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당신의 영혼이 담겨야 비로소 완성되는, 에코드소울 – 홍승경 대표

글 입력 2022.08.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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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드소울의 이어리포레스트 테마 저널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껴안은 존재는 일기장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는 고백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울먹이듯 때로는 소리를 지르듯 아니면 귓속말을 하듯 일기를 쓴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그렇게 털어놓아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이 있다. 우리의 충실한 일기장은 그 모든 것을 담아낸다.


영혼을 담는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에코드소울은 일기장을 만들고 싶다는 홍승경 대표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몽환적이고 오묘한 테마, 다른 문구류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한 색감, 제작자를 힘들게 하는 만큼 아름다운 후가공, 매만지며 들여다봐야 보이는 디테일이 모여 누가 봐도 에코드소울이라고 알아볼 만큼 개성 있는 디자인이 된다. 에코드소울은 ‘영혼의 메아리’라는 뜻이다. 홍승경 대표는 에코드소울 모든 제품 디자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지며 그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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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홍승경 대표

 

 

에코드소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어느덧 7년 차, 한 사람의 괴로운 마음을 담던 일기장은 이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 영혼의 메아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더 크게, 더 멀리 울려 퍼진다. 지난 17일 홍승경 대표를 만나 영원히 증폭될 메아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마음을 담는 그릇을 만들다

“모두의 일기장이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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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진행되었던 팝업 행사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에코드소울이 어떤 브랜드인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도 반가워요. 에코드소울은 마음의 목소리를 담은 물건을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에코드소울’은 영혼의 메아리라는 뜻이고, 특히 보물처럼 간직될 일기장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주로 문구류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디자인 전공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문구류를 디자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맞아요. 전혀 관련이 없는 어문계열 전공이에요. 휴학하고 취미 삼아 제가 쓸 일기장을 직접 손으로 만들게 되며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꾸준하게 해온 유일한 일이 그림 그리고 일기 쓰는 거였거든요. 당시 오래 애용해 온 일기장 브랜드가 매각되면서 제가 좋아하던 그 브랜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걸 봤어요. 제 마음을 담을 그릇이 시중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직접 일기장을 만들게 되었죠.


마침 당시 첫 알바비를 받았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제본기를 샀어요. 일기를 오래 써오며 필기구와 종이에 관심이 많았기에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죠. (웃음) 그렇게 직접 작은 노트를 만들었는데 기성품을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예요. 내 목소리를 담는 매개체를 내 손끝에서 탄생시키는 게 묘한 경험이었어요. 새벽에 그 일기장에 일기를 쓰고 덮었는데, 거기서 은은한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마치 '영혼의 메아리'처럼, 그 속에 적은 기록과 제 기억, 영혼이 공명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일기를 쓰는 사람들 각자의 일기장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 다른 얼굴, 다른 삶, 각자의 영혼이 공명하는 걸 생각하다 보니 브랜드명이 된 ‘에코 드 소울’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어요. 그런 마음과 일상을 공유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예상치 못하게 판매 요청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판매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거절했는데 그런 요청이 점점 늘어났고,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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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본기를 이용해 직접 만들었던 노트들 중 하나

 

 

저는 ‘작품’과 ‘상품’은 다르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왔는데, 에코드소울의 제품을 사용하면서 작품이 곧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제가 보는 건 결과물일 뿐이고, 개성과 취향이 담긴 디자인을 하는 동시에 그걸 상품화(대량생산 및 단가를 맞추는 과정 등)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매번 따를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시나요?


작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드는 사람의 심장을 행복하게 뛰게 하는 단어예요. 제 작업은 크게 디지털 작업과 생산 작업 둘로 나눠지는데요, 디자인 작업에 해당하는 이미지화에는 한계가 크지 않아요. 제가 맡아서 디자인하다 보니 따로 데드라인을 두지 않고 제 성에 찰 때까지 하거든요. (웃음) 그 부분에서는 균형점을 찾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편해요.


