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놉 : 영화의 탄생은 시선으로부터 [영화]

조던 필이 영화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영화 "놉"
글 입력 2022.08.2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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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놉”은 “영화”라는 매체에 보내는 일종의 러브레터이다.

 

인간은 간사하다. 열차의 움직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에서 시작한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 상영 이후,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으로, 그리고 이후 기술의 발전을 통해 영화는 지금의 형태로 발전해왔다.

 

책과 음악을 영화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앞의 생동감을 영상으로 담아내 고스란히 재현한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현실의 무언가를 찍어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영상의 형태로서의 기록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무성영화를 넘어 유성영화로, 흑백 필름을 넘어 이제는 CG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스크린에 그려낼 수 있다. 스크린의 영상은 이제 단순히 아날로그적인 ‘기록’의 의미를 넘어, 창작자의 의도에 맞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입맛에 맞게 편집하는 캔버스로 변해왔다.


영화에서 시작한 영상 기록의 매체는 영화에서 드라마로, 유튜브로, 이제는 쇼츠 동영상으로 나날이 짧아지고 있다. 촬영기기의 보급과 플랫폼의 다양화로 어느 것이나 담아낼 수 있게 된 현시대의 인간에게 2022년 작 조던 필“놉”은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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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아진 지금이지만, 정작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과거에 여러 시간을 들여 완벽한 조명과 자연환경의 조화를 이룬 순간에야 포착할 수 있었던 스펙터클은 이제 너무나도 손쉽게 연출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을 이용하고 조작하기도 하며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갈수록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무언가에 주의를 집중해 보려는 시선은 너무나도 쉽게 와해되고, 우리는 단편적인 면만을 본 채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무언가를 찍어 연출해 낸다는 것은, 먼저 찍으려는 대상을 바로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 시대, 스펙터클을 마주한 인간은 그것과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않은 채 셔터를 먼저 들이댄다. 제대로 보기 전에 우리는 이미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놉”의 주인공 OJ는 아버지와 함께 헤이우드 말 농장을 운영한다. 우리는 ‘헤이우드’라는 이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초기 흑백영화인 [The Hores in Motion]에는 흑인 기수가 등장한다. 하지만 흑인 기수는 배우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화 산업의 주역은커녕 잊혀진 주변 인물로 남는다.

 

영화 “놉”은 [The Horse in Motion]의 흑인 기수를 주인공 OJ와 그의 여동생 에메랄드의 조상인 알리스테어 헤이우드라 설정한다. 헤이우드 남매는 아버지와 함께 헐리우드 영화 촬영장에 말을 대여해주며 계속해서 영화계의 주변인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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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적”으로 인해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에 맞아 OJ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OJ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생계를 꾸려나가려고 노력하지만, 촬영장에서 말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쫓겨나고 결국 말을 사용한 촬영은 말 모형에 CG를 입히는 작업으로 대신 된다. 그러던 와중 OJ의 집 주변에 수상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OJ와 에메랄드는 이를 찍어 방송국에 팔아 유명세를 얻고자 한다.


헤이우드 농장 주변에는 과거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주프가 그의 가족과 함께 테마파크를 차려운영하고 있다. 과거 고릴라 “고디”가 등장하는 TV쇼 아역으로 출연했던 주프는 촬영장에서 갑자기 고디가 끔직한 난동을 일으킨 날 살아남지만, 이날의 경험을 단순히 공포에 휩싸인 날이 아닌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간직한 채 성장한다. 실제로 주프는 그의 사무실 벽 안쪽에 고디와 관련된 비밀 전시 공간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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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놉”에는 스펙터클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결국 그들이 이 스펙터클을 어느 깊이까지 바라보냐에 따라 갈린다. 본질을 보려 노력하는 이는 살아남을 것이며, 본질을 알면서도 최후의 역작을 남기고 싶은 원초적 본능에 사로잡힌 이는 죽음을 자처할 것이며, 본질을 보기도 전에 이용할 방안을 먼저 생각한 이는 이용하려 했던 대상에 잡아먹힌다. 영화 “놉”은 강렬한 장면들로 우리에게 “본질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영화 “놉”은 옳고 그름에 대한 영화가 아니며, 점프 스퀘어로 관객을 현혹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모두는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광경을 남아내는 다양한 시선들이 모여 영화산업을 발전시켰다. 결국 영화 “놉” 속 인물들이 괴비행물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라는 매체, 그리고 프레임 속에 담기는 광경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들과도 같다. 이 과정을 통해 “놉”은 가장 원초적인 영화의 시작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며 마음 속 어딘가를 묵직하게 건드린다.


침팬지 고디, 동양인 주프, 흑인 남매, 히스패닉 전자 상점 직원, 백인 촬영감독을 보며 우리는 현 영화산업의 주류와 소외된 이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포기와 소외를 발판으로 자라온 영화산업에, 조던 필은 소외된 이들을 다시 한번 조명한다. 소외된 가치와 사람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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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의 “놉”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이다. 비범한 상상력과 세계관을 통해 압도되는 스펙터클의 세계를 구현한 조던 필은 이 엄청난 영화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가장 뭉클한 대답을 내놓는다. 이제 관객들이 영화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때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상영관을 나오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영화에 대한 영화를 이러한 방식으로, 이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감독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상,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영화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는 영화를 사랑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이런 영화들을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소속감.

 

나에게 놉은 호러가 아닌 따뜻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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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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