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피스타치오 마루를 좋아했던 너에게

너의 별을 잘 따라가고 있어?
글 입력 2022.08.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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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피스타치오 마루를 좋아했던 너



안녕.

 

오랜만에 편지를 쓰니까 어색하네. 문자로 너에게 어떤 말을 보내야 할지 매번 썼다 지웠다가 결국 보내지 못했어. 내 번호는 13년째 그대로인데 ‘받는 사람’은 여전히 비어있어. 너는 중학교 반 아이 중에서 유일하게 핸드폰이 없었지. 난 그때 아쉬웠어. 친한 친구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거든. 은근슬쩍 너에게 투정했더니 네가 한 말이 기억나. “전화나 문자로 말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


너는 피스타치오 마루를 좋아했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여름 길에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아이스크림 먹을래?”를 번갈아 말했지. 나들가게 앞에서 오묘한 색과 맛의 피스타치오 마루를 먹었잖아. 사소하지만 확실한 취향을 가진 너가 신기했어. 근데 사실 난 스크류바를 제일 좋아해. 너랑 있을 때만 피스타치오 마루를 먹었어.


피스타치오 마루를 먹으면서 나눈 우리의 대화가 반짝였어. 나무 그늘이 널린 벤치에 앉아 꿈, 가족, 학교 이야기를 넘나들었지. 보통은 많이 웃었지만 가끔은 진지했어.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고요한 호수 같았어. 모두가 흐릴할 때 너는 선명했어. 자기만의 세계로 친구를 초대하는 멋진 사람이었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궁금했고 더 오래 듣고 싶었어. 가끔 나에게 혼란스러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어. 나는 자주 말문이 막히곤 했는데 네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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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고등학교에 가고 자연스럽게 멀어졌지. 건너 듣게 되는 너의 근황을 들으면 마음이 조금 이상했어. 서로의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니까. 그때 우리의 거리감을 실감했어. 우리가 제일 친한 친구가 아니라는 잔인한 사실도 함께 말이야.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만났잖아. 춘추복과 하복을 입은 아이들이 뒤섞인 9월이었을 거야. 너를 성당 앞 횡당보도에서 스치듯 마주쳤지. 어제 본 사람처럼 나를 반겨주는 너는 여전히 이상하고 특별했어.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을 때, 초등학교 6학년 때 쓰던 피처폰을 쓰고 있었어.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다음에 꼭 보자’는 문자가 끝이었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우리가 여유가 없었어. 나는 핸드폰을 바꾸고 전화번호부가 몽땅 날아가서 너 번호를 잃어버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 옮겨 적어야 했는데, 바보 같지?


난 네가 써준 편지를 가끔 다시 읽어. 네가 나에게 과학 교과서를 5교시 쉬는 시간에 빌리겠다고 점심시간에 통보한 날, 나는 작은 쪽지를 과학 교과서 사이에 넣었어. 다른 반이 되고 너도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나도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 자연스럽게 멀어진 우리 사이가 서운하고 다시 친해지고 싶다는 투정 아닌 투정을 썼어. 교과서를 돌려줄 때 너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 교과서를 펼칠 때까지 그때 별별 생각을 다 했어. 혹시 네가 쪽지를 못 봤나? 아니면 내가 싫어진 걸까? 이런 쓸데없는 고민 말이야.


다행히 교과서를 펼치니 연필로 쓴 노트 한 장이 접혀있었어. 너는 우리가 멀어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너답게 설명했어. 아이스크림 먹던 날이 그립다고도 적었지. 그때 답장을 읽고 기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그때 난 좋아했을까? 아쉬워했을까? 피스타치오 마루를 그리워한다는 말이 설레던 것 같아.


편지 맨 앞장에 귀여운 그림과 함께 이렇게 적은 거 기억나?

 

 

“너의 별을 따라가라”라고 내가 존경하던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흠, 너의 별은 뭐야? 또 잘 따라가고 있어?

힘내, 그 별은 널 기다릴 거야.”

 


이제 너의 소식을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 너에게 닿을 수 없는 뒤늦은 답장을 쓰면서도, 나는 상상해봐. 만약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나에게 너를 만날 용기가 있을까? 모르겠어. 지금의 내가 내 별을 따라가지 못해서인지, 추억을 그대로 남기고 떠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어. 너는 여전히 나를 혼란스럽게 해. 나의 별을 따라가고 싶어.


너의 별을 잘 따라가고 있어?

나는 가끔 너 생각을 하는데, 너도 그래?

 

 

from. 현아

 

 

p.s 피스타치오 마루가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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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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