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은근한 기대와 질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기 -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전시]

글 입력 2022.08.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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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1.뉴욕, 1953년.jpg

뉴욕, 1953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누구나 사진을 찍고, 사진가가 되는 시대. 가장 흔한 사진은 어떤 것일까?

 

풍경을 그린 사진, 사물을 담은 사진, 다양한 사진이 존재하지만 그중에도 손꼽히는 건 스스로를 찍은 '셀카'다.

 

나를 담은 나의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가가 있다. 생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상을 떠난 후 수많은 '셀프 포트레이트'로 유명해진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이다. 그녀는 거울뿐만 아니라 창문, 자연물, 세상의 모든 곳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카메라를 든 모습부터 실루엣만을 보여주는 그림자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찍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든다. 왜 그토록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그 사진을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기를 선택했던 걸까? 타고난 자신의 감각을 세상에 보여주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삶을 택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진은 꽁꽁 숨겨두면서도 그 사진 속에는 끝없이 자신을 드러낸 비비안 마이어.

 

모순적이면서도 비밀스러운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poster_A2.jpg


 

 

비비안 마이어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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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가 한평생 함께한 직업은 보모였다. 어린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끈기 있게 놀이를 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며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반짝이는 지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큰 키에 단정한 모자를 쓴 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늘 카메라를 손에 들고, 15만 장에 다다르는 사진 속에 세상을 담았다.


그렇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그녀 자신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세상에 대한 온정과 연민이 담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역사학자 존 말루프가 그녀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다. 역사 책에 쓸 오래된 거리 사진을 찾아 경매장을 헤매던 그는 인화하지 않은 필름 수만 장이 담긴 상자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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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960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그가 필름을 스캔해 SNS에 올리자마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비비안 마이어가 담은 거리의 다양한 사람과 사물들,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모습부터 그녀만의 시야가 담긴 사진들. 그 사진들엔 따뜻한 온기와 도시의 고독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아름다운 연출로 알려진 영화 ‘캐롤’의 감독 토드 헤인즈 또한 비비안 마이어에게 영감을 받았다 말하기도 했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들이 놀라운 이유는

바로 그 이미지에서 그녀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영화 ‘캐롤’ 감독 토드 헤인즈

 


  

순수한 사랑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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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971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폭넓은 사진을 감상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그만의 구도, 인물과 자연물의 배치, 색감, 다양한 요소로 눈이 즐거웠다. 아름다운 시각적인 이미지로 충만한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사진을 대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태도였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나의 것이 쌓이기 시작하면 널리 보여주고 싶어진다. 보여준 다음엔 듣기 좋은 칭찬을 받고 싶어진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욕망하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순수하게 사진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지키기로 했다.

 

그 점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더욱더 특별하고 유일한 것으로 만들었다. 어떠한 수단도 아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목적 그 자체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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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은근한 기대와 질투 없이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속에서 그녀의 깊고 오롯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앞에서 나에게도 그러한 존재가 있는지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 그 삶은 지금의 나에겐 어렵지만 닿고 싶은 것.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흑백과 컬러를 넘어 사진으로 세상을 말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전시장 가득한 사진을 충분히 시간을 내어 구경하고, 비비안 마이어에겐 사진이 있는 것처럼 나에겐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며 거닐 수 있기를.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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