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루 살로메 1

사랑에 관한 난화 亂畵
글 입력 2022.08.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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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토가 끝나가는 광복절 저녁, 때맞추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씨름한 것들을 마무리 하는 단계, 담배 한 개비만큼만 밖에서 비를 맞았다. 고백은 예상보다 독했고, 의식은 너무 얼얼했기 때문에… 다음 주에는 조금 바뀌어 있을 사상의 방향성을 안고서, 정 대표님이 언급한 다른 흥밋거리인 루 살로메에 관한 이야기를 해봐야지… 

 

- 지난 에세이, 내 사상의 지평



쓰다가 보니 지난번 글에서 해보인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동어반복하는 느낌이 들어 한 마디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번 글은 바야흐로 사랑에 대한 나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개진하는 작업이 되어줄 테고, 나로서는 지금까지 미루고 또 미루던 작업을 비로소 시작하는 행위이다. 사랑, 그 어려운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직 본격적으로 전개된 바 없고 고로 정리되거나 개척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말인즉 내 안에 사랑 그것에 대한 경구쯤이야 얼마든 있겠지만, '그래서 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하고 내게 묻는다면, 아직 매끈하게 이어진 생각으로 답해 보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작업이 끝나면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 그 모든 낱낱은 조금 거칠지언정 한 필의 무명 광목이 되어 있도록, 한 땀 한 땀 직조해나가고자 한다. 출사표를 던지며,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서두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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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의 공식적인 시간이 끝나고, 에디터들끼리 번호를 교환하는 아우성의 틈바구니 속을 나는 서성이는 마음으로 있었다. 그쯤 내 안에는 아직 정제되지도 않고 익숙지도 않은 낯선 관념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점유되고 있었기에. 아무도 모를 속사정을 안고서 나는 시선이 걸리지 않을 공간을 향해 바삐 고개를 움직여야 했다. 시선에 여러분이 걸치어 있으면 나는 그대들을 응시하게 되어버리는 것이고, 그것이 어떤 행위의 전조를 유발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며, 예컨대는 다가가 말을 건네거나 대화를 나누게끔 하는 모종 불문율의 분위기를 조성해버리는… 그럼에도 내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기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로 말미암아 내게 겨누어질지 모를 어떤 실망감을 벌써부터 내 기피하는 행위가 그것이고… 


장장 8시간의 모임과 그 안 가득 대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호기심 많은 이 에디터들의 마음에 제대로 불을 지펴 당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들 정열적으로 서로 이별을 아쉬워하며, 번호를 교환하거나 SNS 계정을 교환하거나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방인의 자리로 가 앉아 있어야 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사뭇 다가가, 같은 감정 내지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선보이지도 증명치도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까닭인즉 이별이란 언제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늘 누가 있어 나를 궁금해했다 한들 우리의 감정은 몇 밤 지나지 않아 차분히 사그라드는 것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며, 완전히 매료되지 않는 한, 혹은 수 번의 만남과 이별을 지나 이내 차분해진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 한, 너와 나의 멀어짐이란 지금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그러했듯 시나브로 일어나버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또 지나치게 아쉬워하는 것에 있다. 말인즉 아직 내가 신을 낼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것은 오래 두고서 볼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사람을 지나치게 빠르고 높게 사랑한다. 내가 그대들 환희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 완연히 멈추어 버리는 것, 그렇게 철저한 이방인의 뉘앙스를 풍기며 타인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양,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듯 비치는 이 모든 까닭이란 역설적으로, 그대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만큼만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그날 여러분이 그러했듯, 산뜻하고도 신속한 애호를 표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나의 사랑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높다고 생각할 적마다 침잠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 지나치게 커다란 감정이 우선 내 안에서부터 며칠 밤을 견뎌내곤 꾸준히 영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 감정이 그대의 마음에 스며들어 볼 만큼 무해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이 왕성함이 그대를 놀래키지 않을 것인가, 또한 내가 그대에게 섣불리 펼쳐버린 마음에 과연 그대의 마음은 같은 모양으로 공명할 것인가, 그로써, 그로써 이 표출과 선언이 길이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행위, 어쩜 그보다는 걱정으로 말미암아 일단 자제부터 하고 보는 행위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러니 나의 마음은 자주 가만히 있으려고만 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버릇이고, 나의 젊음이 남긴 흉터, 혹은 그 시절이 결정화되어 나타내는 한 가지 자아이다. 이제 나는 사람을 너무 사랑할 때마다, 곧 그만큼의 마음으로 혹은 더욱이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그것은 거친 수염과 질긴 피부, 너무 짙은 눈썹과 좀체 꺾이지 않으려는 듯 오기로써 불타고 있는 불안한 눈동자를 지닌 한 인간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안에 공통으로 내재되어 있는 나의 사상이 거친 짐승을 그려내고 있었음에, (사람들은 이 짐승을 수월히 직감하는데), 내 사랑이 그대를 할퀴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한 가지 고육책이다. 


