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 연극 '더 테이블'

세 명의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현대인의 모순된 모습
글 입력 2022.08.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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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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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아버지(남자)와 아들이 식사하며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같이 식사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온하며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식사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독백하며, 이 독백은 놀랍게도 내용이 이어진다.

 

남자와 아들의 독백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서로 다르게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지만 서로 대화를 거의 이어가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견해는 다르다. 그러다 적막을 깨고 남자가 아들에게 말한다. 아내가 죽고 나서 외로웠던 자신의 곁을 채워줄 한 여자가 나타났고,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이다.

 

식사를 함께하자는 남자의 제안에 아들은 흔쾌히 수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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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명의 모습 | 커튼콜 中

 

 

이후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찾아오지만, 남자는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부재 상태였고 아들이 그녀를 맞이한다. 그들은 어색함 속에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자는 아들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게 된다. 이들 또한 서로 대화하기보다는 독백을 하면서 극이 전개된다.

 

그러다 이들은 우연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아들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 하룻밤의 장난으로 찾아갔던 사창가에서 자신과 성매매했던 여자임을 알게 된다. 여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진실한 기억을 마주하자마자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는 아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남자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상하다’는 남자의 말에 남자를 기다리게 된다. 심각한 교통 체증을 뚫고 남자는 집에 도착하게 되고 세 명은 하나의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게 된다. 하지만, 화장을 평소보다 짙게 한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남자는 여자와 얽혔던 과거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급하게 화장을 고치려는 여자에게 “화장을 고치지 마요”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며 이를 강요한다. 남자는 그렇게 지금까지 여자와 만나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여자는 두 남자를 통해 두 번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카드 내역서를 우연히 보고 사창가에 있던 자신을 찾아온 남자가 자신과 성매매를 했던 아들의 아버지임을 한눈에 눈치챈 여자는 자신의 카드가 여기서 사용되었는지를 묻는 남자의 말에 “몰라요”라고만 답한다. 그러자 남자는 자신의 떠올리지 않는 성매매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여자에게 성매매를 제안하고 여자는 도덕적 양심 때문에 끊임없이 싫다고 말한다. 그때 여자를 관리하던 남자가 와서 성매매를 거절하는 그녀가 실신할 때까지 때리기 시작하고, 여자는 그날로 사창가를 떠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또다시 두 남자 때문에 가정을 꾸려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순간, 그럴 수 없게 된다. 아들과의 성매매 기억, 그리고 남자와의 기억을 떠올린 여자 그리고 이 순간을 기억한 아들과 남자는 서로가 가족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실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아들은 아직 엄마의 빈자리에 새로운 누군가가 있는 것이 싫다고 말하고, 여자는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하며 남자 또한 이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들은 테이블을 떠나 헤어진다.

 

서로 대화하지 않고 혼자서 말하는 독백, 그리고 대화체보다는 문어체에 가까운 말투가 극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같은 자리에 있으나 서로 분리된 그들의 모습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서는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가족 구성원이 모두 사회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가정 내 대화 단절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공동체주의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개인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에 속하길 원하며, 가장 보편적인 공동체인 회사/학교 등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보통 삶의 형태로 규정한다.

 

하지만, 여자는 이러한 사회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었고, 카페를 운영할 때도 혼자서 일했다. 즉, 어떤 누구와도 공동체를 이룬 경험이 없던 여자는 결국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 형태인 가족에 편입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가게에 한 명의 아르바이트생을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그녀가 가정을 꾸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카페 내에서라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통해 그녀의 삶에는 반드시 가정을 꾸릴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은 자신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있는 사람과의 문제이다. 하지만, 극에서는 서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끔찍한 교통체증’을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규정한다. 사회적인 현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들의 입장은 곧 두 남자와 여자가 가족이 될 수 없는 이유가 개인으로 인한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즉 사회 윤리적인 이유에 의해서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잊기 위해 현대인다운 방법을 찾는다. 아들은 “저 내일부터 아주 바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자는 “바쁜 건 좋은 일이지”라고 말하며 여자도 이에 수긍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앞으로 매우 바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며 ‘바쁘다’라는 말을 너무나도 익숙하게 사용하며 실제로도 바쁜 삶을 살아간다. 바쁜 삶은 불행했던 사건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관심을 저하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쁜 삶’을 통해 그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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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세트

 

 

이 극의 제목이 ‘더 테이블(the table)’인 이유는 ‘그(the)’ 테이블 위에서 모든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테이블 위에서의 인물 간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 현대인의 진상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에 중심이 되는 것은 하나의 테이블이며 인물들은 커피를 끓일 때를 제외하고는 테이블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은 크게 흰색과 주황색 핀 조명으로 나뉜다. 인물들이 서로 대화할 때는 흰색 전체 조명이 켜지지만, 각자 독백할 때는 주황색 핀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그 분리를 표현한다. 또한, 벽에 걸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사슴 그림은 기억을 통해 과거 자신의 모습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마주 보고 있는(mirror) 그들의 모습을 표상하며, 도시 사진은 이곳이 현대화된 도시임을 알려준다. 그 밑에 걸려있는 거울은 불현듯 떠오른 기억으로 인해 드러나는 진실을 대하는 인간의 거짓된 모습 보여준다.

 

매끈하게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여주는 거울이 아닌, 울퉁불퉁한 표면으로 되어 있어 왜곡된 실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은 인물의 심리적 반영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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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연기한 이원종은 중후하면서도 깊이 있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침으로써 극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여자 역의 안유진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과거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자 노력하는 불안한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이찬렬은 가장 많은 진실을 숨기고자 하는 인물인 아들을 불안정한 모습과 이를 숨기고자 여유 있게 행동하는 모순적인 양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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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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