요소들을 통해 극에 몰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었다.


극 중 ‘부채’라는 요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 서로를 향해 겨눈 검이 되기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마법봉 같은 요소가 되기도 한다. 관객이 상상하기에 따라 배우들이 손에 쥔 부채는 어떠한 모습으로도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극장의 매력이자 내가 소극장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적벽은 가히 상상력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을만한 공연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던 무대는 순식간에 동남풍이 불어오는 신비한 공간이 되고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 결의를 맺던 커다란 나무 아래 복숭아 동산이 되기도 하며 수십만의 대군들이 전투를 벌이는 공간으로 변모하기도 한다.그렇기에 이번 공연의 무대 구성과 소품의 활용도가 톡톡한 매력 포인트가 되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키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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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채우는 또다른 요소가 있었다. 라이브 밴드과 판소리의 조합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들었던 어떠한 이질감이 있었는데, 바로 라이브 밴드가 투명한 유리 너머로 너무나 잘 보이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막연히 판소리 공연에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던 국악기 위주의 밴드 구성도 아니었기에 더욱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온 후, 이 조합은 매우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적벽은 완전한 전통 공연을 아니다. 어떻게 보면 퓨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큼 현대의 요소들이 많이 가미되어 있고, 그것이 이 공연을 새롭게 느껴지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인 것이다. 라이브 밴드가 이뤄내는 현대의 가락과 배우들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판소리는 무대 위에서 놀라울 만큼 절묘하고도 아름답게 조합되어 관객석에 다가왔다.


이러한 조합을 완성시키는 방점은 ‘군무’에 있었다. 무대의 면적에 비해 꽤 많은 인원으로 이루어진 배우들은 마치 아이돌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완벽하고 신박한 배치를 통해 군무를 완성시켰다. 그들은 마치 무대 위에서 한 몸 같았고, 일종의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했다. 그들이 다 함께 부채를 펼치면 정말로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에 당도한 것만 같은 느낌 또한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칫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장르를 이 두 조합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밴드의 구성원들은 몇 장면에서 가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극 안으로 녹아 드는가 하면, 마치 그들만의 주파수를 가지고 소통하는 것처럼 라이브 밴드와 배우들은 소리를 통해 화합하며 극의 서사를 이끌어 갔다. 이러한 요소들이야말로 적벽이 ‘판소리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음에도 여러 관람객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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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도 내게 판소리와 현대무용이라는 장르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평소 잘 접하던 장르가 아니고 배경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이 두 조합이 메인이 되는 공연을 선뜻 보러갈 결심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작년 나를 망설이게 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공연을 본 지금, 절대 후회하지 않을 귀중한 경험이 되었고, 앞으로 내가 향유할 공연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나는 적벽의 배경을 알고 있지도, 국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무용에 대해서도 무지한 편이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고, 낯선 요소들의 조합이었지만, 그것들이 너무나 다채롭고 자연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에 극을 보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간결하기 그지 없지만 어떤 공연보다 다채롭다, 나는 적벽을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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