사랑의 역설에 대해 나는 몇 가지 진실한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유된 경험이라 불러보아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뇌리 속을 이토록 짙게 베이고 스며들어, 내가 어떤 모양으로 된 사랑을 느끼는 때마다 드러나 나를 막고 누그러뜨리고, 다시 한번 일러주고, 그 끝에 기-인 쓴맛을 베어내니까. 그래서 사랑이란, 그것이 아가페이건 에로스이건 심지어는 플라토닉의 모양으로 되어있건 간, 약간 감미롭다간 쌉싸롬한 마음을 낳고 이내 갈무리되어 버린다. 내게 있어 그렇다. 


그러니 내가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이란 어쩜, 내 짧은 사유의 시간선 내에서의 사건이지마는, 스스로 발견한 유일한 것으로서의 본위 선이었으니까… 너무 어렵게 썼나…? 사유의 명명백백한 과정을 여기 담아내 보자 하니 글은 거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축하고 이번 글의 결에 맞추어 다르게 써보자면, 사랑이란 내 안에서 샘솟는 여러 가지 중 유일하게 선 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씨앗이며, 인간을 외롭게 하는 여러 가지 중 유일하게 그 인간을 해방시킬 가능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본능이기 때문에. 사랑은 인간을 외롭게 한다지만, 어디 사랑뿐이랴. 나는 인간의 안에서 샘솟는 모든 본능 중, 그 인간을 나아가 해방시켜줄 유일한 열쇠를 사랑'함'에서 찾고자 한다. 사랑과 사랑'함', 이 차이마저 이번 글이 모조리 품어 사랑에 대한 나의 사상을 드러내 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쓰는 지금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러니 내가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이란 한 인간을 드높이는 만큼 몰락시키는 본능이고, 너무도 들뜨고 빛나게 만든 다음 지저 地底로 메다꽂아 그만큼의 초라함을 느끼게 하는 힘이니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사랑이 주는 몰락을 벌써부터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아직 이 생각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느끼는 지나친 사랑, 그 불안한 힘이란 시작도 되기 전부터 나를 두려워 경직시키고 있었음에… 즉,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경험으로 증명치 못했기에, 이제부터 그것의 민낯과 실체를 알길 원한다. 내가 이렇듯 두려워, 어떤 모양으로 된 사랑이건 삼켜내고 누그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이런 전처로 내가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만큼, 혹 그 이상으로 바라는 것 사랑이었다고 한다면…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 지금, 그것이 불가해 멀어진 만큼으로 그것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그런 의무나 착실한 필요가 내 안에 오래도록 있었던 것이다. 


