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멈출 수 없음 - 제22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글 입력 2022.08.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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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OTT 서비스 왕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다. 점점 비싸지는 티켓값에도 굳이 집 밖으로 나가 영화관까지 간다. 왜 우리는 굳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까. 필자는 그 이유로 “멈출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종종 영상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하거나, 혹은 며칠에 걸쳐 본다. 그러나 영화관에서는 다르다. 우리는 꼼짝없이 약 두 시간 동안 영화만 볼 수밖에 없다. 취향이나 재미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일단 영화를 선택했으면 중간에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고 고개를 숙이며 기어가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영화관을 나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무조건 결말까지 지켜봐야 한다. 운이 좋다면 휘몰아치는 매력에 흠뻑 취하지만, 취향에 맞지 않으면 마지막까지 괴로워하며 제어하지 못하는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관만의 매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힘을 극대화하는 행사가 영화제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전 정보 속에서 영화를 골라야 하며, 특히 단편 영화 모음 부문에서는 취향이 맞은 작품과 아닌 작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버텨야 한다. 보고 싶은 작품을 연달아 보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관으로 달려야 하거나 상영 시간표가 겹쳐 양자택일해야 한다. 원하는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작품을 일시 정지할 수 없고 우연히 다양한 작품을 만날 기회는 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다.

 

 

 

서울국제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


 

사진_포스터_네마프2022.jpg



국내 유일의 영화와 전시를 아우르는 뉴미디어아트 대안영화제인 서울국제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영화, 전시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른다.

 

이번 제22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이 ‘자연이 미디어다: 작용’을 주제로 메가박스 홍대, 서울아트시네마, 서교예술실험센터, 언더독뮤지엄 등에서 개최되었다.

 

제22회 네마프에서는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주류 영화, 영상예술의 경우 인간 중심의 시선이 가득하기에 이를 '자연'이라는 넓은 개념으로 확장해 모든 존재들에 탈권위, 역동적인 관계로 시선을 넓혀 관객들과 질문을 나누고자 했다.

 

필자는 <글로컬 부문Ⅰ: 잿더미 위 이야기, 사회 속 인간을 탐구하다>와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Ⅱ: 지형도는 오류, 불은 치유, 영화는 연기>를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우연히 만났던 몇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로컬 부문Ⅰ: 잿더미 위 이야기, 사회 속 인간을 탐구하다


 

루프.jpg


 

아흐마드 살레의 <밤 (Night, 2021)>은 전쟁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보여준다. 마을은 전쟁으로 인한 먼지가 쌓여 황폐하다. 밤은 파괴된 마을을 잠들게 하지만,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아이를 찾으며 잠이 들 수 없다. 밤은 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속여 잠들게 한다.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쟁으로 인해 잠을 잘 수 없는 이들이 떠오른다. 작은 공간에 웅크려 누운 인물들의 모습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음에도 참혹하다.

 

파블로 폴레드리의 <루프 (loop, 2021)>는 정형화된 사회 속 인간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이 사회에서 각각의 인간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이 사회에서 각각의 인간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이 사회에서 각각의 인간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이 사회에서 각각의 인간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라는 재치 있는 서술이 흥미로운 <루프>는 무한한 루프에서 반복에 저항한 두 인물은 마지막까지 다시 루프화되지 않기 위해 도망친다. 그들은 도주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반복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뒤쫓는 경찰이 다시 그들을 원상태로 돌린다. 현대 우리의 삶을 유쾌하게 풀어내었다.

 

아이스 카르탈의 <아이 고타 룩 굿 포 더 아포칼립스 (I gotta look good for the apocalypse, 2021)> 역시 위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의성이 잘 담겼다. 2020년 팬데믹 이후 가상 세계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아바타들처럼 우리가 “실제”라고 인식하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 묻는다. 즉, 우리가 실제로 겪는 위기는 팬데믹이 아니라 점차 우리 삶의 현실감각 상실이 된다.

 

영화를 볼수록 영화 내 “실제”가 무엇인지 경계가 흐려지며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현실감각 상실을 함께 겪으면서 관객은 섬뜩함을 느낀다.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Ⅱ: 지형도는 오류, 불은 치유, 영화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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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Ⅱ에서는 오싹한 작품들이 돋보였다. 크리스토발 레온과 호아킨 코시냐의 <뼈 (The Bones, 2021)>는 한 소녀가 인간의 시체를 사용하여 의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조각으로 분리된 시체 조각은 여러 형태로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된다. 특히나 의식에 등장하는 시체는 칠레 건국의 중심인물인 디에고 포탈레스와 하이메 구스만이다. 스톱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마찬가지로 크리스토발 레온, 호야킨 코시냐와 나이스 아탈라의 작품인 <루시아 (Lucía, 2007)>와 그 후속작 <루이스 (Luis, 2008)> 역시 비슷했다. 루시아는 루이스와 사랑에 빠진 여름을 기억하는데 침실 속 가구가 부서지며 벽에는 어두운 빛으로 점점 뒤덮이고 창백한 루시아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어린아이가 속삭이는 독백으로 이어지는 두 작품은 단편임에도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이다. 공포 영화에 면역이 없다면 버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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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늘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주는 당근과 채찍이다. 기대한 작품에 배신당하면서도 무심코 본 작품에서는 우연한 행운을 얻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향에 맞지 않아 슬퍼했었고, 부천국제영화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여 오히려 즐길 수 있었다.

 

이번 22회 네마프는 그 둘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은 기분이 든다. 식견이 부족해 차마 말을 얹을 수 없는 작품에서는 혼란스러웠다가 또 우연히 발견한 재미에 만족하여 다시 다음 영화를 고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제만의 ‘멈출 수 없는’ 매력을 즐길 수 있었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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