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름답고도 무서운 '데이터의 바다' - 히토 슈타이얼 [전시]

미디어 작가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 '데이터의 바다'에 뛰어들다
글 입력 2022.09.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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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 글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팬데믹 상황과 연결 지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 작가이다. 또한 예술, 철학, 정치 영역의 경계를 아우르며 우리가 누리는 기술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는 시각예술가이며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디지털 기술 자체에 대한 미디어 전시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제작지원을 받은 작업 <야성적 충동>(2022)이 최초로 공개된다는 사실에 따끈따끈하게 살아 있는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한 마디로 이 전시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20점이 넘어가는 작품 수와 20분에서 한 시간가량의 영상의 길이가 한몫을 하기도 하지만 순환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부터 시작해 정치, 전쟁, 인간과 사회에 걸쳐 폭넓고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시를 요약하자면 오늘날 현실과 다름없어진 디지털 기술 사회를 성찰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의 바다는 총 다섯 전시실로 이루어진다.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지만 영상이라는 매체를 선택해 만들어진 이유가 있는 작품들인 만큼 기회가 된다면 직접 방문해 보는 것을 제안하고자 몇 점만 이야기해 보려 한다.

 

 

 

[1/5] 데이터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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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시실에서는 오늘날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SNS에 사진을 업로드함과 동시에 빅데이터는 쌓이고 이는 분석과 재조정을 거쳐 다시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팬데믹의 상황은 이를 더욱 일상적으로 만든다.

 

"인공 우둔함(artificial stupidity)"는 그녀가 인공지능을 풍자하기 위해 쓴 용어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계상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대해 경계할 것을 제안한다.

 

<깨진 창문들의 도시>(2018)은 창문을 형상화한 평면 패널, 그리고 벽에 부착된 문구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깨진 창문 하나가 다른 창문들까지도 깨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깨진 창문 이론'을 반영하여 깨진 창문을 가려 범죄율을 낮추려는 비영리 기관의 멤버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한 편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창문을 깨는 소리를 녹음하여 데이터를 쌓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식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안 기술을 만들고자 하는 작업자들의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창문이 깨지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활용하여 다른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영상이 마주 보고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2/5] 안 보여주기 - 디지털 시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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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은 마치 어릴 적 본 교육 비디오 영상들이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5장으로 구성된 게릴라 매뉴얼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기반의 감시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가시성의 장에서 '안 보일 수 있는 방법'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자기 PR', '인플루언서'의 시대에 '안 보이기'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잊힐 권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주제였다. 털면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 카메라 기술, 해상도의 발전, 구글맵에 대한 언급은 사각지대란 없는 감시 사회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화면에 잘 보이고 싶어도 안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한 데이터들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4장에서 언급하는 안 보이게 되는 방법에는 불량 화소 되기, 국가의 적으로서 실종자 되기, 은폐되기 등이 언급된다. 잡음으로 간주되어 사라지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3/5]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


 

기술 자체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기술은 인간을 마냥 이롭게 하는가?'일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 알고리즘, 사물인터넷, 로봇 공학, 3D 시뮬레이션 등 오늘날의 첨단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만 하는지에 대해 작가는 위험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쟁과 감염병에서 기술은 우리를 과연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수없이 쌓여가는 데이터의 바닷속에 우리를 가둬 조정하고 심지어 착취할 것인가. 나아가 그는 이런 시대에서의 미술관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영상을 단순히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며 주제와 연결성을 가지는, 그래서 미디어 아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데이터 사회에 대한 성찰을 직접 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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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식이 가장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경호원들>이다. <경호원들>에서는 전쟁과 동떨어져 있다고 인식되어 온 미술관에서 전쟁과 흡사한 모습을 찾아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의 두 경호원과의 인터뷰를 담은 이 작품은 마치 전시 상황인 것처럼 총을 겨누며 전술을 보이는 등의 장면으로 전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과 감시는 현실만이 아닌 미술관에도 있다. 미디어 속 꾸며진 비현실이 아닌 사회와 깊이 연결된 곳으로서의 미술관에 대한 그의 시선을 보여준다.

 

 


[4/5] 유동성 주식회사 - 글로벌 유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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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바닷속에서 정보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전 지구적 네트워크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모든 소스들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이미지와 데이터로 흘러 다닌다.

 

만약 업로드된 사진을 누군가가 이리저리 퍼나르고 복사된다면 그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캡처되고 재생산된 사진은 저화질로 변할 것이다. 데이터의 물질성보다 빠른 유통, 즉 퍼나름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유동성 주식회사>는 이런 순환주의를 물의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다른 전시실에도 앉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이 작품에서 특별히 길게 앉아 관람할 수 있도록 커다란 빈백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빈백에 누워 유동적인 금융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물에 누워 저항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5/5] 기록과 픽션


 

5 전시실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작가의 초기 다큐멘터리적 영상 실험을 전시하고 있다. 기록과 픽션, 진실과 허구에 대한 주제로 그의 시전의 출발점을 볼 수 있었던 곳이다.

 

당시의 건설 현장, 축제와 시위 현장, 공동묘지 등 다양한 장소들을 등장시켜 여느 역사학자나 비평가에 못지않은 시선으로 현실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정상성 1-X>에서처럼 정치적으로 배제 당하는 '빈곤한 이미지'의 유대인, 흑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불합리를 강조한다.

 

 

 

바다를 벗어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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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곳곳의 설명과 안내가 없었더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어 개인적으로는 힘에 부치는 전시였다. 그럼에도 또 한 번 보고 싶은 전시였다.

 

특유의 위트와 날카로움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음은 확실히 전달받았다. 두 번째 관람에서는 물처럼 순환하는 데이터가 아닌 히토 슈타이얼처럼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태도로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머리라도 물 밖으로 내밀어 보는게 어떨까란 마음으로.

 

전시 끄트머리에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많은 것을 공유 받았다. 영상보다 설명을 통해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그 주제 때문도 있겠지만 내가 이 정보의 바다 깊은 곳에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물고기는 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히토 슈타이얼의 시선이 대단하면서도 압도적으로 느껴진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과연 조금 떨어진 미래에 우리가 가진 기술에 대한 경계가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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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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