*


그러니까 오늘은 안녕, 나는 부러 아무런 말도 없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나는 차라리 그 순간 소망하기를, 오늘 아쉬움이 다음번의 우리를 더 가깝게 해주었으면. 우리에게 또 다음 번이랄 게 있어 마땅히 기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이별의 아쉬움이란 서로의 마음속에 새겨진 상대방을 향하는 인력으로 변모되어주기를 바라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새로운 테이블에서 만나, 이제는 여러분의 글을 읽고 온 내가 먼저 정다이 말을 걸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런 우리들 사이로 마침내 자연스러움이 넘나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연스러움, 4월 밤바람 같은 그것, 어느샌가 심장 가장자리로 스며서는 보드라이 인도하는 그 손길을 내가 느끼면, 그 순간으로부터 여러분을 향한 나의 마음은 나루목 말뚝에 묶인 밧줄을 벗고 날아갈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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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은 안녕. 정열적인 이들이 없는 쪽으로 시선은 바깥을 향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야기들의 바깥에 혼자 앉아 있는 정 대표님을 포착해 바라보다간, 아무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틈을 타 다가갔다. 답답한 마음이 이끌었다. 여러분과의 이별에는 또 별개로, 낯선 관념들이 내 안을 시끄럽게 솟구치고 있었기 때문에. 다가가 우물쭈물하는 나를 두고 그녀는 "왜 그리 뻘쭘하니 서 있느냐"며 와락 당기어 앉히셨다. 예기치 못하게 독대의 상황이 연출되어 버리고, 그 앞에 내적으로 구체화된 의문과 질문해 보일 만큼 정돈된 생각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나는, 그러매 오히려 흔들리는 눈동자를 그 앞에 드리워, 내가 당시 이처럼 불안해하고 있음을 엿보이는 것밖엔 할 것이 없었다. 


전편에 말했듯 은연중 가지고 있던 것, 난해를 꽉 쥐고서 고독에 익사해버린 어느 괴물의 예감, 그 가능성은 결국 다행스럽게도 의식 전면에 대두했다. 쉽게 말해 이대로 가다간 영영 이해받지 못하고 뒤틀려버릴 지도 모를 것 같다는 위기감이 아주 잘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난 글의 모체인 '그렇다면 내 사상과 글의 방향은 바야흐로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직감은 이미 그쯤 피오르고 있었다. 한편 그것은 익숙지 않은 관념이며, 갓 피어나 영글기 시작하여 곧 정제되지 않은 관념이다. 그리고 언제나 내 안에 새로운 무언가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나는 조용한 공간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시간, 즉 고독을 필요로 한다. 그 감미로운 홀로된 시간을 말미암아, 나의 난해는 형체와 색을 입고서 글로 태어나거나 마음에 쏙 드는 경구가 되어 머리 뒤편에 잘 갈무리될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런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한편 내가 고독에 중독되어 빠져들수록 이렇듯 여러분과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동시에 괴물의 예감이 따라 커가니, 이것이 나의 딜레마이다.  


바라는 고독, 그러나 아직 헤어짐은 그치지 않았고 오히려 타는 듯 아쉬움으로 모두가 이 복된 시간을 붙잡고 있었으니, 내게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 참이었다. 마침 정 대표님으로부터 비롯된 이 낯선 관념의 순간을, 기리기라도 할 마음인 양 나 또한 그녀를 아쉬워하는 참이었다. 더불어 낯선 관념들마저 왈칵 물밀듯 쏟아지고 있었으니, 여러모로 허우적거리는 나를 앞에 두고서 그녀는 차분한 기다림으로 다독여주었다. 대화의 공백, 그 어색함을 꺼리는 듯한 그 어떤 제스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앉아서 지긋이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치 나의 고독이 내게 그러한 것처럼 편안했다. 이내 질문한다. 


