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2년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어느덧 한 해의 공연일정이 슬슬 마무리 되어가는 시기가 되었다. 8월도 마지막으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 문득 공연에 대한 소회를 반추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연초에 공연기획사들이 한 해를 준비하는 기획공연들을 눈여겨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흥미로워 보이는 공연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때면 그 시기에 일정이 맞아서 공연을 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그 무대가 어떨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마음이 즐거워지고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기획공연 일정을 살펴보다 보면 흥미가 당기는 수준이 아니라 무조건 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공연도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무대가 눈에 들어오면, 미리부터 그 달을 유념해두게 된다. 그런데 심지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찾아가고 싶은 공연이 시리즈 공연이라면, 그건 그 한 해를 기억하게 만드는 공연이 된다. 아주 행복하게도, 나에게는 2022년을 기억하게 만들 시리즈 공연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바로 목프로덕션의 기획공연,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이다.
김영욱과 손정범은 2022년 한 해 동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 도전에 나섰다. 특히 그들의 공연이 1월부터 시작되었기에 2022년의 연초부터 그들의 앙상블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공연은 4월 초로 배치하여 음악을 감상하기 너무 좋은 시기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곡으로 풍성한 저녁을 관객들에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눈부신 듀오가 8월 30일에, 길고 길었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의 대장정에 마지막 방점을 찍고자 한다.
PROGRAM
Violin Sonata No.3 in E-flat Major, Op.12-3
Violin Sonata No.6 in A Major, Op.30-1
Violin Sonata No.9 in A Major, Op.47 'Kreutzer'
이번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의 시작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이 장식할 예정이다. 베토벤의 초기 바이올린 소나타 Op.12 시리즈 중 세 번째 곡인 이 작품은 초기 소나타 중에서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아직까지 모차르트의 영향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나타날 베토벤다움이 조금씩 엿보이기 시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3번 소나타는 초기 소나타 중에서 가장 베토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동시대에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1~7번과 첼로 소나타 1~2번, 트리오 1~3번을 작곡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중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이 작품에서는 특히 피아노 파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특별히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1악장 피아노 파트는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어떻게 연주할 지 기대하며 기다려도 좋을 대목이기도 하다. 1악장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는 피아노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펼쳐지는 악장이다.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는 1주제는 고난도 패시지의 연속인데, 이후에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얽혀들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나타나는 피아노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악상은 매우 기교적이고 화려하다. 이에 발맞추는 바이올린도 독립적인 활약을 보여주도록 안배되어 있다. 1악장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화려한 대구를 이루면서 다이나믹과 음역대의 변화무쌍한 전개를 가감없이 선보이는 것이 그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뒤잇는 2악장은 1악장에서 환기하여 아다지오로 접어든다. 먼저 피아노에 의해 차분한 주선율이 제시된 후, 중반부터 바이올린이 다시금 주제를 전개하며 잔잔하고 아름다운 흐름을 이어나간다. 자칫 잔잔해서 루즈해질 수 있는 2악장에서 베토벤은 피아노가 정적인 바이올린 선율을 풍부하고 색채감 넘치는 선율로 변하도록 펼침화음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어 피아노가 주선율을 연주한 후 환상적인 코다로 2악장이 마무리된다. 마지막 3악장 론도 알레그로 몰토는 경쾌하고 생기가 넘치는 악장이다. 색채감이 풍부하여 바이올린과 피아노 모두 화려한 패시지를 통해 연주자의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피날레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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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프로그램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6번이다. 청력을 잃어가며 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곡했던 세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중 한 곡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남겼던 베토벤의 절박한 심정이 녹아나기 시작하는 작품인 것이다. 다만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곡되었던 바이올린 소나타 6~8번 중에서 6번은 서정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라 7, 8번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그러나 소나타 6번에서 베토벤의 절박함이나 심리적인 복잡함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이 작품이 초기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차분하면서도 베토벤의 과도기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6번은 점차 베토벤다움의 변화를 앞둔 상태에서 우리에게 오히려 폭풍전야를 보여주는 듯하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6번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일반적인 소나타 구성과 다르게 1악장이 분량 상 가장 짧다는 점이다. 대개 소나타적인 구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1악장이 주제의 제시와 구성미를 위해 비중이 가장 크고 2악장과 3악장은 비슷하거나 간소한 차이를 보이는 정도의 구성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6번 소나타에서는 1악장의 분량이 가장 짧다. 그래서인지 1악장에서 1주제와 2주제가 제시되기는 하지만, 주제가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구조적인 매력으로 와 닿는다기보다는 1악장 내에서 잔잔하고 자잘한 변화를 거친 끝에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유기체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구조적인 유기성보다 선율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부각되는 도입부인 셈이다.
