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은 희생이라 했고, 그녀는 인생이라 했다 [공연]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글 입력 2022.08.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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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독 판권이 끝나는 뮤지컬이 많이 보인다.


한국 한의 정서의 절정을 보여주는 <서편제> /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엘리자벳> / 어른들의 환상동화 <아이다>

이 세 작품 모두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기에, 아쉬움은 배가 된다.

이 중, 특히 뮤지컬 <서편제>는 한국적인 소재가 다분한 몇 없는 귀한 극이라 오랫동안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길을 가자


 
어른들의 농익은 감정들을 뚫고 나오는 어린아이의 순수함
지극히 한국적인 '한'과 '흥
 
 
어렵고 그래서 흔히 볼 수 없는이 두 가지를 뭉쳐 만든 서편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람을 많이 받으면서도 비판 또한 받고 있다. 뮤지컬의 스토리가 다소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폭력이 드물지 않던 그 옛날의 한국에서는 자신의 슬픔 또한 운명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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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가 이자람

 

  

자신의 운명을 베어낼 수 없었었던 그들은 감정들을 안으로 삭혔고 그 감정들을 예술로 승화했다. 민화, 민요, 판소리 등은 민중들의 내재되어 있는 한과 같은 감정들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고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슬픔은 감추는 것이 아닌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가족보다는 개인을 우선이라 생각하고
참는 것은 약이 아닌 독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해가 갈수록 뮤지컬 <서편제>에 대한 공감성과 존재의 당위성이 흔들리고 있다.

요즘 시대엔 공감하기 어렵지만 한국인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어렵고 어려운 정서 '한'의 정서를 담고 있는 뮤지컬 <서편제>는

외골수적이여만 하는 예술가,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 있을 때만 이룰 수 있는 진정한 효도,
여자에게 특히 강조되었던 희생

과 같은 지금의 사회와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있다. 그렇기때문에 뮤지컬 <서편제>가 대중 앞에 다시 돌아와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분명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흔적


항상 송화와 동호에게 살이 찢기는 아픔마저 소리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하라 단호히 말씀했던 유봉에, 결국 동호는 유봉에 대한 원망과 함께 자신의 소리를 찾기 위해 이 둘을 떠났지만 송화는 묵묵히 유봉의 곁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유봉의 못다 한 소리와 자신의 소리를 찾아간다.

자신을 떠난 동호에 이어 송화마저 떠날 것 같은 두려움에서인지 아니면 이제껏 강조했던 진정한 소리에 도움이 되는 한을 심어주기 위한 욕심에서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일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유봉은 결국 송화의 두 눈을 멀게 했고 떠나간 동호, 유봉에 의해 잃게 된 두 눈으로 점진적으로 쌓인 송화의 한은 유봉의 죽음으로 이윽고 완성(?)된다.

이후 50여 년 만에 재회한 동호와 함께하는 <심청가>를 마지막으로 극은 끝난다.

극이 시작할 때 보였던 켜켜이 덮여있는 한지 조각과 여백으로 완성된 깨끗한 무대는 이 재회의 장면에서야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보여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밀도 있게 쌓여간 송화의 한의 흔적들이 형상화되어있는 듯 보였고 이로써 또 한 번의 전율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한 아역배우들에 의한 뜻하지 않은 눈물 또한 뮤지컬 <서편제>의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데, 약간은 딱딱하고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원숙한 소리들을 비집고 나오는 아역배우들의 맑은 목소리는 특별한 내용을 말하고 있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러한 맑은 소리 덕분에 극의 메인이 되는 '한'의 정서도 더욱 또렷하게 느껴지며 무대 조명이 빛을 내며 객석에 내려앉은 순간의 따뜻함 또한 극대화되어 다가와 마지막까지 눈물을 머금게 한다.
 
 

공연이 끝나고


스타 작곡가 윤일상과 음악감독 김문정이 만들어낸  깊은 멜로디, 처연함의 끝을 보여준 무대연출 이지나 그리고 서편제 자체가 되어버린 배우들.

이 중에서도 이지나 프로듀서의 연출은 매 회 언급되며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출에 전혀 무지한 나조차도 뮤지컬 <서편제>를 보면서 이지나, 이 한 명의 이름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뮤지컬 <서편제>는 '이지나스러움'의 마이너한 감성과 한국적인 분위기가 잘 그려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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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수백 장 중첩시켜 붙여 만든 무대 기둥들, 큰 스크린에 그어지는 힘있는 획, 정갈하고 청아한 분위기의 조명 그리고 잔잔한 회전무대.
 
창조와 생산의 색이라 불리는 먹색과 그에 걸맞은 단정하면서도 기운찬 움직임의 하모니를 볼 수 있는 극이다. 특히 민중 앙상블에서 그 하모니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먹색의 담담하고 다채로움을 잘 보여주는 의상과 결코 경박스럽지 않은 무빙으로 이제껏 본 앙상블의 장면 중 단연 최고라 생각된다.

이렇게 거침없는 소리와 그들의 유약한 이야기에서 증폭된 처연함의 절정을 한국의 색, 그림, 정서 그리고 질감까지 그대로 담아낸 뮤지컬 <서편제>의 미감은 극이 끝나고 각자에게 기억의 편린으로 남겨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장담한다.

 
 
그저 살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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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서양 문화 예술 속에서 '한국적인 것'을 담고 있는 문화 예술은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한국적인 서편제는 많은 제작자들과 관객들에게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작품인 것 같다.

'한국적인 것'이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하게 되고 있는 듯해 보이는 요즘, 수단으로서 대해진다는 것에 마음 아프지만 '그저' 수단으로서만 여겨지는 것은 아니기에 계속해서 꺼내놓고 잊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이들의 손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뜨거운 박수 속에서 떠나는 작품이기에 언제든 뜨거운 박수와 함께 두 팔 벌려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n년 뒤 무사히 돌아와 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굿바이,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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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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