'나는 그 고독한 괴물의 단초를 안고 있으나, 또한 그것을 너무도 사랑하여 아직 내버릴 방법이 없을 듯싶다. 나는 관념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고 추상적인 글을 쓰는 나를 사랑해, 아직은 그것을 고집하려는 마음을 안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동경하는 이, 니체와 릴케를 사랑하는 바로 그 원리대로…'


그녀는 답했다. '그것은 젊은이로서 가질 법하고, 또한 가질만한 것이다. 야망이라 불리는 것, 무언가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은 자체로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따르되 괴물이 되지 말라는 충고였을 따름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향하여, 사람을 위하여 글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답변에 뒤이어 본격적인 질문 공세는 할 수 없었다. 파티룸 대관시간이 끝났고, 그녀를 기다리는 또 다른 많은 사람이 옆을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게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누가 주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추진력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찾아 앉은 건 아니지만, 정 대표님 옆자리를 꿰찼다. 이런 자리에 대해서라면 섣불리 기대할 법한 무슨 유의미한 이야기는 역시나 오가지 않았다. 진지해지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 아마 그 자리 모두가 이런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테이블엔 끊어내기 힘든 침묵이 왕왕 찾아들었고 이런 침묵은 유머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정대표님은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 바로 옆에 앉은 게 나라서 좌중을 향하는 유머의 대상으로 삼아진 것은 나였고, 으레들 하는 그런 질문이 던져졌다.  


"여자친구는 있어요?" 

부끄럽지만 없다고 했다. 

"자기는 루 살로메 같은 사람을 만나야겠네." 

'루 살로메요?' 하고 되물었다.

"자기가 니체랑 릴케 좋아한다면서?"


그러고 보니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아서, 아, 아아, 네에 하곤 말았다. 루 살로메, 그 이름은 지나가는 투로나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아주 지엽적인 거라서, 니체인가 누군가가 되게 좋아했더랬다는 식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집에 와서 나무위키를 켰다. 나무위키의 정보를 가지고 앎을 자처할 수는 없을 노릇이지만, 주제에 대한 지엽적인 정보들이 한 곳에 집대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자면 이처럼 손쉽고도 유용한 매체란 잘 없을 것이다. 개요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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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릴케, 프로이트에게 영감을 준 여인.

당대 지식인들의 뮤즈이자 프리마돈나.

하인베르크의 마녀.



하인베르크의 마녀, 그녀의 생애에 대한 요약을 읽고 난 다음 다시 보면, 왠지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수식이다. 이것은 그녀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맨 처음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엿보이고, 나아가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엿보이는 구절이다. 유럽의 식자들을 매혹시킨 팜므파탈, 어딘가에 구속받지 않고서 끝없이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 여인, 수많은 남성을 그 지성으로 매료시킨 다음 그들로 하여금 갈구하게 만든 마성의 소유자, 끊임없는 스캔들의 주인공이었으며 무수한 연애 편력을 지닌 이,  등등 진부한 수식언은 이상 얼마든지 달 수 있으니 줄이도록 한다. 


생애라, 그러나 그녀를 유명케 만든 것, 그로써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 소개되고 있는 것에 그녀 자신의 사상이나 저술이 아닌 단지 그녀가 만든 연애의 외적 서사만이 가로놓여 있음을 보고 있는 것이란 퍽 입맛이 떫다. 그만큼 독특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마법 같은 사건들이 거기 담기어 있다지만, 그녀에 관한 이야기 전반이 연애사, 심지어는 내적 서사가 배제된 채 외적 관찰과 표상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피상적인 연애사이기에, 본들 아직 내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책을 사 읽어야 할거나…  


어쩌면 저것은 요약문이어야만 하기에, 그러한 필요로 작성된 글이라서 그런 것이었다면은? 그러니까 나무위키에 기재된 내용들로 무언가 하나의 주제가 가지는 깊은 곳까지 닿아보길 원하는 마음이란 나의 성급함에 불과한 것이었다면은? 그래서 오늘은 저 수식언에 눈이 꽂힌 채로 내가 그녀를 충분히 이해하곤 이 안에 담아, 그려볼 수 있을 때까지 거듭 바라보았다. 눈동자를 겉돌고 퉁기어 나가는 활자는 피상이라, 그럼에도 그녀에 관해 다소 간 알 게 되었노라 생각하게 하는 가장 첫 번째 마음은 거진 반 선입견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번만 읽고서 뒤돌아 생각해본 그녀는 하인베르크의 마녀, 철저한 그것에 대한 기억과 믿음만으로 그려지고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길이 남아있을 까닭이다. 