문제는 생산 작업이에요. 이때부터는 비용 문제로 한계가 생기죠.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저는 의외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일정 수준의 퀄리티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켜요.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후가공을 비용 문제로 포기했던 적은 없어요. 빚을 져서라도 하는 편이죠. 주변에서는 미쳤냐고 해요. (웃음) 그런 점이 어찌 보면 에코드소울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듯해요. 이상과 현실 사이 타협하지 않는 허들이 높기에 지금까지 믿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신 거라고 생각해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아이러니

“에코드소울 제품에는 딛고 일어서려는 메시지와 어두운 유머가 공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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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경 대표가 에코드소울 제품을 활용해 직접 꾸민 저널

 

 

지금까지 에코드소울을 이끌어가시며, 대표님이 생각하는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터닝포인트는 브랜드를 키워가는 과정이 아니라 브랜드 운영 전에 있었어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저는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냈어요. 대학교 때는 공황장애가 와서 침대 밖으로 못 나가는 지경에 이르렀죠.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도 많이 끼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치료가 필요했는데 그걸 몰라서 힘들었어요. ‘코리안 포트폴리오 데이(KPD)’라는, 한국에서 외국 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그림을 가져가면 외국 교수들이 직접 피드백을 해주는 해외 대학교 입시 행사가 있어요. 제가 유일하게 하는 게 일기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이니까 친언니가 저를 그 행사에 데려갔어요.


막상 가보니 저는 일기장뿐인데, 다들 준비를 엄청나게 해 와서 주눅이 들었어요. 교수님들도 친절했지만, 기본기가 부족하니 소묘 수업을 받아보라거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그런데, 그중 시카고 미술 대학의 젊은 남자 교수님이 제 일기장을 유심히 보시는 거예요. 일기장 첫 페이지에 제가 ‘Limbo’라는 제목을 썼는데, 그 이유를 묻더라고요. 지금 제가 천국에도 지옥에도 갈 자격이 없는 불확실한 상태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어서 그렇다 했더니 웃으시며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 보셨어요. 앞선 학생들에겐 5분 정도 시간을 내주셨는데 제 일기장은 이런저런 질문과 함께 20분이 넘게 봐주셨죠. 다 보시고 절 노려보듯 확신에 차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네 그림과 글은 이렇게 작은 공책에 들어 있지만 이게 소리 지르고 있는 게 나는 들린다. 너는 남들하고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이다. 절대 입시 미술을 배우지 말아라. 앞으로 어디서 뭘 하건 넌 평생 이걸 이어나가야 한다. 넌 이미 예술가다."
 


매일 죽을까 말까 고민하던 제게는 그 모든 음절 하나하나가 구원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공인된 영어 점수만 가져오면 장학금을 줄 수 있다는 입학 합격장도 받았어요. 물론 그 학교에 가진 않았지만, 그날 제가 뭔가를 만들어도 되고 보여줄 자격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디자인은커녕 일기도 계속 못 쓰고 있을지도 몰라요.

 

 

저도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소름이 돋아요. 그 교수님 말씀처럼 에코드소울의 제품은 누가 봐도 에코드소울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한데요, 대표님은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구체적인 작품 이름으로 답변 드릴 수도 있지만, 그보다 무언가로부터 구상이 시작되기 전에는 항상 우울한 시기가 있고 그걸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작업의 밑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초반에 비해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여전히 치료받는 중이고, 자리에서 못 일어날 정도로 심각해질 때도 있어요. 마치 발목에 무거운 돌을 매단 것처럼 가라앉는 그 시기를 지나면 어느 순간 천천히 올라오게 돼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둡다가 미세한 빛이 보이면 그게 훨씬 더 밝아 보이잖아요. 별 감흥 없었을 것들도 그런 시기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더 가깝게 다가오고, 새로운 의미가 보여요. 그걸 시각화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죠.


그래서 항상 아이러니라는 개념에 매혹돼요. 평생을 필연적으로 우울과 안정, 불행과 행, 낮은 곳과 높은 곳 사이를 오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처음에는 저주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에코드소울을 운영하면서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작업의 원천을 여기서 얻어요. 매니악해 보이는 에코드소울의 디자인이 대중을 상대하는 보편성을 갖출 수 있는 건 무언가를 딛고 일어서려는 밝은 메시지 덕이고, 반면 매니아층을 자극하는 고유성은 언제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유머가 한켠에 자리 잡고 있기 떄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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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리 포레스트 테마의 특별 사은품

 

 

