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판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악기 공연은 그래도 몇 번 봤었는데, 판소리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궁금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가까이서 들어보리라, 홀로 다짐을 해보게 될 정도로!
그러던 중 공연 <적벽>을 알게 되었다. 5대 판소리 중 하나에 속하는 적벽가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한국무용과 함께 버무렸다는 퍼포먼스 판소리극 <적벽>. 마침 가보고 싶었던 공연장에서 하는 것을 보고 '옳다고나' 싶었다.
요즘의 공연답게, 다양한 영상 이미지를 한껏 활용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M씨어터의 무대는 전환이 어려운 구조인데, 다행히 하얀 배경을 가지고 있어 영상을 상영하기에 좋다. 공연 <적벽> 역시 무대 영상을 바꾸는 방식으로 무대를 표현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영상 이미지의 일렁거림과 퍼포먼스의 조화가 아름다웠고 무대만 떼어 놓고 봐도 한 편의 미디어 파사드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 <적벽>은 어느 정도 적벽가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깊이 있고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적벽가의 줄거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프롬프터에 띄워지는 적벽가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공연의 전반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감상하는 데 한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소리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사용되어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더욱이 프롬프터에 의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소리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역시 <적벽>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는데, 그 모든 부분을 자연스럽게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적벽가의 중심 내용은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과 조조 사이의 갈등이다. 삼국지의 일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도원결의와 삼고초려 등 익숙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 뒤로는 정신없이 극의 내용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부끄럽지만 삼국지의 내용도 잘 모르고 있었던 터라, 적벽대전은 굉장히 생경한 주제였고 그 과정에 등장하는 제갈공명 등의 여러 인물들은 혼란을 더하기에 아주 좋았다. 하지만 함께 공연을 관람했던 친구가 시작 전 몇 가지 주요 골자를 알려 준 덕에 그나마 소화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렇지만 친구의 말을 들으니, 한 시간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도 적벽가의 주요한 내용들을 다 담아내었다고 한다. 굉장한 심혈과 정성이 더해진 공연임엔 분명한 것 같다. 2017년 국립정동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020년까지 4년간 공연을 지속해왔다는 <적벽>. 관객을 대면할 수 없었던 코로나 시기에도 무관중 생중계로 공연을 지속해 나갔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정동극장에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한 단계 나아간 공연 <적벽>. 힘껏 도약을 한 만큼, 2022년 공연 <적벽>에서는 탄탄한 배우 군단을 만날 수 있었다. 조선판스타, 풍류대장 등 미디어를 통해 판소리의 매력을 널리 알린 박자희와 오단해가 각각 제갈공명과 조조 역을 맡았고 지난 4년간 <적벽>에 출연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소리꾼 정지혜가 새로이 장비 역에 캐스팅되며 극의 무게를 더하였다.
따라서 공연 <적벽>은 단순히 볼거리가 풍부한 공연이라고 치부하기에, 무척이나 섬세하고 치밀하다. 극의 규모와 화려한 외연에 홀려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같은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4년이라는 세월,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발전하고 성장해온 기록이 오늘의 2022년 공연 <적벽>을 만들어 냈다.
공연 <적벽>은 지난 8월 20일(토)에 시작하여 다가오는 9월 29일(목)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2023년, 2024년 등 계속해서 공연 <적벽>을 만나볼 수 있을 테지만,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2022년판 공연 <적벽>은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