그렇게 이 안에 그녀를 그려내곤, 그저 가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거듭 읽었다.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행위는 곧잘 무언가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무관심하게 하는 세 가지 첨단 尖端을 가장 먼저 야기하곤 하지만, 그렇기에 긍정과 부정 그 사이 어딘가를 차분히 앉아서 바라본다는 것은 꽤 시간을 요한다. 그리고 이렇듯 시간을 요하는 오랜 응시, 그것은 이미 무관심의 영역을 지나친 행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것은 너와 나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었을 테다. 


오래 응시하지 않으면, 너는 내 안의 세 가지 첨단 중 한 곳에 자리해 다음번의 어떤 계기가 찾을 때까지는 거기 오래 갈무리되어 버린다는 것. 네가 무관심한 피상으로 혹은 한가지 인상의 선입견으로 갈무리되어버리곤, 거기 오래 남아버린다는 것. 한편 너와 내가 대면하는 것조차 아주 긴 인과가 필요했다지만, 그로부터 나아가 서로에 대한 인식이 점차 깊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안에 아무런 선입견도 없는 차분한 모습으로 길이 남아 있기 위해서는, 즉 오래 응시하고 다정히 갈무리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것들이 필요했음을 또한 헤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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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가 만나기 위해서는 아득한 운명이 필요했다는 것. 그날을 예로 들어볼까. 내가 11회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에서 마침내 여러분을 만나기까지, 그 순간을 위해 바쳐진 모든 인과를 더듬고 헤집어 본다. 가장 가까운 과거에는 한 번의 클릭이 있었을 테다.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향유하기.' 그러나 그 이전, 단 한 번의 클릭을 있게 한 긴 시간들을 헤아린다. 거기에는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로 보낸 최근 1년, 그 이전에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중단하고 회사 업무에 적응하던 1년, 그 이전에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보낸 1년, 그 이전에 혼자 글을 써오던 시간들, 그 이전에 최초로 글을 쓰게 된 계기의 순간, 그 이전에 글로 빚어지기를 원하는 수많은 아우성을 안은 채 다람쥐길을 거니던 시간들, 그 이전에 무언가 수상한 감정을 자아내는 이 아우성들을 인식하기 위해 바친 긴 사색의 시간들, 심지어 그 이전에 이 아우성을 잉태시킨 젊은 날 순간순간의 아픔들마저 있다. 글 하나하나를 위해 감내한 모든 밤의 시간들과 인고 忍苦를 모조리 저 쉼표의 사이 행간으로 차치해두고서라도 이렇게나 긴 시간들이 여기 있다. 역행 순으로 정리한 시간들, 그날 단 한 번의 클릭과 우리의 만남에도 이렇게나 긴 까닭이 필요했던 것이다.


너와 내가 대면하는 것조차 이렇듯 아주 긴 시간의 인과가 필요했다지만, 우리가 나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것들이 필요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것일까. 왜인지 이것이 사랑하는 우리 모습들에도 이미 깃들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서서 말이다. 마침내 만난 너와 내가 드디어 깊어지는 일, 그를 위해 필요한 것, 서로 오래 응시하게 하는 힘, 동력, 이것은 어쩜 사랑의 한가지 작용이 아닐까. 그것은 사랑의 첫 번째 얼굴, 사랑이 맨 먼저 짓는 표정이 아닐까. 이렇게 써보니 예전에 인용한 릴케의 시 구절 하나가 생각난다.



사랑이 네게로 어떻게 왔는가?

햇살처럼 모았는가,

꽃눈밭처럼 왔는가,

기도처럼 왔는가?