대표님이 에코드소울을 운영하며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뻔한 부분이지만 제품 퀄리티예요. 특히 단면 디자인 퀄리티요. 일부로 신경 쓴다기보다 자연스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에요. 내 기준에 만족스러운가, 내가 의도한 테마에 부합하는가 따져봐요. 더 발전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할 때까지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하며 강박적으로 작업해요. 막바지에는 이 디자인이 난지 내가 디자인인지 모를 지경인데, 그렇게 해야 성이 차요. (웃음)


테마의 경우, 상징을 앞세운 굵직한 테마를 중심으로 제품을 엮어내요. 이를테면 과거로 회귀하는 회전목마를 상징했던 ‘메리고라운드’, 밤하늘의 달 뜨는 순간을 형상화하고자 했던 ‘문라이즈 모먼트’처럼요. 성에 차는 디자인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다 보면 발전 과정에서 의도했던 테마를 벗어나는 것도 문제가 돼요. 관건은 만족스러운 질의 디자인인 동시에 표현하고자 하는 테마를 시각화하는 매개체로서 손실과 왜곡을 최소화하는 거죠. 디자인하는 과정은 그렇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계속해서 좁혀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쉽게 만들어진 제품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제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제품 또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제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메리고라운드 테마의 메리고라운드 저널이 떠올라요. 에코드소울 저널은 모두 개성 있고, 만드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메리고라운드 저널은 가장 만들기 까다로웠고 희소성도 가장 큰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 데다가 가격도 거의 3만원이었죠. 저라면 3만원 짜리 노트를 쉽게 못 살 것 같은데,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판매되었고, 단종된 다음에도 요청이 많이 오는 제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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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고라운드 테마의 저널 4종

 

 

저도 해당 제품을 한 권 갖고 있어서 왠지 뿌듯하네요. (웃음) 제품 설명을 좀 더 듣고 싶어요.


메리고라운드는 ‘회전목마’라는 뜻의 단어인데, 테마 구상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매드맨>에 나오는 코닥의 필름 영사기 ‘캐러셀’에서 시작됐어요. 캐러셀은 바퀴처럼 돌아가는 필름 영사기로,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임을 강조해 ‘휠’이라고 이름 지어 판매하려고 했대요. 그런데 광고회사에서 말하기를 소비자들은 기술력에 혹하는 게 아니라 감성에 혹한다며, ‘우리를 사랑받았던 과거로 데려가주는 회전목마’라는 콘셉트를 제시하고 캐러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거죠. 저는 그걸 오마주해서 ‘메리고라운드’ 테마를 제작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시작된 메리고라운드 저널은 공정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어요. 각도에 따라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렌티큘러 가공을 표지에 쓰려 했는데 두꺼운 종이에는 적용이 어렵다고 퇴짜를 맞아서 그게 가능한 곳을 찾으러 충무로, 을지로, 동대문을 발이 터져라 돌아다녔어요. 교외도, 지방으로도 갔죠. 거의 '반지의 제왕'이었어요. (웃음) 정말 고생한 끝에 결국 제가 원하는 가공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어요. 공정이 너무 복잡해서 거의 신기술을 개발하는 수준이 되었죠.


가공을 하나씩 포기했으면 쉬웠을 텐데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었어요. 제본에 쓰이는 실 색깔 하나도 양보를 안 했죠. 머릿속에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포기를 해요. 그 고생을 하고 완성된 저널을 손에 쥔 날, 정말 몇 달 만에 편하게 잤던 기억이 나요. 생산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갔고, 팔릴 거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머릿속에 잇던 게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어요. 근데 신기한 게, 그런 기분을 느낀 제품이 대박이 나더라고요.

 

 

 

앞으로 더 멀리 울려 퍼질 메아리

“영혼을 담아 만든 것이 당신의 삶과 맞닿을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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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경 대표가 문라이즈 모먼트 테마 제품들로 꾸민 페이지

 


‘영혼이 담긴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마음을 담아 만듭니다.’와 같은 에코드소울의 모토를 좋아합니다. 대표님은 어떤 마음과 영혼을 담아 에코드소울의 제품을 만드시나요?