2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스프레시보는 1악장보다 좀 더 긴 분량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악장이다. 피아노는 무게감 있는 저음으로 반주하고, 바이올린은 아름다운 주제를 연주한다. 특히 2악장에서는 라장조로 흐르다가 나단조로 전조되는 부분을 유념해 들어보면 그 인상적인 변화가 즐겁게 와 닿을 것이다. 마지막 3악장은 변주악장으로 6번 소나타의 악장 중 분량이 가장 긴 동시에 베토벤의 음악적인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놀랍게도 원래 이 악장은 9번 소나타 크로이처의 3악장 프레스토가 자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이 작곡하고 보니 너무 화려해서 프레스토 악장을 9번 소나타로 보내고 현재의 3악장을 새로이 작곡했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6번 소나타의 현 3악장이 어떻게 1, 2악장에 이어 자연스럽게 어우러드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즐거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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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간 이어졌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연주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모두 불을 내뿜는 듯이 강렬하게 접전을 벌이는 이 작품은 두 악기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듀오 소나타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바이올린이 반주자로서가 아니라 대등한 악기로 나섰다는 점에서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계승한 것이고, 이 방식이 그대로 낭만주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매우 선구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소나타 9번은 두 악기 모두 넓은 음역대를 바쁘게 넘나들며 화려하고 압도적이기에 연주자의 비르투오시티가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프레스토는 바이올린의 느린 서주로 시작해서 빠르고 격정적인 프레스토로 발전한다. 무반주로 시작되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을 피아노가 이어받고, 두 악기가 어우러들 때까지는 이 심연의 세계가 어디로 갈 지 모른다. 그러나 프레스토로 전환되는 순간, 바이올린의 정열적인 선율과 피아노의 격렬한 감정은 그야말로 폭풍우 속으로 듣는 이를 인도한다. 날카로운 피치카토, 도약하는 음형으로 나타나는 질풍노도는 대체 무엇이 베토벤을 이토록 격정의 세계로 이끈 것인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잠시 아다지오로 회귀하는 듯 하다가도 베토벤은 끝내 비통하고 격렬한 코다로 1악장을 마무리 짓는다.
여기서 환기하는 2악자 안단테 콘 바리아치오니는 온화하게 안식하는 듯한 분위기다. 서정적인 주제가 조화로운 진행과 패턴을 반복하면서 점차 다양한 리듬과 화음으로 변주되는 악장이다. 총 네 개의 변주가 나타나는 2악장에서, 첫 번째 변주는 피아노가 중심이 되고 두 번째 변주는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그러다가 세 번째 변주는 두 악기가 서로 얽혀들면서 진행되고, 마지막 네 번째 변주는 직물이 짜이는 것 같은 짜임새 있는 구성 속에 여유롭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그 매력적인 변주의 끝에 베토벤은 꺼질 듯한 피아니시모로 악장을 맺는다. 이는 마치 3악장을 기대하라는 듯한 암시 같다.
크로이처 소나타의 종악장인 3악장 피날레 프레스토는 아주 화려하고 정열적이다. 이 작품보다 앞서 연주될 6번 소나타의 3악장으로 처음엔 작곡되었다고 하지만, 작품을 들어보면 이 악장은 무조건 9번 소나타와 훨씬 더 어우러진다. 타란텔라의 춤곡 리듬으로 빠르고 화려한 가운데 1주제와 2주제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는데, 이를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마치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듯하기도 하고 급류 속에 휘말린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 비르투오시티가 폭발하는 악장에 음악이 가진 관능적인 매력이 오롯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악장을, 김영욱과 손정범이 연주해줄 것이라는 점이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의 마지막 무대는 그야말로 화려할 것이다. 첫 번째 무대가 1, 5, 7번으로 아주 뜨거웠고, 두 번째 무대가 2, 4, 8, 10번으로 치밀했다면 세 번째 무대는 3, 6, 9번이 예정되어 있기에 압도적인 무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나 난곡 중의 난곡인 9번 소나타 크로이처로 이번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예정이기 때문에, 더욱 뜻 깊고 의미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더하여 연주자들에게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대곡이기에 이를 연주할 김영욱과 손정범의 앙상블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도 무대를 기다리는 동안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김영욱과 손정범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서부터 독일 뮌헨 유학 시절까지 끝없이 인연을 다져온 사이다. 그런 두 연주자는 이제 30대에 접어들었고, 그들은 좀 더 성숙해진 서로의 음악을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로 재창조하여 올 한 해 동안 관객들에게 선보여 주었다. 뛰어난 분석력, 풍부한 표현력, 심금을 울리는 감정 그리고 베토벤을 관객들에게 체득시켜버리는 장악력까지 보여주었던 두 비르투오소가 길고 길었던 7개월간의 대장정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022년 8월 30일 (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3
R석 60,000원 / S석 40,000원
약 100분 (인터미션 15분)
입장연령 : 8세 이상
(미취학 아동 입장 불가)
주 최 : 목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