말하렴



하늘에서

행복이 반짝이며 내려와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

피어나는 나의 영혼에 매달렸습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꿈의 왕관을 쓰고' 中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저 모르게 시작한 사랑을 불현듯 감각할 따름일 뿐, 사랑이 어느 계기로 샘솟아 시작되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사랑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어떤 유인과 어느 계기로 말미암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사랑이 시작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예측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은 예측할 수 없고,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위의 시를 깊이 있게 해석하지 못해, 다만 이렇게 생각하곤 말았다. 


우리의 만남, 그것이 운명의 비유를 가져볼 만큼 아주 길고도 머-언 인과를 요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하리라는 결론마저 낳아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별개의 일이거든. 만남은 아득한 곳으로부터 아주 메마르게, 그리고 아주 조용히 찾아왔을 뿐이다. 이제 서로 만난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렇게 긴 인과의 끝 지금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고,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미리 예측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사랑이란 내게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많은 우연과 인과 끝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니. 나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지나치게 궁리하기에 이런 것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오랜 끝 비로소 시작되는 것, 그리고 미리 알아볼 수 없는 것. 이 무작위성이 바로 사랑의 어려움 그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를 오래 응시하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까닭과 유인이 필요했고, 그 유인의 여러 가지 중 가장 유명하고도 원초적인 것으로는 사랑함이 있을 테다. 그러니까 네게 집중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그려놓아 본들 계속 흩어지려고만 하는 너의 실루엣을 붙잡아 놓고선 오래도록 독대하기 위해서, 응시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지속적이고 강렬한 유인이 필요한 것이다. 주로 사랑하는 경우에 그렇게 한다. 그러나 사랑이 어떤 유인과 어느 계기로 말미암는지를 알 수 없기에, 그리고 사랑이 어느샌가 무의식 속에 잉태되어 그 가지를 충분히 뻗어내는 때까지는 감지되지 않기에, 이 무작위성이란 참 어려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낯선 우리가 서로 모여, 아무런 조건도 까닭도 없이 상대를 한없이 바라보고, 선입견이 사라지는 때까지 계속이 듣고, 상대가 뱉은 낱말 모두를 낱낱이 기억 속에 눌러 담곤 집으로 돌아와, 이제 조용한 시간 속에서, 기억 안에 넣어둔 그 편린을 꺼내어 스스로 하나의 비단으로 직조해내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까닭 없을 여러분께 내가 그러한 것을 기대해볼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서로를 생각하고, 마침내 조금 이해하고 끊임없이 기억해 보일 수 있었을까. 써보니 이것 참 번거로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경우엔 이 모든 번거로움은 마치 원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 양 자연스레, 인식도 없이 일어나곤 했다. 즉 이 모든 번거로움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 중 하나이고 그것은 사랑의 작용이었으며, 사랑이 한 사람에게 깃들어 피워 올리는 첫 번째 미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마음이 대상을 열렬히 응시하게 만든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 번거로움을 성실함으로 바꾸는 계기였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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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 성실한 마음을 가져볼 수 있을까. 즉 나는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고, 너는 어떻게 그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러는 이상형을 들어 설명코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다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의 그것으로 말해보자면, 우아하고 단아하고 점잖고 옛스럽고 수수하고 침착하고 이해심이 깊고 지적이고 지혜로운… 풀빛을 물들인 광목 치마의 이미지, 이런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낱말들을 모조리 갖다 대어도 그것이 사랑의 계기일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 저것은 그저 내가 생각해볼 수 있는 단편의 한가지였을 뿐, 저것을 뭉뚱그려대도 내 사랑의 진면모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아니요, 그것의 스케치일 수조차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 바깥의 여남은 것들은 이해의 지평 너머, 알 수 없음이라는 대지에 가로놓여 있다. 그것이 지상의 어떤 계기로나마 내게로 직접 오지 않고서는, 겪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 

 

풀빛을 물들인 광목 치마의 이미지, 내가 읊어본 속성과 채 읊지 못한 속성들까지 모조리 가지고 있는 누군가도 반드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요, 그런 것들을 모조리 가지고 있지 않은 누군가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있어 내가 아무런 결정권도 가질 수 없었다는 것.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앞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글에 깃들어 있는 생각은 이것이다.