저는 늘 쌍방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마음을 담아 만들어 보내면, 상대방이 거기에 영혼을 담아 주셔야 완성이 되는 거죠. 사실 이건 그냥 종이로 만든 노트잖아요. 찢어버릴 수도 있고 별거 아닌 물건일 수도 있는데, 누군가의 기록이 담기면 그제서야 고유한 가치가 담긴 개성 있는 물건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에코드소울 제품이 완성되는 순간은 공장에서 완제품이 나왔을 때가 아니라 제품이 누군가의 손에 닿는 시점이에요. 저는 진심으로 만들어 보내니, 그게 당신의 영혼과 맞닿을 수 있기를, 당신 삶의 메아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입니다.

 

 

흔들리고 불안해하면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결국엔 새로운 제품을 완성하시는 모습에서 저도 많은 용기를 얻습니다. 대표님은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또 조금 더 나아갈 힘을 얻나요?


정서적인 위로는 사람을 통해서 받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힘은 상상을 현실화하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얻는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고 얻게 된 가장 큰 변화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상호 의존할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저는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든 건데 예상치도 못한 내밀한 위안과 애정을 받았거든요.


또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가려면 ‘나아갈 힘’ 또한 필요한데, 물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원동력이지만,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온 가장 큰 추진력은 따로 있어요. 바로, 만들고 싶은 게 떠오르면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거예요. 구체화하고 싶은 이미지나 테마가 생기고 디자인을 발전시키다 보면, 제 머릿속에서는 이미 물건이 완성되어 있는 시점이 와요. 얕은 물 속에 손만 뻗으면 건져질 것 같거든요. 그걸 만들지 않을 수가 없어요. 꺼내야죠. (웃음) 그 욕망이 계속해서 절 앞으로 나아가게 해요.

 

 

앞서 예상치 못한 내밀한 위안과 애정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요?


정말 많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두 가지예요. 처음 만들었던 양장 저널 ‘포레버 플래닛’ 제작기에 어떤 분이 글을 남겨주셨어요. 곧 찾아올 뱃속 아기를 위해 이 노트를 사서 한 페이지씩 편지를 쓰고 있는데, 쓰다 보니 이 아름다운 걸 당신만 쓰기가 너무 아까워서 아이를 위해서 몇 권을 더 샀고, 종이가 바랠까봐 나무 배냇함까지 샀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문라이즈 모먼트 테마를 만들 때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주가 지났을 즈음 거의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못하던 분이 달이 뜨는 밤에 사놨는지도 까먹었던 문라이즈 모먼트 저널 표지에 달 모양 금박이 반짝이는 걸 보고 일기를 적기 시작하셨다고 해요. 덕분에 오랜만에 담담해졌고, 그걸 시작으로 다시 일어나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기분이 묘해지고, 제품을 완성하고 의기양양했던 스스로가 우스워져요. 못 하겠다는 생각은 멀어지고 해야지 마음먹었던 일들은 곁으로 다가와요. 마음이 불 피운 것 같이 따뜻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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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모먼트 테마의 저널 2종

 

 

작업 과정을 공개하기 꺼리는 분들도 있는데, 대표님은 개인적인 일상과 생각, 작업 과정에서의 고민 등을 SNS로 활발하게 공유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업을 하며 알게 된 다른 사업자분이나 마케터 분들은 팔로워수가 이쯤 되었으면 개인이 아니라 기업으로서 SNS도 사람을 고용해 전문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물론 저도 그런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지극히 사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올리는 이유는 에코드소울의 제품을 만들어온 과정이 혼자 쌓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지난 몇 년간 지켜봐주시는 분들께 저는 두루뭉술한 상징이 아니라 언제나 저라는 개인으로 다가갔거든요. 수다떨듯 일상 얘기를 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또 그런 식으로 소통을 했을 때 장점이 있어요. 일단 거리감이 가까워져서 신제품에 대한 피드백도 솔직하고 신속하게 와요. 제품을 평가받을 기회가 황금 같은데, 제 소통 방식은 그런 기회가 많은 거죠. 그리고 소비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사사로운 일상 조각들이 퍼즐조각처럼 모여서 큰 테마와 디자인이 되는 건데, 만약 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SNS로 공유하지 않는다면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과정은 생략되고 완성된 퍼즐만 노출됐을 거예요. 그걸로도 어필은 가능하겠지만, 과정을 보여주며 이런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면 자연스레 어떻게 완성될까 호기심, 기대감이 생기고 마음으로 작업에 참여하게 되는 듯해요.


