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관적 시차에 대하여 [사람]

따라잡기 벅찬 간극이 주는 풍부함
글 입력 2022.08.2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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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입국하고 나서 수면시간에 대한 시차 적응은 완료했다.

 

하지만 점차 생활하면서 다른 종류의 시차가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빠르게 변화되어 있는 세상의 속도에 맞춰가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 어떤 일을 뒤늦게 마주하게 됐을 때가 그렇다.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시차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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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의미의 시차 (time difference)


 

: 세계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여 정한 세계 각 지역의 시간 차이. [표준국어대사전]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이 의미의 시차에 대해 많은 고민했다. 내가 사는 곳이 밤일 땐 한국은 아침이고, 내가 낮이면 한국은 밤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한 홀가분한 사람과 이제 하루를 마주해야 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애정이 담긴 인사를 나눴지만 하루의 끝과 시작점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는 어려웠다.

 

한국에 오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시차를 느끼지 않을 줄 알았다. 예상과는 다르게도, 주관적 의미의 시차가 느껴졌다.

 

 

 

주관적 의미의 시차 (time lag, jet lag)


 

: 어떤 일을 하는 시간이나 시각에 차이가 지거나 지게 하는 일. [표준국어대사전]

 

헤어질 결심을 봤다. 마침내. 독일에서는 헤어질 결심이 그동안 개봉을 하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가 한국에 와서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보게 되었다. 그동안 인터넷에 있는 스포일러들을 피해 다니느라 애썼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한결 편해졌다.

 

아래 시차들은 헤어질 결심 속에 나온 시차와 내가 느꼈던 주관적 시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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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통의 시차

 

서래는 해준과 소통할 때 조금은 서툰 한국어로 얘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중국어를 사용할 때가 있는데 그때 스크린에는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관객들은 해준과 똑같이 서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번역기로 어딘가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흘러나오면 그제야 서래의 의도와 감정을 짐작하기 시작한다.

 

말을 하는 동시에 바로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이해를 할 수 있는 그 상황이 재밌었다. 비언어적인 요소로만 계속해서 추측하다가 마침내 서래가 하려는 말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전까지 추측하면서 느꼈던 약간의 불안감과 기대가 가라앉으면서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독일에 있을 때 외국인으로서 이런 소통의 시차를 종종 느꼈다. 아직 언어가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 느껴지는 소통의 시차들이 있다. 대화 중 한 단어만 계속 못 알아들어서 일단 넘겼는데 나중에 그 단어 뜻을 알고 나서 모든 대화 내용이 새롭게 느껴졌던 적이 그러한 경우다.

 

 

2.  감정의 시차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와 해준의 감정은 시차가 있었다. 해준이 끝을 말했을 때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이런 어긋남이 있었기에 서래의 사랑이 더욱더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감정의 시차를 한국에서 그 당시에 가족들과 함께 겪어내지 못했던 일을 이번에 와서 늦게나마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꼈다. 머리로는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직접 겪어내다 보니 감정의 후폭풍이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미리 겪어내고 지금은 담담해졌을 감정을 나만 조금 늦게 겪어내는 기분이었다.

 

 

3.  변화의 시차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새로 생겨난 밀키트 무인 판매점들부터, 어딜 가든 있는 키오스크까지 정말 세상이 빨리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장소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장소도 아니었지만, 기억 속엔 늘 존재해왔던 곳이 갑자기 없어져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모든 변화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느낌이라 벅찼다.

 

 

 

시차가 만들어내는 묘한 감정



시차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낯설게 느끼게 한다. 따라잡지 못한 간극은 답답함, 당황스러움, 애석함 등의 감정을 만들어냈다.

 

마치 부정적인 감정들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감정들이 지나가고 난 뒤엔 좋은 점도 있다. 한 상황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점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해 내면은 더 풍부해진다.

 

앞으로도 많은 시차를 느끼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처음에는 생경하고 당황스럽겠지만 그 시차를 느끼면서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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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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