사랑이 내게로 어떻게 오는가. 


이따금씩 구름을 벗어 내리쬐곤 비와 밤의 시간 동안은 힘을 잃어버리는 것, 

햇살처럼? 


순환하는 계절이 하나의 시절을 마무리하며 내리는 축복이자 필연인 것, 

겨울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자 미리 그리어 기다려볼 수 있는 것, 

서글픔을 환희로 치환하는 역설이자, 

반복되는 운명인 꽃눈밭처럼? 


혹은 깊은 밤 위로 띄워 올린 나의 신실한 갈망, 

기도처럼?

 

 

내 간절히 바라는바 기도처럼 너는 올 것인가? 아니, 결코 그럴 수는 없지.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볼 수도 정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얼핏 떠올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너무도 알아보고 싶고 손 뻗어 보고 싶어하는 이 갈증이란. 얼굴 없는 사랑을 미리 그리어 만나보고 싶은 마음과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 이 오랜 딜레마가 오늘의 질문을 마련했고, 그 끝에 이런 글을 낳는다. 나는 너무나 큰 갈증을 안고 있음에도, 단 한 가지 분명한 신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어떤 사랑의 낯이 있고, 그것은 만나기 전에는 다 헤아려볼 수 없는 것이지만, 만나는 어느 날까지 여기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 


사랑이 예측할 수도 그려볼 수도, 심지어 내가 결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나를 찾을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 그래, '하늘에서 날개를 단 행복이 스스로 내려오는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어려운 것은 그 기다림이다. 어려운 것은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등 뒤를 떠미는 갈증이 그것을 매 순간 어렵게 하기에. 나는 바다를 앞에 둔 어린아이의 마음같이 자꾸만 앞으로 내달려 보고픈 충동을 안고서 여기 겨우 앉아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아무 바람이 톡 하고 건드려버리면 자꾸만 심장이 붉어지는, 위태로운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갈증이란, 언젠가의 그대를 맞기 위해 마음속에 마련해두어야 할 사원 寺院, 그 대지에 지진을 일으키고 타일과 땅과 지축을 뒤집어 자꾸만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이하는 차설…


**


누군가는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화 내내 사랑이라 일컬어진 것의 안에는 불타는 연인의 모습, 동경하는 모습, 열렬히 궁금해하는 모습, 고독을 쫓고 즐거움을 좇는 모습 등이 전부 다 들어 있다. 물론 연인에 대한 그것에 방점이 쏠려 있긴 하지만, 여전히 그 모든 마음을 굳이 나누어 인식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하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에 이 모든 것을 혼재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묶는 단 한 가지의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이번 화에서 일컬은 것, 상대에 대해 열렬히 알고자 하고 오래도록 응시하게 하는 본능적인 유인, 그 원리를 들 것이다. 


그렇다면 문두에 내가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여서라고 말해 보였지만, 나는 정말로 사랑한 것이었을까? 나는 호기심이 많고, 지나치게 빨리 친밀감을 느끼고,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조심스러움이라는 벽을 일파 해버리고자 할 만큼 성급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많고 이해심이 부족하다. 그런 내가 여러분께 가져본 마음은 정말로 사랑이었을까. 그렇게나 곱고도 성실한 마음이었을까? 이번 화에 이야기해버린 것들이 잔뜩 있으니만큼, 나는 문두에서 섣불리 써버린 여러분들에 대한 마음을 사랑이 아니었다고 결론지어야만 하겠다. 그 섣부름에 부끄럽기도 하고, 못내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가 써버린 것들은 그 마음의 위상을 사랑에서 격하시켜버린다. 