개인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자기 노출 과정에서 강인함을 많이 얻는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날것의 이야기를 남한테 보이니 끝없이 약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나를 드러낸다는 건 미움받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자기 공개를 하고서 상상도 못 했던 크기로 애정과 공감, 위로를 얻었고, 덕분에 저라는 사람이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나라는 모양새로도 괜찮다는, 제 삶에서 꼭 필요한 가르침을 얻는 공간이 되었죠.

 

 

앞으로 에코드소울에서 해보고 싶은 작업 또는 만들고 싶은 제품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말에 저널 출시를 계획하고 있어요. 글라스문(유리달) 콘셉트로, 과거와 미래를 앞뒤로 맑게 비추어 볼 수 있는 유리달은 상상하며 만드는 중이에요. 전체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제품이고, 유리달 너머로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가 보인다는 문구를 넣을 예정입니다. 깨끗한 백색을 중심으로 미니멀하고 심플한 테마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일기장은 언제까지고 에코드소울이 온 힘을 다해 껴안고 가는 제품이 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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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작업 중인 글라스문 테마의 제품

 

 

더불어, 이건 참 복 받은 일인데 다른 문구류도 에코드소울 제품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감사하게도 많이 계세요. 그런 분들을 위해 문구류 제품을 최대한 확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일기장이 마음이 담기는 정서적 소재라면 몸과 가까운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닿을 수 있는 생활소품이나 인테리어 소품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또 일기장을 그릇에 비유하곤 했는데 실제로 무언가를 담는 유리나 자기 소재의 컨테이너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품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이웃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클래스와 인쇄 작업실을 열고 싶다는 생각도 해왔어요. 경제적 이득 대비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매우 커서 여전히 고민 중이긴 해요. 주변에서는 그럴 거면 매장을 열라고 하고요. (웃음) 그래도 재밌어 보이고 하고 싶은 건 참지를 못해서 언젠가 하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에코드소울의 제품을 구매하고 아껴주시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여기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에코드소울의 공장장입니다’라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어떤 모양의 단어를 골라야 제가 느끼는 진실된 감사의 모양과 같은 말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에코드소울을 그냥 일이라는 단어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어요. 그건 단순히 구매하는 걸 넘어서 이 브랜드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본기로 무식하게 쿵쿵 찧어가며 작은 노트를 만들던 시절, 블로그 이웃 분들이 붙여준 ‘노트 공장장’이라는 애칭이 제겐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행복한 이름이에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같이 아름답다고 여겨 주시고, 그 속에 기꺼이 소중한 기억을 담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 정체성을 변치 않고 이어나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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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
  •  
  • Ghibli
    • 포트폴리오데이 부분이 특별히 더 와닿습니다. 에코드소울은 작품성 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이 돋보이는 브랜드에요. 이게 가장 특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아닐까요? 언제나 영원히 함께해주는 브랜드가 되어주세요. 마음 속 깊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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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니비니
    • 공장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세상을 살아가고 대하는 공장장님의 자세에 감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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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재신
    • 앞으로도 감동있는 작품을 기다리면서
      힘내시라고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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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ysicaledu
    • 마음이 느껴지는 인터뷰와 멋진 작품들 잘 봤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기업이라는 생각에 왠지 팬덤이 생길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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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맘
    • 섬세하고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공장장님과 에코드소울 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깊은 에디터의 만남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연말에 출시될 글라스문 시리즈도 엄청 기대되요 응원과 사랑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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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중기
    •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도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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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향옥
    • 기업정신과 작품이 상품성을  띠고  여기저기  사람의  마음을 담겠군요.제 마음도  에코드소울에  담아보겠습니다.  멋지십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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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라
    • 다이어리 찾다가 보게됐는데 작가님 철학이 인상깊어서 응원 남기고 가요.
      응원합니다. 작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도록 !
    • 0 0
  •  
  • subin
    • 공장장님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젊은 교수님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내며, 그 교수님 덕분에 에코드소울이 탄생한 것 같아 감사하네요ㅎㅎ 물론 공장장님의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요!! 앞으로도 늘 응원하고 있을게요❤ 에코드소울 매장이 꼭 생기길 바래요ㅎㅎ 매번 이야기하지만 건강이 가장 우선인 거 잊지마시구요!! 화이팅 공장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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