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너와 나의 노동에게 - 검은 안개, 출근길에 새어 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

글 입력 2022.08.1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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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포스터1.jpg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인데, 때때로 일이 삶을 위협할 때가 있다.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 소식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기분이 참담해진다. 노동 문제는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노동을 지난 시대의 단어로 인식하곤 한다.


<검은 안개, 출근길에 새어 나오는 깔깔깔 웃음소리>는 광명에서 나고 자란 김진 작가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성근로자아파트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 구로공단이 활성화되어 있던 시절 여성 근로자들을 위해 지어진 해당 아파트는 폐쇄된 지 오래지만 소유권 등의 문제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진 작가는 그 아파트로부터 광명이라는 도시의 근간이 된 노동을 다시 생각하고, 알고 지내던 작가들과 함께 노동을 키워드로 한 전시를 기획했다. 이 리뷰에서는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몇몇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노동이 삶을 파먹을 때


 

유아연_Burlesque - Delivery_2021 단채널 비디오 29분 9초.jpg
Burlesque - Delivery 2021 단채널 비디오 29분 9초

 

 

가장 처음 관람객을 반기는 것은 유아연 작가의 영상 작업물 ‘Burlesque-Delivery’다. 요즘 활발하게 논의되는 플랫폼 노동을 소재로 했다.

 

화면 속에는 유아연 작가가 직접 카메라를 머리에 달고 배달노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리저리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모습, 바쁘게 내딛는 발걸음이 화면에 비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차분한 음악에 하나, 둘 숫자를 세며 요가 동작을 지시하는 소리를 입혔다.


시간이 곧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배달 노동자는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음식을 배달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일하는 동안 숨은 빠르게 움직이는 신체에 맞춰 몰아쉬어야 한다. 자기 호흡에 맞게 숨을 쉬는 일은 시간과 돈을 들여 요가 교실에 가서야 얻을 수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노동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통제를 전제로 하고, 극단적인 경우 이러한 통제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노동이 삶을 위협하는 일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2020년 말,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동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충격을 주었다. 추유선 작가는 이 뉴스에 충격을 받고 직접 농촌의 이주노동자를 찾아 나섰다. 당시 언어와 신뢰 문제로 직접 인터뷰는 어려웠지만, AMC Factory의 마문, 정소희 감독의 도움을 받아 농촌이주노동자의 비닐하우스 및 컨테이너 기숙사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추유선 작가의 ‘저 푸른 초원 위에’는 그렇게 받은 사진 6점을 모은 것이다. 어떤 미화도 없이 촬영한 사진은 마치 사건 현장을 찍은 모양새로, 차분한 전시장 분위기와 이질적이다. 그걸 더욱 부각하듯 택배 보낼 때 흔히 쓰는 노란 박스테이프를 사용해 사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6점의 사진을 벽에 붙여두었다.

 

그래서 사진은 제대로 붙지 않고 너덜거린다. 너덜거리는 귀퉁이에는 작가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기숙사와 농촌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 그리고 고국의 주거환경에 대해 이야기 나눈 내용이 작가의 손글씨로 적혀 있다.

 

 

 

더할수록 단단해지는 말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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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품이 되더라도 당신의 느린 사랑을 기다리기로 한 사람 2022 75cm x 180cm 종이에 아크릴

 

 

사랑해 작가와 김진 작가는 우리가 불편하고 껄끄럽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노동의 일면을 작품에 담아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주변에서 사람들의 편견과 몰이해, 그로 인한 소외 현상을 쉽게 목격한다.


사랑해 작가의 ‘물거품이 되더라도 당신의 느린 사랑을 기다리기로 한 사람’은 손을 씻는 그림 여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은 반드시 몸을 씻어야만 하는 몇몇 노동, 특히 성 산업과 관련된 일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 믿고 고개를 돌려버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버젓이 존재하는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 본인을 비롯해 이야기의 장을 여는 것이다.


김진 작가의 ‘마고가 나타났다’는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건전한 논의의 장을 열자고 말하는 듯하다. 언뜻 보기에 케이크 같은 형상의 작업물은 두꺼운 원기둥이 2층으로 쌓여 있고, 위에는 여러 개의 천이 실로 엮여 있다. 아래의 원기둥에는 온통 글씨가 쓰여 있다. 혐오 표현을 비롯해 누군가를 비꼬고 무시하고 비난하는 말들이다. 실제 기사의 댓글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말들이 향하는 대상은 노동자, 난민, 여성, 성소수자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 위에 걸린 천에는 김진 작가 자신을 비롯해 그가 알고 있는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보듬고 타인에게 연대의 마음을 내비치는 시와 글이 수놓여 있다. 아래의 혐오 표현이 나무에 쓰여 있다면 우리를 북돋는 말들은 천에 수놓여 실로 엮여 있다. 나무는 무게를 더하면 부서지지만 천은 무거운 것이 더해져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후자에 해당되는 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더할수록 단단해지는 말들, 누군가를 지탱할 말들이.

 

 

 

파괴가 아닌 창조하는 노동을 위하여


 

플랫폼 노동으로 시작했던 전시는 1차 산업인 농업으로 돌아와 끝을 맺는다. 이자연 작가의 '농사적 예술하기 프로젝트 2021 "그날이 그날 같은"' 에는 누에를 치고 농사를 짓는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영상이 재생되는 가운데 전시장 한편에는 직접 기른 누에에서 얻은 솜 한 뭉치가 놓여 있다.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보다가 마지막에 와서 목화솜을 마주할 때 새삼스레 깨닫는 게 있다. 바로 노동이란 우리가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노동의 범위는 더 다양하다. ‘가사’와 ‘돌봄’에도 노동이라는 말에 붙듯이. 그러므로 노동의 가장 큰 의의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노동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말하지 않고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까. 노동은 먹고 자는 본능적인 행위 외에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회는 그 사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

 

노동의 의미를 확장해 다시 생각해보면, 노동은 지난 시대의 단어일 수 없다.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은 특수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노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시는 일하고 있는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일 안 하고 살기, 즉 돈 많은 백수를 꿈꾼다. 하지만 그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원치 않는 일, 할수록 세상에 해가 되는 일, 내 삶을 파먹어야만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쓴다. 나의 노동이 나의 삶을 파괴하지 않기를, 그리고 당신의 삶도 파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사회는 내가 나의 노동을 고민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 못지않게 타인의 노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이 전시를 본 사람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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