그러면 그것을 달리 무어라 불러주어야 할까. 적절한 것이 퍼뜩 떠오르진 않지만, 그것을 관심이라 불러 두곤, 이 마음이란 사랑의 전 단계일 것이리라고 일단 섣부르게 말해나 볼까. 왜냐하면 사랑이란 반드시 첫눈에 걸려드는 것이 아닐 테고, 충분히 싹을 틔우는 때까지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까. 아직 그것이 발아한 것인지를 까막 모르는 중에도 여러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시간이 지나 사실 그것은 사랑이었노라고 말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신실하게 여러분을 관찰하여 글을 써낼는지, 즉 오래도록 응시할 수 있을는지는 아직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보아야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니까. 


어쩌다 보니 루 살로메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못 했지만, 이런 식으로나마 글의 포문을 연다. 루 살로메의 요약된 일대기를 가만 보다가 생각이 멋대로 튀었다. 그녀를 가만 보며, 이 안으로는 너무 많은 활자들이 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여기 쓴 것만큼은 또 여기 담지 못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화로 미뤄버려야지. 그래서, 충분히 응시해본 루 살로메는 내 안에 어떻게 담기어 있는가를 지금 돌이켜보자. 그녀와 그녀의 생애를 무언가 께름칙한 것, 불길한 것, 그럼에도 매혹적인 것, 즉 위험한 것으로 바라보던 최초의 마음에 그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아직 그 생애 사이사이 까닭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이상의 이해를 얻어낼 수 없지만, 적어도 태도는 바뀌어 있다. 내 가치관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그녀의 일생을, 나는 이제부터 더 정확히 알아가고자 한다. 즉 이것은 또 하나의 서문에 불과하다는 것.


어찌됐든 루 살로메를 가지고 오래도록 글을 쓰는 행위, 이것도 다 내가 니체와 릴케를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그녀를 오래도록 응시하고 탐구할 하등 이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니체와 릴케를 사랑하는 나는 니체와 릴케의 사랑을 궁금해한다. 이 글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결말에 닿기 위해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도록 생각해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더 오래도록 바라보아야겠다. 그리고 이것, 오랜 응시는 글 쓰는 행위와도 맞닿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행위를 전제한다. 글은 내게 강력하게 권면한다. 대상을 한번 스-윽 훑고 곧잘 글로 써보기엔, 범재 凡才인 나로서는 글이 은연중 요구하는 논리적 완결성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단과 문단이 서로 긴밀하게 이어지기를 원하고 더욱 아름다운 것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탓에, 주제에 대한 얕은 관찰과 마찬가지 얕은 의식을 가지고서는 충분한 글을 써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쓰기 이전에는 그 무언가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여기서는 루 살로메를, 두고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그녀를 오래도록 바라보아야 했다. 이 '무언가'의 자리에 누가 들어서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 글에 바로 뒤이어 쓰게 될 서간문, 그 대상이 되어줄 누군가에 대해서도 나는 오래도록 생각해야 할 것이고 심지어는 나에 대한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응시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첫 번째 모습이라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사랑은 오래도록 바라보게 만드는 힘, 

스스로 성실하고 꾸준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사랑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글에 대해 예전에 써두었던 구절의 뒷편에 한가지 경구를 덧댄다. 

 

'글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멀리까지 닿을 수 있는 대화수단이고, 

가장 오래도록 응시하게 만드는 계기, 사랑의 모사이다.'라고. 


 

오늘은 이 구절 하나를 얻어가면서 일단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목에서 직감하셨겠지만, 이것도 이미 연작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하물며 내가 사랑, 그 불가해하고 모호하고 강렬하고 충동적이고 자발적이기까지 한 에너지에 대해 글을 쓸진대… 사랑 이 어려운 것을 응시하고 탐구하고 대화해 나감에 있어, 연작은 어쩜 종이에 펜을 대기 한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는 운명을 가지고 있던 한, 이것은 사랑에 대해 의식해보기도 전부터, 사랑을 꿈꾸는 그 순간으로부터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계속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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